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졌던 마을이 통째 호텔로…빈집·빈 점포 활용하는 일본 [스페셜리포트]

박수호 매경이코노미 기자(suhoz@mk.co.kr), 정다운 매경이코노미 기자(jeongdw@mk.co.kr) 2026. 1. 8.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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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5. 빈집·빈 점포 활용

불 꺼졌던 마을이 통째 호텔로

쇠퇴한 상점가와 구도심을 되살리는 일본식 해법은 ‘대규모 개발’이 아니라 빈집·빈 점포 용도를 재정의하는 데서 출발한다. 핵심은 공실을 줄이기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이 머물 이유를 설계하는 것이다. 일본 곳곳에 등장한 ‘로컬 크리에이티브 몰’ 유형은 작은 공간을 촘촘히 엮어 상권 전체 체류 시간과 회전율을 끌어올린다.

오사카 동쪽 외곽 후세 지역 시장통에 위치한 ‘세카이호텔’은 빈집을 활용해 지역 상권까지 활성화한 성공 사례로 꼽힌다. 현지 건설사인 쿠지라건설은 오랜 기간 방치된 빈집과 빈 점포를 장기 임대해 객실로 만들었다. 객실 안은 세련된 현대식 디자인으로 완전히 새단장하되, 외부 간판은 그대로 남았다. 투숙객은 ‘여성복 키요시마’라는 옛 기모노 가게 간판이 달린 사무실을 찾아와 체크인 한다. 그 다음 각자 지물포, 과자가게, 물리치료원 등을 고쳐 만든 객실을 배정받는다. 옛 정취를 그대로 남긴 덕분에 무심코 지나면 호텔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세카이호텔은 2025년 말 기준 10개 동, 총 23개 객실에 최대 90명을 수용할 수 있다.

별도의 식당을 만들지 않았다는 점 역시 세카이호텔 특징이다. 투숙객의 식사와 목욕, 체험은 인근 상권의 가게와 목욕탕이 맡는다. ‘마을 전체가 호텔’이라는 발상이다. 숙박 수요가 골목 상권으로 직접 흘러가도록 동선을 설계해 투숙객이 지역 상권에서 소비하도록 유도했다. 이런 사업 모델은 대규모 투자를 피하면서 지역 상권을 활성화시키고, 방문자가 꾸준히 유입되도록 하는 선순환 구조로 평가받는다.

아이치현 가스가이시 카치가와역 앞 골목의 공유형 상업 공간 ‘타네야’는 소규모 개발만으로 쇠퇴한 상점가를 되살린 사례로 꼽힌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운영한 ‘타네야’는 빈 점포를 장기 임대나 관리 위탁 방식으로 확보해 직접 공간을 기획·운영하는 방식으로 출발했다.

타네야는 폐허 직전의 목조 점포를 허물지 않고 최소한의 공사만 거쳐 카페(햐쿠지), 요가 스튜디오(소코이타리), 꽃집(나고미노하나), 헌책방(카에리미치)이 함께 쓰는 공유형 상업 공간으로 바꿨다. 초기 투자비를 낮춘 대신 임대료 문턱을 낮춰 젊은 창업자와 크리에이터를 유치했고, 공용 공간을 만들어 점포들이 서로 교류하고 시너지를 내도록 했다.

도시재생 전문 업체 ㈜NOTE(이하 노트)는 10여년 전 단바사사야마시의 골칫거리로 전락한 빈집을 일본 전통 분위기를 지닌 호텔로 바꿔 운영 중이다. 옛 주택 23채를 빌리거나 사들여 수리하고 임대 수익을 얻는 방식으로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객실 11개를 사사야마성 터를 중심으로 숙박동과 음식점, 상점, 공방, 역사시설을 연계해 동네 전체가 하나의 호텔처럼 보이게 했다. 거리 초입에 호텔로비가, 도보로 5~10분 거리에 객실이, 또 도보 5분여 거리에 호텔 편의시설이 있는 식이다.

후지와라 다케시 노트 대표는 “호텔이 생기면 주변에 식당이 생기고, 고용이 창출되며, 젊은 층 유입이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단바사사야마시에 따르면, 2017년 연간 15가구에 그쳤던 이주 가구 수는 2022년 64가구로, 같은 기간 전입 인구는 37명에서 174명으로 늘었다. 노트는 단바사사야마시 사업을 시작으로 일본 전역 31개 지역에서 고민가 호텔 브랜드 ‘닛포니아(Nipponia)’ 개발 사업을 진행 중이다.

타네야나 노트 사례는 쇠퇴한 상점가를 살리는 해법이 꼭 대규모 개발일 필요는 없으며, 작은 거점 하나가 상권 전체를 회복시키는 ‘집객 거점(anchor)’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공공 보조금에 의존하기보다 민간의 수익 모델을 전제로 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일본 전문가인 염동호 한신대 사회혁신경영대학원장은 “공공의 지원금으로 해결하는 도시 재생이 아니라, 민간의 사업 논리로 직접 임대·운영을 책임지고 상권을 다시 짜는 방식이 유효했다”며 “사람의 체류 시간과 소비를 설계하면 작은 공간도 상권의 엔진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디오디(DOD)가 운영하는 ‘DOD 캠프 파크 교토’. (DOD 제공)
무인양품이 운영하는 ‘무지 베이스 오이카와’. (무인양품 제공)
유형 6. 팬덤은 최고의 집객 장치

상품 대신 ‘공간·경험’을 팝니다

기업이 지역 상권을 살리는 또 다른 해법은 ‘브랜드 팬덤’을 활용하는 것이다. 상품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공간을 통해 경험을 제공하면, 약점이었던 입지는 ‘개성’이 된다.

