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견인 1등 공신 HBM 경쟁력 여전…SK하이닉스 SWOT 들여다보니
2025년은 가히 ‘SK하이닉스의 해’였다.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서버 투자 확대 ‘붐’이 일어난 덕분이다. 고대역폭메모리(HBM)와 범용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폭발하며 SK하이닉스는 2025년 역대급 실적을 거뒀다. 3분기 기준 11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올려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영업이익률은 50%를 넘겼다.
시선은 이제 미래로 쏠린다. 2025년 보여줬던 성과가 새해에도 여전히 지속될지 의문을 드러내는 이가 많다. 시장 일각에서 AI 거품론이 제기되는 등 전망이 불투명한 데다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 라이벌 기업들의 기술력이 빠르게 올라온 탓이다. SK하이닉스는 2026년에도 역대급 질주를 이어갈 수 있을까. SK하이닉스 경쟁력을 분석하기 위해 강점(S)과 약점(W), 그리고 기회(O)와 위기(T) 요인을 들여다봤다.

HBM 시장의 독보적 경쟁력
2025년 SK하이닉스 실적 견인의 1등 공신은 HBM이다. 일반 D램보다 성능이 월등히 뛰어난 칩으로 AI용 반도체 필수 부품이다. 수익성이 좋아 적은 물량으로도 높은 이익을 가져다준다. 2025년 기준 SK하이닉스 전체 D램 출하량에서 HBM이 차지하는 비중은 20%대에 불과하지만, 영업이익은 HBM에서 절반 넘게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HBM은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와 손잡고 오랜 기간 연구를 거듭해 개발한 반도체다.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 경쟁사 대비 쌓아온 기술력, 양산 생산 능력이 월등히 높다. 2024~2025년 SK하이닉스가 글로벌 메모리 시장에서 강자로 군림한 것도 절대 우위에 있는 HBM 기술력 덕분에 가능했다. 현재 가장 활발히 쓰이는 HBM3E의 경우 사실상 적수가 없는 독점 상태다.
6세대 메모리인 HBM4도 여전히 SK하이닉스가 기술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재설계를 해야 한다는 악성 루머를 딛고 2026년도 공급 계약을 확정했다. 수율(양품 비율)과 성능이 안정 궤도에 올라섰다는 후문이다.
SK하이닉스는 이미 2025년 4분기부터 HBM4 웨이퍼 투입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웨이퍼 투입은 반도체 제조의 첫 단계다. 실리콘 등 원재료를 정제·성장시켜 만든 웨이퍼를 생산라인에 투입하는 과정이다. 사실상 양산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 주요 경쟁사보다 발 빠르게 준비 중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다른 회사들이 HBM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만큼 SK하이닉스가 예전과 같은 점유율은 가져가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기술력이 앞선 SK하이닉스 우위는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BM 생산 물량도 대폭 늘린다. HBM 생산을 맡은 충북 청주 M15X 팹은 2년 동안의 공사를 마무리하고 양산 준비에 들어갔다. 2025년 10월 첫 장비 반입을 시작했다. 2026년부터 SK하이닉스 HBM 생산량 증가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예상보다 빠르게 증가하는 메모리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M15X 생산량 확대도 최대한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며 “2025년부터 건설이 본격화된 ‘용인팹 1’도 향후 일정을 앞당길 수 있도록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W(Weakness) 약점
돈 쓸어 담아도, 나갈 곳이 많다
잘나가는 SK하이닉스의 유일한 약점으로 꼽히는 부분이 ‘재무 부담’이다. 언뜻 들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SK하이닉스는 2025년 한 해만 수십조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막대한 돈을 쓸어 담는 회사가 재무 건전성이 약점으로 꼽히는 것은 분명 모순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SK하이닉스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한 이유가 나온다. 돈을 많이 버는 만큼 ‘쓸 곳’이 많다. 이는 반도체 산업 특성과 관련이 깊다. 반도체 산업은 장비 산업이다. 초창기 생산 시설 확보에 막대한 자금이 든다. 국내외 곳곳에 생산 거점을 건설해온 삼성전자와 달리 SK하이닉스는 아직 생산 공장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경기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팹 4기를 추가로 건설 중이다. 이 클러스터 건설에만 소요되는 금액이 600조원에 달한다. 매년 수십조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는 SK하이닉스라도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게다가 반도체 산업은 극심한 경기 순환을 겪는 업종이다. 호황 때는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이지만, 불황이 닥쳐오면 기록적인 적자를 낸다. SK하이닉스 호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의미다. 추후 다가올 불황도 대비해야 한다.
