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수성못 아래 고인돌 유적

김명희 2026. 1. 12.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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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을 서양인들은 흔히 'Dolmen'이라 부른다.

대구 수성못 아래의 대구광역시 기념물 고인돌 유적 안내판 제목도 '상동 지석묘군'이다.

다른 곳에 있는 대구 대표 고인돌 유적들의 위치가 궁금해진다.

이곳 수성못 고인돌은 1998년 국립대구박물관이 발굴 조사를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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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엔 일본식 표기인 '지석묘' 사용 ... 보다 세심한 관리 필요

[김명희 기자]

 대구 수성못 아래 고인돌 유적 전경
ⓒ 김명희
고인돌을 서양인들은 흔히 'Dolmen'이라 부른다. 'Dolmen'은 탁자( Dol)와 돌(Men)을 합쳐서 만든 캘트어 단어이다. 'Dolmen'의 영어식 표현은 'Table Stone'이다. 고인돌을 중국인들은 석붕(石棚)이라 한다. 석붕은 돌로 지은 시렁이라는 뜻이다.

고인돌을 일본인들은 지석묘(支石墓)라 부른다. 지석묘는 '고인돌(支石)이 있는 무덤(墓)'이라는 의미이다. 순수 우리말 고인돌과는 그 뜻이 약간 다르다. 그래서 한국고고학연구소는 1984년 <한국고고학개정용어집>을 펴내면서 '지석묘' 대신 '고인돌'을 쓰자고 제안했다. 그 뒤부터 '고인돌'이라는 호칭이 널리 알려졌다.

아직도 많이 사용되는 '지석묘'

하지만 고인돌 유적지 안내판 중에는 여전히 '지석묘'를 사용하고 있는 곳이 많다. 대구 수성못 아래의 대구광역시 기념물 고인돌 유적 안내판 제목도 '상동 지석묘군'이다. 이곳 안내판은 "지석묘는 흔히 고인돌이라고도 한다"식으로 소개한다. 마치 지석묘가 옳고 고인돌은 대중들이 쓰는 통칭이라는 어감을 주는 표현이다. 1984년 이래 42년이나 지났는데도 일본식 표기가 남아 위세를 떨치고 있다.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무덤건축 문화유산이며 흔히 고인돌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신천이 대구분지로 유입되는 지역에 위치한 대구의 대표적인 지석묘군 중 하나이다. 현배 바깥에 드러난 상석을 비롯하여 지하에 30여 기의 분묘가 확인되었으며, 신천변에 존재했던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고인돌'을 '지석묘'로 소개하고 있는 안내판(대구 수성못 아래 고인돌 유적지)
ⓒ 김명희
다른 곳에 있는 대구 대표 고인돌 유적들의 위치가 궁금해진다. 그래서 찾아본 뒤, 이 글을 읽고 현장 답사를 실행할 분들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여겨져 주소들을 소개한다.

수성구 청수로4길 64 정화빌라 입구 앞, 상동 청동기 마을
수성구 상동 507 수성못 유원지 남쪽, 상동 고인돌 유적
수성구 신매로 21 보성아파트 108동 앞, 시지 고인돌 유적
달성군 가창로 774 가창제일교회 뒤, 냉천 고인돌 유적
달성군 비슬로522길 41 일대, 천내리 고인돌 유적
북구 칠성남로30길 20 지하철 대구역 1번 출구, 칠성바위
달서구 진천로3길 85, 진천동 사적지

이곳 수성못 고인돌은 1998년 국립대구박물관이 발굴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고인돌 상석 4기, 석곽묘와 석관묘 39기,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 편 3점이 확인되었다. 빗살무늬토기 조각의 출토는 대구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시초를 (청동기시대인) 3,000년에서 (신석기시대인) 5,000년으로 거슬러 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 역사적 의미 덕분에 이곳은 2006년 대구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빗살무늬토기 출토로 대구 역사 2000년 끌어올려

고인돌은 전세계에 6만여 기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그 중 4만여 기를 보유해 '고인돌의 나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4만여 기는 다시 남한에 2만5천여 기, 북한에 1만5천여 기 분포로 나뉜다.

한반도에서 고인돌이 가장 많았던 지역은 대구였다. 신천, 진천천 등 대구 시내를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가며 고인돌이 장관의 경치를 보여주었다. 대구는 '고인돌의 도시'였던 것이다. 그러나 도로 개설 등으로 대부분 멸실되고 지금은 100여 기만 남았다. 강화, 화순, 고창 고인돌들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지만 대구는 그 영광에 들지 못했다.

이곳 수성못 고인돌들은 그나마 생존해 있지만 관리 상태가 허술하다. 여러 전시물들은 낡고 탈색되어 읽기 어렵고, 심지어 접근하는 길도 제대로 닦여 있지 않다. 좀 더 정성이 깃든 관리를 통해 보존 상태를 향상시켜야 한다. 바로 옆 수성못을 찾은 시민과 학생들조차 이곳을 방문하지 않는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개선책을 강구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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