일본에서는 캠핑·아웃도어 브랜드가 이 공식을 빠르게 실험했다. 사람이 오지 않던 지방 공원과 캠핑장을 활용하는 식이다.

캠핑·아웃도어 용품 브랜드 디오디(DOD)는 한때 방문객이 거의 없던 교토부 난탄시 소유의 ‘스프링스 히요시’ 공원에 주목했다.

디오디는 2022년 봄부터 이 공간을 ‘DOD 캠프 파크 교토(DCPK)’로 위탁 운영하기 시작했다. 텐트부터 의자·식기·해먹까지 캠핑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디오디 제품으로 채우고 ‘빈손 캠핑’ 마케팅을 전개했다. 이용자는 장비를 구입하지 않아도 브랜드를 온전히 체험할 수 있다는 뜻이다. SNS를 통해 캠핑장이 입소문을 타면서 접근성이 떨어지던 시골 공원은 오히려 ‘성지’가 됐다. 주말마다 예약이 꽉 차고, 지역 상권에는 먹고 마시는 외지인 소비가 늘었다. 덕분에 디오디는 제품 판매와 캠핑장 운영 수익을 얻고, 지자체는 유지비 부담을 덜었다. 방문객이 늘어나면서 DCPK에서 근무하는 지역 주민이 50명가량 늘었다.

디오디 관계자는 “지자체가 관광지로 개발했지만 찾는 이가 없어 방치돼 있던 온천 시설을 리모델링했다”며 “열악한 세면 시설과 불편한 화장실 탓에 캠핑에 거부감이 있던 초보 캠퍼도 편하게 여행하듯 방문하는 캠핑장이 됐다”고 설명했다. 디오디는 DCPK 성공 사례를 참고해 한국에서도 온천 또는 수영 시설을 활용할 수 있는 지방 소도시를 물색 중이다. 한국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동시에 관광객 유치를 통해 쇠퇴해가는 지역을 살리겠다는 포부다.

프리미엄 캠핑·아웃도어 브랜드 ‘스노우피크’는 이 공식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 니가타현 산조시, 오이타현 히타시, 아이치현 도요타시, 고치현 토사시미즈시 등지에 ‘스노우피크 캠프필드’와 캠핑형 리조트를 만들었다. 캠핑형 리조트는 텐트·글램핑 등 야외 숙박을 기본으로 하되 호텔급 편의(침구·샤워·전기)를 제공하는 형태다. 스노우피크는 각 지역의 환경과 특성에 맞춰 다양한 체험 콘텐츠를 꾸렸다. 브랜드 팬덤을 전국 단위로 순환시키고 지역 체류를 늘리는 전략이다.

가구·의류·잡화 등 생활용품을 파는 ‘무인양품’은 지방 거점형 숙박·체류 공간 ‘무지 베이스(MUJI BASE)’를 운영하고 있다. 무지 베이스는 도쿄 등 대도시를 벗어난 지역 빈집이나 폐교를 리모델링해 숙소로 활용하는 사업이다. 단순 숙박이 아니라 무인양품의 가구와 생활용품으로 채운 공간에서 며칠간 머물며 지역 문화를 체험하도록 설계하는 식이다.

치바현 보소반도 산간에 위치한 ‘무지 베이스 오이카와’는 지자체 협조를 받아 폐교된 오이카와초를 객실과 체험 공간으로 바꾼 경우다. 이 학교는 학생 수 감소로 2013년 폐교된 후 4년 동안 방치돼 있었다. 지금은 관광객이 며칠씩 머물며 지역 식료품을 사고 식당을 이용하는 거점으로 바뀌었다. 단체 모임이나 기업 연수 등에도 활용되는 중이다. 무인양품은 제품 판매를 넘어 ‘라이프스타일 체험’이라는 새로운 수익 구조와 브랜드 충성도를 얻었다.

교육·출판기업 ‘베네세’는 작은 섬 나오시마를 예술 관광지로 탈바꿈시켰다. 가가와현 세토내해(瀨戶內海) 수많은 섬 중 하나인 나오시마는 둘레 16㎞, 면적 약 8㎢, 인구는 3000명 남짓인 외딴 섬이다.주력 산업이던 광업이 사양길을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인구가 줄고 산업폐기물만 남은 ‘잊혀진 섬’이 돼 버렸다.

베네세는 1990년대 초부터 섬 전체를 예술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대형 놀이시설이나 상업지구를 조성하는 대신,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을 시작으로 섬 곳곳에 미술관과 설치 미술을 배치했다. 주민이 살던 빈집과 옛 건물을 전시장 겸 관광 자원으로 바꾸는 ‘아트 하우스 프로젝트’도 추진했다. 방문객은 미술관 한 곳만 둘러보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섬을 거닐며 자연스럽게 마을과 상권을 통과하게 된다.

그 결과 나오시마는 연간 국내외 관광객 50만명 이상이 찾는 명소가 됐다. 숙박·식음·교통 등 지역 소비가 눈에 띄게 늘었다.

물론 나오시마 모델을 둘러싼 논쟁은 있다.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불편을 호소하는 주민이 늘어서다. 예술 중심 개발이 주민 삶과 동떨어졌다는 문제 제기도 이어진다. 그럼에도 나오시마 모델이 시사하는 바는 있다. 베네세는 단기 수익보다 브랜드 철학과 장기 운영을 앞세워 예술 팬덤을 섬으로 끌어들였다. 섬은 일본 대표 예술 관광지로 자리잡았고, 주변 상권이 활성화됐다. 디오디·스노우피크·무인양품 사례는 지자체가 공간과 행정 지원만 제공하되, 콘텐츠(공간)와 집객은 브랜드가 직접 운영하며 사업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로 꼽힌다.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41호 (2026.01.01~01.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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