원달러 환율도 부담이다. 일반적으로 환율 상승은 수출 업종인 반도체 산업에선 좋은 신호로 읽힌다. 같은 달러가 들어와도, 원화로 가져가는 돈이 늘어나서다. 이는 설비 투자 없이 물건을 팔았을 때만의 이야기다. 반도체 주요 설비는 대부분 외국산이다. 게다가 국내 반도체 업체는 관세를 피하려는 목적으로 미국 현지 생산 체제 구축에 상당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일례로 SK하이닉스는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패키징 생산기지를 만드는 데 38억7000만달러(약 5조7000억원)를 투입할 예정이다. 환율이 오르면 이는 곧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여기에 더해 SK하이닉스는 SK그룹 부채비율을 줄이는 역할까지 떠맡았다. 배터리, 정유, 화학, 통신 등 다른 계열사 부진에 SK그룹 재무 부담이 커졌다. 그룹 재무 구조까지 고려한다면 SK하이닉스가 마음 놓고 쓸 돈은 제한적이다.
그나마 정부가 재무 부담을 줄여주는 ‘반도체 지주회사·금산분리 규제 완화’ 방안을 도입해 숨통을 트게 됐다. 이 방안은 첨단전략산업에 한해 지주회사 체제 내 손자회사의 자회사(증손회사) 지분 보유 요건을 현행 100%에서 50%로 낮춰주고, 해당 증손회사에 금융리스업을 허용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SK하이닉스는 SK그룹의 손자회사로 규제 완화안 적용 대상이다.
O (Opportunity) 기회
반도체 슈퍼 사이클 올라탄다
SK하이닉스에 주어진 최고의 기회는 단연 ‘슈퍼 사이클’이다. 슈퍼 사이클은 메모리 수요 대비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반도체 제조 업체들이 막대한 영업이익을 거두는 시기를 뜻한다. 과거 스마트폰 열풍, 클라우드 서버 증설 등 효과로 반도체 업계는 몇 차례 슈퍼 사이클을 겪은 바 있다. 이때마다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반도체 업체들은 막대한 영업이익을 거뒀다.
2025년 들어 메모리 분야 슈퍼 사이클 시대가 열렸다. AI 산업 성장이 본격화한 덕분이다. HBM을 포함한 메모리 반도체 전체가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수익성이 높은 HBM 수요가 급등해 반도체 제조 업체들이 기존 D램 생산라인을 HBM 라인으로 교체, 생산량을 늘렸다. 이 여파로 D램 공급량이 줄어 일반 메모리 시장까지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형국이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는 2024년 1000억달러(약 148조원)였던 글로벌 D램 시장 규모가 서버, HBM 수요 증가에 힘입어 2026년 1700억달러(약 251조원)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AI 작업용 메모리 수요 급증에 따라 서버와 HBM 중심으로 시장이 급성장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SK하이닉스 측은 2025년 3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HBM 제품의 수요 대비 공급이 2027년에도 빠듯하게 유지될 것으로 전망한다. 향후 5년 동안 HBM 시장이 연평균 30%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HBM 수요가 AI 시장의 중장기적 성장세를 바탕으로 급격히 확대되는 만큼 공급이 단시일 내 수요를 따라잡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HBM 제품은 2023년 이후 솔드아웃(완판)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가격 역시 현재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에서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뿐 아니라 일반 D램 수요도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D램 생산능력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증설 물량의 대부분이 HBM에 집중된 탓이다. 범용 D램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DDR5 가격 상승 압력이 2026년에도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2026년 서버용 반도체 출하량이 10% 넘게 증가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한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HBM과 범용 메모리 반도체 모두 호황이라 SK하이닉스는 전 세계 D램 반도체 회사 중 가장 높은 수익성을 보일 것”이라며 “AI 메모리 반도체 1등 기업으로 실적 개선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초강력 경쟁자’ 삼성전자 부상
SK하이닉스에 남은 위협 요인은 ‘경쟁자의 부상’이다. 특히 오랜 기간 반도체 1등으로 군림해온 삼성전자 추격이 부담스럽다.
삼성전자는 압도적인 D램 생산량을 앞세워 전 세계 메모리 시장 최강자로 군림해왔다. 그러나 HBM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SK하이닉스와 달리, 다소 소극적인 투자로 신기술 확보에 실패해 AI 메모리 시장에서 주도권을 내줬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반도체 불황이 덮쳤을 때, SK하이닉스는 HBM을 앞세워 빠르게 회복했지만, 일반 D램에만 의존하던 삼성전자는 적자의 늪에서 오랜 기간 빠져나오지 못했다. 5세대 메모리인 HBM3E까지 SK하이닉스에 시장을 완전히 내주며 자존심을 구겼다. 국내 메모리 반도체 1등 자리도 SK하이닉스에 뺏겼다.
굴욕을 겪은 삼성전자는 1위 탈환 목표에 사활을 건다. 성과는 이미 차세대 메모리인 HBM4에서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가 진행한 HBM4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5년 12월 중순, 엔비디아 관계자가 삼성전자를 방문해 HBM4 SiP(시스템 인 패키지) 테스트 결과가 긍정적이란 반응을 전달했다.
