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슬의 숫자 읽기] 재택근무라는 숨구멍 막기

전 세계적으로 재택근무가 소멸하고 있다. 세계 주요 대기업들은 물론 화상회의 서비스 기업인 줌(Zoom)조차 직원들을 사무실로 복귀시켜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 5.4%까지 치솟았던 재택근무 비율은 팬데믹 종료와 함께 2.3%까지 떨어졌다. 국내 상위 50개 기업의 64.5%가 근무 형태를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겠다는 걸 보면, 재택근무는 점진적으로 더 축소될 테다.
그렇지만 국제적으론 우리나라가 이상한 편이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2025년 기준 미국 노동자의 재택근무 비율은 22.1%로 추산된다. 우리나라의 2.3%와 비교하면 무려 10배에 달하는 수치다. 영국이나 독일 같은 서구권 국가들도 미국과 엇비슷한 비율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동서양의 차이로 보기도 애매하다. 일본 국토교통성의 ‘2024년 텔레워크 인구 실태 조사’에서도 재택근무율이 15.6%로 확인된다. 서방보단 낮지만 우리보단 7배나 높은 수치다.

국내 주요 기업들은 재택근무가 노동생산성을 갉아먹는다고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재택근무 중 몰래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으니, 재택근무가 대면 근무보다 태만을 유발할 개연성은 큰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가정을 꾸린 대다수 직장인이 재택근무 중에 저지르는 태만은 주로 업무 중간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밀린 빨래를 돌리고, 설거지하는 정도다. 가사 노동 시간이 조금 벌충되는 정도다. 왜 자투리 시간에 집안일을 할까.
우리나라 30대 부부의 맞벌이 비율은 이미 60%를 넘어섰다. 두 사람이 퇴근 후 녹초가 된 몸으로 밀린 집안일을 처리하고 나면, 쉴 시간은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 유년기 자녀까지 있다면 상황은 재난에 가깝다. 가까이에 도움 줄 수 있는 조부모가 없다면, 주로 엄마가 경력 단절을 선택하거나 아예 출산 자체를 포기하는 게 자연스럽다. 이런 상황에 미약하게나마 숨구멍을 뚫어주는 게 재택근무의 존재 의의다.
흥미롭게도 선진국 범주에서 우리와 재택근무율이 가장 유사한 곳이 대만이다. 대만 노동부가 발표한 2024년 노동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대만의 재택근무율은 4.4%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보다는 높지만 주요 선진국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그리고 대만은 최근 ‘세계 최저 출산율 국가’라는 불명예를 우리나라에서 가져갔다. 재택근무율이 극도로 낮은 두 나라가 전 세계에서 아이를 가장 낳지 않는 나라 수위를 다투는 게 단순한 우연일까.
노동생산성이라는 좁은 지표로만 본다면 재택근무의 악영향이 더 크긴 할 테다. 그렇지만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거시적 지표에서 보면, 국가 보조를 통해서라도 재택근무를 포함한 유연 근무를 확대하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박한슬 약사·작가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윤·김건희 새벽 싸움 말렸다” 계엄 실패뒤 관저 목격자 증언 [실록 윤석열 시대2] | 중앙일보
- “치매 검사 안 해” 버럭한 엄마…병원 모셔가는 세 가지 스킬 | 중앙일보
- "AI 딸깍해 연 9000권 찍었다"…논란의 '괴물 출판사' 실체 | 중앙일보
- 여신도 10년 성착취한 전직 목사…"다윗왕도 여러 여자 뒀다" | 중앙일보
- 여고생 목 졸라 기절 반복…"살려달라 무릎 꿇었다" 무슨 일 | 중앙일보
- "동생이 죽어있다" 신고한 50대 여성…남편도 며칠 뒤 숨졌다, 뭔일 | 중앙일보
- "박나래, 차량서 남성과 특정 행위"…전 매니저, 노동청에 진정서 | 중앙일보
- 2080 치약의 배신, 믿고 썼는데 '중국산'…"6종 자발적 회수" | 중앙일보
- 정형돈 "잘사는 가정 난도질, 미친 거냐" 가짜뉴스에 분노, 뭐길래 | 중앙일보
- '해산물 콤보' 정체 알고보니…베트남서 성매매 알선한 한인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