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의 문장으로 읽는 책] 도둑맞은, 1인칭 가난

공교육을 성실히 이행했으나 학교에서 가르친 세상과 내가 마주친 세상은 많이 달랐다. 학교는 기회의 평등이 있다고 가르쳤지만 사회로 나온 내게 기회는 숨어 있었고 평등은 마음속에만 사는 단어였다. 삶을 비관하는 방법을 스무 개 이상 배워서 스무 살이 된 것 같았다.
-안온 『일인칭 가난』 중에서.

최근 SNS에 괴이하고 끔찍한 챌린지가 유행했다. ‘가난이 지긋지긋하다’고 어그로를 끌다가 명품 등 호사스런 생활을 과시하는 것이다. 양은 냄비 라면과 김밥 옆에 슬쩍 고급 수입차 키를 놓고 “지긋지긋한 가난. 오늘도 김밥에 라면이라니, 언제쯤 이 가난에서 벗어날까”라고 쓰는 식이다. 이른바 ‘가난 챌린지’다. 사회적 비판이 거셌다.
책 제목이 삼인칭 아닌 ‘일인칭’ 가난이다. 20년 동안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살았던 작가의 솔직하고 구체적인 가난 얘기다. ‘가난 챌린지’를 보면서 떠올랐던 박완서의 유명한 문장도 인용했다. “부자들이 제 돈 갖고 무슨 짓을 하든 아랑곳할 바 아니지만 가난을 희롱하는 것만은 용서할 수 없지 않은가. (…) 박완서의 『도둑맞은 가난』 속 ‘나’는 나다.”
“가난한 사람은 누구보다 강력하게 지금의 현실을 벗어나고 싶지만 누구보다 강력하게 현실에 묶여 있다.” “연애 옹호론자들은 충고할 것이다. 마음이 가난한 게 진짜 가난한 거야! 나도 충고하자면, 지갑이 허한 게 진짜 가난한 거랍니다.”
작가는 열아홉에 처음 읽고 기도문이 됐다는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 전문도 옮겨 썼다. 그리고 가슴이 저릿해지는 아래 대목을 곱씹어 외우듯 반복해 여러 번 썼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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