젠슨 황도 반한 HD현대 ‘가상 조선소’… “선박을 통째로 옮겼다”
올해 2단계 ‘연결·예측 최적화’ 계획
2030년 지능형 자율운영조선소 목표

연간 50척 이상의 초대형 선박을 건조하는 HD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에는 수기 보고서가 없다. 종이 도면도 없애는 중이다. 실제 조선소와 똑같이 구현된 가상의 조선소를 통해 작업 중인 크레인의 위치와 자재 이동, 선박 설계 현황, 공정 실적 등을 실시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장 작업자와 관리자들은 서류 보고 대신 태블릿PC 하나로 본인의 업무를 확인하고 작업 정보를 공유한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12일 “2023년 가상 조선소 플랫폼 ‘트윈포스’를 구축한 뒤 나타난 가장 큰 변화”라고 말했다.
HD현대는 2030년 지능형 자율 운영 조선소 구축을 목표로 ‘미래 첨단 조선소(FOS·Future of Shipyard)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6’에서 “디지털 트윈 개념을 구현한 완벽한 사례”라고 공개 언급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젠슨 황은 지난 6일(현지시간) 독일 기술기업 지멘스의 롤란트 부시 CEO와 대담하던 중 화면에 HD현대 사례가 등장하자 “지금 화면에 보이는 것이 선박 전체에 디지털 트윈 기술을 적용한 모습”이라며 “선박의 볼트와 너트 하나까지 전부 디지털로 구현돼 있다. 실제 선박 사이즈를 디지털 트윈으로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점이 정말 엄청나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는 선박의 디지털 트윈을 가상의 바다에 띄워 실제 환경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까지 시뮬레이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두 CEO의 대담 주제는 ‘AI가 제조업을 어떻게 바꾸는가’였다. 현재 엔비디아와 지멘스, HD현대는 엔비디아의 가상 협업 플랫폼인 옴니버스와 그래픽처리장치(GPU) 연산 능력, 지멘스의 디지털 설계 및 공정 데이터를 HD현대가 보유한 세계 최대 규모의 조선소에 직접 적용해보는 삼각 협력을 진행 중이다.
젠슨 황이 오랜 파트너인 지멘스를 매개로 HD현대에 협업을 제안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조선업은 선박 자체가 거대하고 공정이 복잡해 방대한 상업 데이터를 핸들링해볼 수 있는 최적의 업종으로 꼽힌다. 실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한 척을 건조하는 데 약 750만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HD현대는 이 모든 부품을 디지털 데이터로 가시화했다. 가상 공간에 떠 있는 배의 나사 하나를 클릭하면 그 나사의 재질과 강도, 설치 날짜, 담당 작업자 정보가 뜨는 식이다.

HD현대는 2023년 FOS 프로젝트의 1단계로 ‘눈에 보이는 조선소’ 구축을 완료했고, 올해 2단계인 ‘연결·예측 최적화된 조선소’ 구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눈에 보이는 조선소의 핵심이 정보의 디지털·가시화였다면 2단계는 시뮬레이션 기반 사전 대응으로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것이 골자다. 배를 만들기 전 가상 공간에서 수백만 개의 부품을 조립해보고 설계가 틀린 부분이 있는지 로봇이 용접하기 힘든 공간이 있는지 등을 미리 확인한다. 용접 로봇를 투입하기 전에 로봇 팔이 배의 구석구석까지 잘 닿는지 테스트하면 실제 현장에서 로봇이 벽에 부딪히는 사고 등을 막을 수 있다. 이런 작업을 반복해 사전에 오류를 잡아내고 우수한 품질의 선박을 건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HD현대는 2030년 지능형 자율 운영 조선소 구축이 완료되면 생산성은 30% 향상되고 선박 건조 기간은 30% 단축될 것으로 기대한다.
FOS 프로젝트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핵심 기술 중 하나가 디지털 트윈이다. 디지털 트윈은 외형만 비슷하게 옮긴 3D 모델링과 달리 현실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받아 가상의 모델이 똑같이 반응하고 변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선박 부품과 조선소 설비 형상뿐 아니라 기능·성능·특성을 반영한 대규모 3D 모델을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적의 조건을 도출해낸 뒤 선박의 성능과 생산 현장 운영을 최적화하는 개념이다.
이화정 HD현대중공업 상무는 “지능형 자율 운영 조선소가 구축되면 선박 건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행착오를 최소화해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생산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고품질의 선박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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