SiP는 여러 개의 칩을 하나의 시스템 반도체로 집적한 것이다. HBM4를 이용, 로직 칩과 함께 패키지로 구성해 전기적, 물리적, 기능적 특성을 테스트한 결과, 삼성전자의 샘플이 구동 속도와 효율 측면에서 가장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의미다.
이번 평가로 삼성전자의 엔비디아 HBM4 공급 가능성이 높아졌다. 테스트가 완료되면, 최종 완제품 상태의 테스트로 넘어가 양산을 위한 막바지 작업에 들어갈 전망이다.
엔비디아는 2026년 하반기, 차세대 AI 메모리인 루빈을 출시할 예정이다. 2026년 2분기부터 본격적으로 공급이 시작되면,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을 맡고 있는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 수익성 확대가 기대된다.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마이크론까지 HBM 시장점유율 확보를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간다. 아무리 앞서 있다고 해도, 경쟁사들이 전력을 다해 쫓아오면 SK하이닉스 입장에선 버거울 수밖에 없다. 주요 고객인 엔비디아가 언제까지 우호적일 것인지도 예측이 어렵다.
팹리스 기업은 특정 업체가 공급을 독점하는 것에 반감이 심하다. 가격 협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최소한 2개 업체가 경쟁하는 그림을 원한다. 지금은 SK하이닉스 기술력이 워낙 앞선 까닭에 사실상 독점을 허용해왔다. 그러나 다른 기업의 기술력이 올라오면 굳이 독점 공급을 허용할 필요가 없다.
SK하이닉스 강자로 만든 비결은 ‘신뢰의 힘’

A. 한때 존폐 기로에 섰던 하이닉스는 SK그룹에 인수된 후 대규모 투자와 인재 채용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와의 경쟁력 격차는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진 상황이었다. 이런 SK하이닉스가 메모리 강자로 거듭난 동력은 ‘신뢰 게임’이다.
반도체 산업의 승리 조건은 크게 3가지다. 첫째, 수평적 협업이다. 반도체는 협업으로 시작해 협업으로 끝나는 산업이다. 둘째, 혁신이다. 반도체는 기술 혁신의 전쟁이다. 셋째, 치열함이다. 기술 미세화와 양산 수율의 시간 싸움은 경쟁사 간 누가 더 치열하게 일하는가의 싸움이다. 공교롭게도 이 세 가지의 승리 조건은 모두 한결같이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협업도, 혁신도, 치열함도 다 조직 내 탄탄한 신뢰를 기반으로 그 힘이 발휘될 수 있다. 구성원을 신뢰하는 문화가 SK하이닉스 경쟁력으로 이어졌다.
Q. SK하이닉스가 HBM 분야에서 유독 두각을 드러낸 이유는.
A. HBM은 SK하이닉스에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과거 회사가 매우 힘든 상황에서도 ‘세계 최초 개발’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제품이었다. SK하이닉스 엔지니어들에게 굉장한 기술적 자부심을 줬던 제품이 HBM이다. 이렇게 각별한 의미가 있었기에 경쟁사와 달리 끝까지 HBM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개발할 수 있었다.
Q. HBM 개발 과정에서 경쟁사와 어떤 차이점을 보였나.
A. 첫째, 경쟁사가 개발 축소를 결정할 때 SK하이닉스는 개발을 계속했다. 과거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를 따라하는 전략만 펼쳤다. 후발 업체로서 선두 업체를 따라가기 위한 ‘패스트 팔로워’ 전략에 충실했다. SK하이닉스가 개발에 실패한 HBM2를 삼성전자는 성공시켰고, 삼성전자의 개발 축소 결정은 SK하이닉스 입장에서도 자연스레 따라가고 싶었을 것이다. 개발은 지지부진하고, 시장은 열릴 기미가 없었다. 그래도 SK하이닉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직원들이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거침없이 표현하는 SK하이닉스 특유의 ‘스피크업’ 문화가 영향을 미쳤다. HBM 관련 실무 조직이 개발 필요성을 꾸준히 강조했고 이를 경영층이 수용했다. HBM에 대한 경영층의 남다른 애착도 주효했다.
둘째, 반도체 칩을 쌓는 패키징 기술인 MR-MUF 기술의 선제적 확보다. 이는 HBM의 고질적 문제인 발열 문제를 해결해낸 핵심 기술이다. 이 기술은 패키징 조직에서 ‘팀장의 미래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통상의 업무와는 별도로 준비하도록 했다.
셋째, ‘원팀 스피릿’으로 불리는 협업 문화다. HBM은 범용 제품에 비해 훨씬 높은 협업이 요구되는 제품이다. 개발 과정에서 수많은 난제가 발생했다. 그때마다 해당 조직에만 맡기지 않았다. 즉각적으로 관련 조직들이 ‘원팀’이라는 비정규 TF를 만들어 힘을 모아 집중 연구한 것이 HBM의 성공 요인으로 이어졌다.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42호 (2026.01.07~01.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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