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습 그대로 발견... 400년 전 애틋한 사랑을 만나다
[오순미 기자]
여름날 끈적한 공기는 버거워도 겨울의 시린 공기는 기꺼이 견딜 만하다. 한기가 틈탈까 꽁꽁 싸맬지라도 여름과 겨울의 갈래길에선 주저 없이 겨울로 들어설 것이다. 지극히 사적인 취향이지만 서늘한 기운은 버릴 수 없는 감각 중 하나라 매섭지 않다면 사부작사부작 나서볼 만하다.
십 년이 넘었으려나? 헛제삿밥이 기억에 까마득하다. 경북 안동은 다소곳한 한옥의 도시다. 종가댁 마루에 걸터앉으면 종부의 노고가 짐작될 만큼 반질거린다. 예와 학문의 근본이 서린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을 둔 성리학의 본고장이라 농암 이현보, 퇴계 이황, 서애 류성룡의 숨결이 바람처럼 스치는 곳이기도 하다. 절제와 책임을 중시하는 '문중 문화'와 '선비 문화'가 괸 안동에 다시 한번 발을 디뎌보았다.
국내에서 가장 긴 목조 다리 '월영교'로 향하는 길이 한적하다. 느긋한 여유가 아른거리는 그 길을 따라간 건 지난 12월 28일 마지막 일요일이었다. 낙동강 상류 영락교를 지나 주차장으로 들어서자 먼저 온 여행자들이 여기저기서 얼굴을 내밀었다. 겨울을 누리러 온 그들에게 동질감이 느껴져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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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물관에서 받은 새해 선물 글귀 '불성무물' |
| ⓒ 오순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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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원이 엄마'의 언문 편지. 당시의 장례, 신앙, 가족관을 엿볼 수 있는 자료. 한글창제 후 백 년이 지난 시점에서 쓰인 편지. |
| ⓒ 오순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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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리카락을 잘라 삼 줄기와 엮어 지은 미투리 |
| ⓒ 오순미 |
원이 엄마가 삼은 미투리와 편지는 어두운 무덤 속에 400여 년이나 갇혔다가 그때 모습 그대로 발견되어 월영교에 부활했다. 뿐만 아니라 조선 사회의 장례·신앙·가족관을 보여주는 드문 사례여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도 소개된 적이 있단다. 헛된 수고와 노력은 없다는 걸 그녀가 남긴 한 켤레의 신발이 소리 없이 전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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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이 엄마'의 미투리를 본뜬 형상의 월영교 낮 풍경 |
| ⓒ 오순미 |
해가 짧은 겨울이라 자연광이 사라지기 전 서둘러 월영교를 건넜다. 야경이 우월하다지만 낮이어야 볼 수 있는 광경도 궁금했다. 월영교의 낮 빛은 안동의 분위기에 걸맞게 부드럽고 고요했다. 산세와 월영교가 비친 낙동강 위를 걸으며 달배의 연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응태 부부의 사랑과 연인의 낭만이 달무리처럼 번졌다. 사랑 이야기와 어우러진 월영교는 단순한 보행교라기보다 사람과 세월을 잇는 세기의 가교 같았다.
중간을 차지한 월영정에 오르면 낙동강 풍경이 육면 가득 펼쳐진다. 기둥과 기둥 사이 목재 문양이 세련된 액자 틀 같아 눈길만 돌려도 각기 다른 풍광이 동양화 작품처럼 정박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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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동강을 동서로 잇는 월영교 야경. 안동 민속촌(동쪽 성곡동)에서 월영공원(서쪽 상아동)을 연결하는 월영교는 길이 387m. |
| ⓒ 오순미 |
월영교 부근엔 볼만한 명소가 다양하다. 안동시립박물관을 비롯하여 안동 석빙고, 선성현객사(관리 숙소), 이육사 시비(광야), 월영대, 기와 가마터 등 30여 가지나 되는 문화유산이 여행객을 붙든다. 지금은 앙상하지만 벚나무가 줄지어 선 '안동호반나들이길'에 봄바람이 기웃대면 벚꽃잎이 눈발처럼 흩날릴 거라 예상하니 아직은 먼 봄이 벌써 마음을 흔든다.
안동에서 정작 가고 싶었던 곳은 '낙강물길공원'이라 제일 먼저 찾아갔었다. 클로드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을 연상케 한대서 저장해둔 곳이다. 공원 길목에서 공사 중 표지판과 마주쳐 다른 길을 찾았으나 방법이 없었다. 알고 보니 안동댐 안전 강화 공사로 작년 12월부터 3년간 임시 통제구역이 되었단다. 한발 늦은 발길을 돌리며 서운했지만 월영교 감성 야경과 사랑의 편지가 아쉬움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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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동시립박물관부터 월영교, 석빙고 등이 모인 안동 민속촌 관람도. 박물관부터 월영교, 안동 민속촌, 주차비까지 무료이며 연중무휴여서 계절과 시간에 상관없이 언제든 방문할 수 있다. 박물관만 1월 1일, 설, 추석 당일이 휴관일이다. |
| ⓒ 오순미 |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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