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철거한 임실 삼요정, 독립운동가 양성소였다
[이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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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실 운암면 선거리의 삼요정(三樂亭) |
| ⓒ 이완우 |
이 정자는 삼혁당 김영원(金榮遠, 1851~1919)이 1883년에 애국의 일념으로 세웠다. 그는 지역의 촉망받는 유학자에서 동학도가 되었고, 동학 접주로 동학농민군에 참여하였다가 3·1만세운동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김영원은 1878년 정읍 칠보 무성서원의 도내 장의가 되었고, 이듬해에는 전라도 서원 도내 색장을 역임하였다. 1883년 봄에 애국의 일념으로 임실 운암면 선거리 선무봉 아래 삼요정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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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4년 8월, 김영원의 임실 지역 동학 접주 임명장 (삼요정 자료 사진) |
| ⓒ 이완우 |
龍潭 (용담)
无極大道大德 大先生 主永 侍布德 (무극대도대덕 대선생 주영 시포덕)
北接 (북접)
无極大道大德 大道主 奉定 (무극대도대덕 대도주 봉정)
任實 无極大道大德 爲 接主 (임실 무극대도대덕 위 접주)
金炳遠 奉受 (김병원 봉수)
甲午八月 日 (갑오팔월 일)
1894년 음력 11월, 우금치 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은 관군과 일본군의 연합군에 의해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다. 이 전투 이후 동학 지도부는 사실상 붕괴되었고, 전라도 일대에는 대대적인 토벌과 연좌 처벌이 이어졌다. 접주·지도자급 인물들은 체포 즉시 처형되거나, 가혹한 심문을 받는 상황에 놓였다.
임실 지역의 동학 접주로서 동학농민군에 참여한 김영원은 체포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김영원이 회문산 일대로 몸을 피한 것으로 전해진다. 회문산은 지형이 험하고 골짜기가 깊어, 외부의 추적을 피하기에 유리했을 뿐 아니라, 전라도 내륙과 섬진강 유역을 잇는 이동로의 결절점이라는 전략적 특성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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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3년, 김영원의 동학 북접의 대도주 임명첩 (삼요정 자료 사진) |
| ⓒ 이완우 |
名帖 (명첩)
龍潭淵源 劒岳布德 (용담연원 검악포덕)
北接法大巡主奉 命傳授 (북접법대순주봉 명전수)
康津 金炳遠 奉受 癸丑生 慶州后人 (강진 김병원 봉수 계축생 경주후인)
布德天下 廣濟蒼生 輔國安民之大道 (포덕천하 광제창생 보국안민지대도)
癸卯年三月 日 (계묘년삼월 일)
삼요정, 이 강학의 마루 공간은 단순한 정자가 아니라 유교적 서당의 형태를 빌리면서도 새 시대의 학문과 민족의식을 담아내려는 '사설 교육의 거점'이었다. '정자(亭)'는 마을 공동체가 드나들기 쉬운 열린 공간이었다. 그래서 삼요정은 가르침과 모임, 토론과 결의가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장소로 기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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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실 삼요정 현판 |
| ⓒ 이완우 |
김영원의 두 제자인 박준승과 양한묵은 3·1만세 운동의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하였다. 스승인 김영원은 전북의 3·1만세운동을 주도하였고, 일경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으로 1919년 8월 26일에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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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만세운동 민족대표 박준승의 생가 기념광장 |
| ⓒ 이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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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만세운동 민족대표 박준승의 생가 기념광장 |
| ⓒ 이완우 |
박준승은 임실을 근거지로 활동한 천도교계 민족운동 지도자이자 3·1만세운동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동학에서 천도교로 이어지는 사상적 계보 속에서 민족의 자각과 자치를 중시한 인물로, 지역 사회의 계몽과 조직화를 통해 근대적 민족운동의 토대를 다졌다. 임실은 그의 사상과 실천이 구체적 현실로 뿌리내린 현장이었다.
3·1만세운동 이후 박준승은 손병희를 중심으로 한 천도교계 독립운동 노선에 깊이 관여하며, 탄압 속에서도 민족 계몽과 종교 활동을 지속했다. 그의 행보는 민족의 앞길을 모색한 꾸준한 실천이었다.
양한묵은 고향이 전남 해남이었다. 학구열이 강한 양한묵이 지역을 넘어 명망 있는 스승을 찾아 유학했을 가능성이 있다. 김영원은 유학자로서 정읍 칠보 무성서원의 장의와 전라도 서원 색장을 역임한 유학자였다. 김영원이 동학으로 입도하였고, 양한묵도 스승을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양한묵은 전남 해남 출신으로, 3·1만세운동 직후 체포되어 서대문감옥에서 옥중 순국(1919년 5월 26일)하였다. 오늘날 해남 옥천면 영신마을에는 생가가 복원되고 기념관이 조성되었다. 이들 시설은 현충 시설로 등록되어 순국비가 자리해 그의 삶과 옥중 순국을 지역의 역사교육 자산으로 전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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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실 운암면 선거리의 삼요정(三樂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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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요정에서 시작된 김영원의 강학과 민족교육은 박준승의 생가터 기념광장으로 이어지며, 임실의 땅 위에 3·1만세운동의 정신 지도를 남겼다. 스승과 제자의 공간을 따라 걷는 이 길은, 과거를 기리는 답사를 넘어 오늘의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계승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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