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관객 이상 작품만 6편, 한국 독립영화는 정말 성장했을까?
[김성호 평론가]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2025년 개봉 한국 독립예술영화 분류작 중 10만 관객 이상 든 작품은 모두 6편이다. 10만 관객 넘는 작품이 6편이나 된 건 7편이었던 2017년 이후 최다다. 독립예술영화 흥행의 기준점이라 하는 1만 관객 이상도 33편이나 넘겨 예년에 비해 나아졌다. 그렇다면 한국 독립예술영화는 나아지고 있는 걸까?
뜯어보면 답이 나온다. 앞의 6편의 목록은 이렇다. 관객 수 50만 명을 넘긴 애니메이션 <퇴마록>을 필두로, <베베핀 극장판: 사라진 베베핀과 핑크퐁 대모험>, <연의 편지>, <세계의 주인>, <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 <홈캠>이 뒤를 잇는다. <베베핀>은 <핑크퐁> 제작사가 인간을 주인공 삼아 전략적으로 제작한 차세대 유아 애니 시리즈다. <아기상어>, <핑크퐁>에 이어 총력을 기울인 작품으로 뒤뚱뒤뚱 걷는 세대에겐 가히 폭력적인 매력을 구가한다.
다음 <연의 편지>는 네이버 웹툰 시리즈의 극장판 작품이다. 세계 각국에 수출됐을 만큼 인기를 끈 이 웹툰의 극장판 애니에 무려 22만 관객이 든 건 어느 정도는 예견된 결과라 하겠다. 한국 독립영화계가 높이 평가한 윤가은 감독의 <세계의 주인>, 천만 관객이 든 <극한직업> 조감독과 드라마 <멜로가 체질> 연출을 거친 김혜영 감독의 장편 데뷔작 <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 또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저예산 공포영화 <홈캠>이 그 뒤를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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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마록 스틸컷 |
| ⓒ 쇼박스 |
2025년 한국 독립예술영화 최대 흥행작은 <퇴마록>이다. 무려 50만 관객이 넘게 들어 지난해 전체 박스오피스 41위에 올랐다. 유아, 아동을 대상으로 한 작품군을 제하면 앙상함만 남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참담한 현실을 고려할 때 <퇴마록>의 선전은 고무적이다. 이우혁 원작 소설 중 초반 일부만을 영화화했기에 후속 작품을 장기적으로 이어갈 가능성도 닫히지 않은 상태다. 원작 팬을 극장으로 불러 모을 수 있는 흡인력 있는 콘텐츠란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퇴마록>의 상황을 아는 이는 마냥 웃을 수가 없다. 2025년 한국 독립예술영화 흥행 1위란 기록에도 손익분기점의 절반밖에 채우지 못한 것이다. 한국 애니 대표 제작사 중 하나인 로커스가 2019년부터 시리즈 전체를 애니화하려 준비했고, 발전한 기술을 총동원해 제작한 결과가 지난해 개봉한 <퇴마록>이다. 기획부터 시나리오, 애니화까지 5년 넘는 시간이 들어간 이 작품이 기대했던 관객에 50만 명은 다소 아쉬운 수치다.
그럼에도 영화는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단기적으로는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으나 충분히 원작 소설에 추억을 지닌 관객을 극장으로 걸음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단순하지만 매력적인 이야기를 3D 애니 기술로 매끄럽게 구현했다. 세계적 수준에 비하면 다소 아쉬울 수 있지만, 충분히 다음을 기대하게 할 정도는 됐다. 그 결과가 개봉 몇 달 동안 꾸준히 관객이 든 저력이고, 공식 굿즈를 일찌감치 매진시킬 만큼의 인기다. 남은 건 더 나은 차기작, 더 크게 이는 분위기뿐이다. 무엇보다 탄탄한 원작이 버티고 있다는 점이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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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계의 나라에서 스틸컷 |
| ⓒ 전주국제영화제 |
26회 전주국제영화제가 폐막작으로 선정한 다큐는 <기계의 나라에서>다. 2023년 제15회 전주프로젝트 '전주랩: 영상콘텐츠프로젝트'에 선정돼 전주영화제작소상을 받기도 했던 다큐로 고용허가제 정책으로 한국에 입국해 소위 3D산업(Dirty, Dangerous, Difficult)에 투입된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들을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촬영해 내놓은 결과물이다. 이들의 노동 위에 일상을 영위하는 한국인들이 외면해 온 진실, 그 피땀 눈물 어린 삶이 이 진지한 다큐 안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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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콘크리트 녹색섬 스틸컷 |
| ⓒ 한국독립영화협회 |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주최하는 행사 중 독립영화 쇼케이스를 유달리 좋아한다. 그 행사의 가치와 의미에 대하여 지금껏 열 편 가까운 기사를 낸 것도 그래서다. 마음 담아 이어온 독립영화 쇼케이스가 마침내 끝에 다다랐다는 소식을 <콘크리트 녹색섬>의 비평과 더불어 냈다. 서울시 예산이 삭감되며 행사를 더는 이어갈 수 없게 됐단 얘기였다. 무려 19년을 이어온 이 행사의 마지막, 227회 독립영화 쇼케이스를 장식한 작품은 이성민 감독의 장편 다큐멘터리 <콘크리트 녹색섬>이었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가 독립영화 쇼케이스의 운명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때문이었을 테다.
<콘크리트 녹색섬>은 이제 재개발이 끝난 강남 개포 주공 1단지에서 지난 2017년부터 나무를 기록하고 기억하며 지키는 운동을 펼쳐왔던 이성민 감독의 작품이다. 제가 직접 살았던 이 동네 울창한 나무들이 재개발을 앞두고 모조리 베어진단 사실이 이 영화의 문제의식이 됐다. 어째서 재개발은 그 구역 안에 든 생명을 고려하지 않는 것일까. 일괄 삭제하고 다시 심는 것 외에 다른 방안은 없는 것일까. 도심 숲이라 해도 좋을 수만 그루의 나무를 돌아보고, 그 나무를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의 눈에 대신 든 것이 오로지 개발과 자본의 논리뿐이란 사실을 부각하는 이 다큐의 솜씨가 상당하다.
재개발 예정지 내 나무의 이야기를 전하는 행사를 개최하고, 민의를 모아 지자체며 재개발조합에 전달하는 감독의 노력이 그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이에게까지 다가가 은근하지만 분명한 파문을 일으킨다. 돈 되지 않는 것은 아무렇지 않게 솎아 내는 사람들과 돈 되지 않는 것에서도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들, 그중 어느 편에 설지를 이 영화가 묻고 있다.
영화인 및 시민들의 반발 때문일까. 서울시와 서울시의회는 폐지키로 했던 독립영화 쇼케이스 예산을 일단 복원하기로 했다. 앞서 종료가 발표된 이 행사의 운명이 아직 확고히 정해진 건 아닐지라도 희망을 이어가게 된 것 만큼은 고무적이다. 올해 개봉 가능성이 타진되고 있는 <콘크리트 녹색섬>이 보다 많은 이에게 닿기를 바라는 건, 아직은 미약한 목소리가 마땅히 더 커져야만 한다고 굳게 믿고 있어서다. (관련기사: 강남 아파트 속 나무들... '콘크리트 녹색섬' 지키려는 사람들 https://omn.kr/2g4jb)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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