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포기만 문제인가... 교실에 퍼진 '국포자'의 현실

김슬옹 2026. 1. 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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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6년 차 고등학교 국어교사가 말하는 대한민국 국어교육의 위기

[김슬옹 기자]

▲ 한글학회에서 사전 말뭉치 앞에 선 문영민 교사 (왼쪽부터, 김한빛나리 한글학회 사무국장, 문영민 교사, 최수진 일본 한국어교사, 필자) @임찬우
ⓒ 임찬우
수학을 포기하는 '수포자' 못지않게 국어를 포기하는 '국포자'가 많다는 충격적인 현실이 교실에서 확인되고 있다. 26년 경력의 고등학교 국어교사 문영민씨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국어를 포기한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토로했다.

입시 위주의 교육 현실, EBS 교재에 종속된 수업 구조, 디지털 환경에 노출된 학생들의 독해력과 어휘력 저하까지. 대한민국 국어교육의 위기를 현장 교사의 목소리로 들어봤다.

문 교사는 지난 1월 2일, 한글가온길 답사를 위해 부산에서 서울을 찾았다. 답사 이후 한글학회에서 진행한 대화에서 그는 현재 교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어교육의 현실을 솔직하게 전했다.

문 교사는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26년째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가 체감하는 교실의 변화는 적지 않다.

"고등학교는 대입에 너무 얽매여 있어요. 성적도 상대평가다 보니 학생들이 굉장히 민감하고요. 그러다 3학년쯤 되면 국어를 포기한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수포자'라는 표현은 익숙하지만 '국포자(국어 포기자)'라는 말은 낯설다. 하지만 문 교사는 현장에서는 국포자가 수포자 못지않게 많다고 말한다. 왜 학생들은 모국어인 국어를 포기하는 것일까.

독해력과 어휘력의 붕괴, 스마트폰 세대의 한계

문 교사가 가장 심각하게 꼽은 문제는 '학생들의 독해력 저하'였다.

"문학은 어느 정도 하면 따라올 수 있는데, 비문학 독해는 정말 심각해요. 어릴 때부터 휴대전화에 계속 노출되다 보니 긴 글을 끝까지 읽어내지 못해요. 글이 길어지면 집중도 안 되고, 이해도 잘 안 되니까요."

어휘력 부족도 문제다. 책을 읽지 않으니 낱말을 모르고, 낱말을 모르니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짧은 영상과 SNS에 익숙해진 세대에게 긴 호흡의 글을 읽고 사고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운 과제가 되고 있다.

국어 포기의 배경에는 입시 구조도 크게 작용한다.

"영어가 절대평가가 되면서 학생들이 오히려 영어를 더 선호해요. 수시 최저를 맞추려면 국어가 부담이 크거든요. 그래서 3학년 초에 와서 '선생님, 죄송한데 국어는 포기했어요'라고 말하는 학생도 있어요."

영어는 일정 점수만 넘기면 되지만 국어는 여전히 상대평가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투자 대비 효율이 낮은 과목을 포기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처럼 받아들여진다. 교사로서는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3학년 국어 수업의 현실은 더욱 암담하다. 교과서는 사실상 EBS 교재로 대체되었다.

"전국 대부분의 고등학교가 3학년 때는 EBS 교재를 씁니다. 형식상 국어 수업이지만 실제로는 EBS가 교과서인 셈이죠. 다른 수업을 하려고 하면 학생들이 먼저 '선생님, 우리 3학년인데 이거 안 하면 어떡해요'라고 말해요."

수능과 EBS 연계 정책 속에서 현장 교사의 자율성은 크게 위축됐다.교사가 아무리 의미 있는 수업을 구상해도, 입시라는 현실 앞에서는 EBS 교재 풀이가 우선시될 수밖에 없다. EBS 교재가 학습 부담을 줄여주는 듯 보이지만, 국어를 암기 과목으로 만들어 자발적 독서를 차단하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교육 앞에서 흔들리는 학교 수업

이러한 구조 속에서 학교 교사의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사교육 시스템이 단기간에 시험 점수를 올리는 데 유리하다 보니까, 현장에 있는 교사들은 무시당하게 되는 거죠. 학생들 중에는 '학교에서는 생기부용 활동만 하면 되고, 진짜 공부는 학원에서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아요."

이런 인식은 교실 안에서 교사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학교 수업의 의미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문 교사는 지역별·가정환경별 격차도 짚었다.

"제가 근무하는 학교는 부산에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지역은 아닙니다. 학생들 말투는 다소 투박하긴 한데 순수해요. 다만 한부모 가정이나 조손 가정 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거죠. 한 반의 3분의 1이 그런 경우도 있어요."

이런 가정환경에서는 보호자가 학생의 학습이나 진로에 충분히 관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반면 해운대나 수영구 등 이른바 부촌 지역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난다. 학부모의 과도한 간섭, 시험 문제에 대한 항의, 수행평가를 둘러싼 갈등이 잦고 학원 일정에 맞춰달라는 요구도 끊이지 않는다.

문 교사는 교육 전반이 성적과 결과에 지나치게 매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과정보다 결과에 집착하는 교육이 됐어요. 우리말을 되살리고 언어 사용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집중해야 하는데, 현실은 영어 점수 올리는 데만 매달립니다. 외국어를 그대로 받아들이다 보면 우리말은 점점 안 쓰게 되고, 뜻도 모른 채 쓰게 됩니다."

한국사는 수능 필수과목이지만, 입시에 반영되는 비중이 낮아 실제로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4등급(50점 만점에 25점)만 받아도 1등급과 동일하게 반영되기 때문이다. 국어는 여전히 입시에서 중요한 과목이지만, 역사 교육의 위상이 이처럼 약화된 상황은 학생들의 사회적 성찰 측면에서도 문제를 남긴다.

교사가 남긴 말 "자괴감이 듭니다"

인터뷰 말미, 문 교사는 조용히 "자괴감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26년 동안 국어를 가르쳐 왔지만, 학생들이 국어를 포기하는 현실을 막아내기 어렵다는 고백이었다. 그는 교육부 장관이 바뀐다고 해서 쉽게 해결될 문제도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대학은 정말 필요한 사람이 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의 말은 국어교육의 위기를 넘어 우리 교육이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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