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고액체납자에 특혜”… 출국금지 해제하고 체납액 소멸
1.4조원 세금징수 사실상 포기

국세청이 고액체납자의 체납액을 줄이고 출국금지를 해제하는 등 특혜를 제공했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왔다. 누계체납액이 100조원을 넘기자 이를 두 자릿수로 축소하기 위해 1조4000억원이 넘는 고액체납자의 세금 징수를 포기했다.
감사원은 12일 이 같은 내용의 ‘국세 체납징수 관리실태’ 주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세청은 2020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누계체납액 공개를 요구함에 따라 2021년부터 ‘국세통계포털’에 체납액을 공개하기로 했다. 하지만 당시 임시 집계한 누계체납액이 122조원으로 파악되자 부실 관리에 대한 비난을 우려해 100조원 미만으로 축소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목표액이 100조원 미만으로 설정된 이유는 딱히 없었다고 한다.
목표치 달성을 위해서는 체납액을 받아내거나, 과세 부과처분 취소 또는 법정 소멸시효 만료가 필요했다.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들이 돈을 갑자기 내는 경우가 적은 점을 고려해 국세청은 소멸시효 만료라는 방법을 택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국가가 부과하는 세금은 보통 5년의 시효가 있으며 5억원이 넘는 미납 세금은 10년의 시효가 있다. 이 기간 국가가 세금을 받지 못하면 시효는 소멸된다. 국세청은 시효 소멸을 막기 위해 세금 체납자의 재산을 파악해 압류한다. 체납액을 강제로 징수하는 게 실익이 없다고 판단되면 재산 압류를 해제하는데, 그러면 시효가 재개된다.
국세청은 누계체납액 축소를 위해 소멸시효 만료를 활용해 고액·상습체납자의 체납액 감소가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우선 체납액 정리가 쉬운 장기·고액체납자(체납 기간 10년 이상, 체납액 3억원 이상) 282명을 선정해 소멸시효를 정비하도록 지방청에 하달했다. 감사원은 “탈세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회장 A씨 (체납액 1038억원) 등 25명을 비롯해 고액·상습체납 명단공개자 총 183명을 압류해제 점검명세에 부당하게 포함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방청별 누계체납액 감축 목표(20%)를 할당했다. 각 지방청이 누계체납액을 누가 얼마나 줄였는지를 성과 지표에 넣기도 했다. 2021년 초부터는 매달 체납 정리 상황 점검회의를 열어 체납액 축소 실적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에 세무서들은 체납자 재산 압류 해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본래 압류를 해제하면 소멸시효가 재개될 뿐, 체납액이 사라지진 않는다. 그런데 국세청은 법령과 다르게 소멸시효 기간 계산 시점을 압류해제일보다 빠른 시기로 소급하도록 지침을 하달했다. 애초에 압류가 없었던 것처럼 조작해 세금 소멸시효가 이어졌다고 처리한 셈이다. 예컨대 세금이 부과되고 3년간 내지 않았던 사람의 재산을 10년 압류했다면, 압류를 해제하고 압류가 없었다고 조정해 세금을 면제해준 것이다.
이를 통해 국세청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고의로 1조4268억원의 세금을 걷지 않았다고 감사원은 판단했다. 심지어 체납 담당 직원에게 금액이 높은 순서로 10명을 2주에 한 번씩 배정해 14일 이내에 처리하도록 하는 업무시스템도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체납액만 532억원에 달하는 주수도 제이유그룹 회장 등 추적조사 대상자로 선정된 354명을 포함해 고액·상습체납 명단공개자 5894명이 압류해제 대상자로 포함됐다. 그 결과 5000만원 이상을 체납한 고액체납자 1066명의 체납액 7222억원의 소멸시효가 완성 처리됐다. 이 중에는 명단 공개자 208명, 출국 금지자 90명, 추적 조사 대상자 15명 등이 포함됐다.
서울청은 2015년 소득세 등 총 209억원을 내지 않은 고액체납자 B씨 일가에 대해선 체납자가 요구하자 출국금지를 해제해준 사실도 파악됐다. B씨는 재산 은닉이 의심되는 해외 페이퍼컴퍼니 소유의 고급주택에 거주하는 등 호화생활 중이라는 사실이 파악돼 추적조사 대상으로 선정됐다. 그러나 서울청 담당자는 B씨가 해외기업 행사 참석 등을 이유로 출국금지 해제를 요청하자 사업계약 체결로 임의 기재하고 국외 도피 우려가 없다는 내용을 담아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이후에도 반복해서 구체적 증거서류 없이 B씨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고가 와인 1005병과 명품가방 등도 압류해제했다.
고액체납자에게는 혜택을 줬지만, 소액체납자에 대해선 재산을 압류한 후 장기간 내버려 둬 경제적 불이익을 안겼다. 국세징수법에 따르면 체납자 재산을 압류한 후 공매 실익이 없으면 압류를 해제해야 한다. 그런데 국세청은 500만원 미만의 소액체납자 압류 중 총 1만7545건을 공매 등 절차 없이 5년 이상 묶어둔 것으로 파악됐다.
감사원은 국세청장에게 국세행정시스템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으며 국세징수권을 부당하게 소멸하는 일이 없도록 관련자 1명에게 주의를 요구하고 2명은 인사자료로 활용하도록 통보했다. 고액체납자의 출국금지 해제 혜택을 준 관련자 5명은 징계를 요구했다.
박준상 기자 junwit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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