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니 재벌, 과거가 그립지 않은 남자의 질문

최해린 2026. 1. 7. 15:0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리뷰] 영화 <굿 포츈>

[최해린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할리우드의 저예산 코미디 영화가 오랜만에 한국 극장가를 찾아왔다. 바로 7일 개봉한 영화 <굿 포츈>이다. 세스 로건, 아지즈 안사리, 그리고 키아누 리브스 등 우리에게 익숙한 스타들을 주연으로 내세운 본작은 코미디의 특성을 빌려 통렬한 사회 비판을 이어간다. 게다가 잘 만든 '풍자 영화' 한 편을 넘어선 가치까지 지니는데, 본작이 우리에게 익숙한 장르를 어떻게 변형하여 특별한 영화로 거듭나는지 알아보자.
 영화 <굿 포츈> 스틸컷
ⓒ 라이온스게이트
현실 지적에 새어 나오는 웃음

<굿 포츈>의 첫 장면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웃겨서는 안 될 장면이다. 인도계 미국인인 주인공 '아지(아지즈 안사리)'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전공했으나 아무도 그를 고용하지 않아 일용직을 전전한다. 배달 업무부터 바쁜 사람 대신 가게 줄 서 주기까지,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열심히 일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팁 몇 푼이 전부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월세 탓에 아지는 자동차에서 잠을 청하는 생활을 이어가는데, 신경을 진정시키는 ASMR 영상을 들으며 잠들려 해도 불현듯 튀어나오는 큰 소리의 광고가 그의 숙면을 방해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아지의 삶을 전시하는 오프닝은 관객에게 비극적으로 느껴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관람하다 보면 이러한 장면에서 실소를 금치 못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일까? 바로 아지의 삶이 특출이 비루한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우리 이웃 내지는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당장 국내에만 860만 명이 넘는 '비임금 노동자'들이 배달과 심부름을 업으로 삼으며 살아가고 있다. 내집마련의 꿈은 완전히 물 건너간 것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는 현실, 그리고 '프리미엄'이니 '플러스'니 하는 명칭의 구독 상품을 매달 구매하지 않으면 시도 때도 없는 저급 광고에 시달리는 현실까지. 영화 속 아지의 삶은 우리의 인생과 맞닿아 있다. 과장된 아이러니가 아니라, 공감 가는 이야기로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다.

영화 <굿 포츈>은 이러한 아지를 도우려는 천사 '가브리엘(키아누 리브스 분)'이 아지와 상속 재벌 '제프(세스 로건 분)'의 삶을 바꿔 놓으면서 시작된다. 원래대로라면 아지가 제프의 삶에도 나름의 고통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본래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해야 하지만, 그러지 않고 부를 계속 영위하기를 희망하면서 일이 꼬인다.
 영화 <굿 포츈> 스틸컷
ⓒ 라이온스게이트
왜 '천사의 실수'일까?

<굿 포츈>은 두 가지 방법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위치 전환 코미디'의 공식을 비틀어 버린다. 첫째로 상술한 바와 같이 아지가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이 독특하고, 둘째로는 제프와 아지의 삶을 바꿔 놓은 주체가 '신'이 아닌 천사, 그것도 말단 천사의 실수라는 데 있다.

위치 전환 코미디의 대표적인 예시로는 2003년 영화 <프리키 프라이데이>가 있다. 엄마와 딸의 몸이 뒤바뀌어 각자의 고충을 이해하게 된다는,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플롯은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여기서 엄마와 딸의 삶이 뒤바뀐 이유는 영험한 점성술사가 모녀에게 교훈을 주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굿 포츈>의 가브리엘 역시 그러한 방식으로 아지를 가르치고자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경제적 풍요로움은 그 어떤 교훈을 얻더라도 발을 빼기 어려운 혜택이었다. 결국 제프와 아지가 한동안 자기 삶으로 돌아가지 않으면서 가브리엘 역시 인간으로 강등되는데, 바로 이 우스꽝스러운 지점이 <굿 포츈>이 기록하고자 하는 시대정신의 진수를 담고 있다.

영험한 존재가 개입하는 영화는 항상 '큰 뜻'의 신성함을 강조해 왔다. 주인공이 겪는 불안과 고난 역시 전부 신 내지는 우주가 마련한 큰 계획의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이를 견디고 수용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짐 캐리 주연의 2003년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에서는 신의 힘을 얻게 된 남자가 전능함이 아닌 소소한 삶에 진정한 힘이 있음을 깨닫고 원래의 삶으로 돌아간다. 결국 '특별한' 체험을 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그 삶이 미약하게나마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할 수 있는 선택이다.

<굿 포츈>의 아지는 상황이 다르다. 자기 몸을 깎아 가며 하루라도 더 일하지 않으면 당장 입에 풀칠조차 할 수 없고, 삶의 소중함을 만끽하기에는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바쁘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지금의 고난은 전부 위대한 계획의 일부'라는 말은 공신력을 잃는다. 억만장자와 하청 노동자, 아지와 제프의 차이가 '신의 계획'이 아니라 '천사의 실수'처럼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러한 차이점은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 차이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말 ~ 2000년대 초에는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면 행복한 삶을 일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신(사회 구조)의 계획이 신성 불가결한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플랫폼 경제'에 사로잡힌 2020년대에,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공허한 외침처럼 들리는 것이다. <굿 포츈>은 익숙한 장르적 관습에 의존하는 대신, 사회적 변화를 반영한 '천사의 실수' 설정을 추가함으로써 괴리감 없는 현실 공감 코미디 영화로 거듭난 것이다.

<굿 포츈>은 천사가 등장하는 판타지 영화가 아니라, 작금의 현실을 살아가는 수많은 노동자 시민의 애환을 달래주는 웰메이드 희극이다. 거기에다 변화한 시대에 발맞추어 장르적 소재까지도 변형했기에, 우리 시대의 지표가 될 코미디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 듯하다. 각박한 현실 속 잠깐이라도 웃고 싶다면, 영화관에서 <굿 포츈>을 관람해 보는 것은 어떨까.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