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아니라 전업자녀예요” [김소연 칼럼]
상하이 대학을 졸업한 25세 청년 A. 취업 자리를 찾다 찾다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A의 아버지는 교사, 어머니는 옷 가게 사장. A는 부모와 ‘전업자녀 계약서’를 작성하죠. 아침에 출근하는 부모를 위해 아침밥을 짓고, 부모가 출근한 후에는 청소와 빨래를 하는 게 A의 주요 업무. 대신 부모는 A에게 매월 4000위안을 주기로 합니다. 중국 도시 근로자 평균 월급이 5400위안이라니, 나쁘지 않은 조건이죠. A는 “나는 독립하지 않고 부모 집에 얹혀사는 캥거루족과 다르다”고 항변합니다. “아르바이트 사장님이 마침 부모님일 뿐”이라며 “남는 시간 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것이고, 전업자녀라는 게 자랑스럽다”고도 했다네요.
중국에서 한참 바람이 불었던 ‘전업자녀’가 한국에도 상륙했다는 소식입니다. 유튜브에는 다양한 전업자녀 브이로그가 넘쳐납니다. 주말 아침 밀대로 바닥을 닦는 모습으로 시작한 영상. 청소를 다 하고 나서는 잠시 쉴 틈도 없이 바로 점심 준비가 이어집니다. 다음은 화장실 청소. 세면대와 변기에 세제를 뿌리고 솔질을 하는 손길이 야무집니다. 이후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까지 끝내는 모습으로 ‘만 22세 전업자녀의 주말 브이로그’는 마무리됩니다.
‘전업자녀’라는 새로운 직업이 등장했습니다. 전업자녀 등장과 증가는 ‘쉬었음 청년’이 늘어나는 모습과 궤를 같이합니다. 2025년 11월 ‘쉬었음’ 인구는 254만3000명. 1년 전보다 12만4000명 늘었다죠. ‘쉬었음 인구’는 일도, 구직 활동도 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쉬었음 청년’입니다. 쉬었음 인구 중 20~30대는 70만명을 웃돕니다.
이렇게 쉬었음 청년이 늘어나는 것은 단순히 취업이 어렵거나 청년들 정신 상태가 해이해서가 아닙니다. ‘절대 이길 확률이 없어 보이는 게임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선택을 한 이들이 늘었다는 의미죠. 이건 ‘구직 포기’라기보다는 ‘기댓값이 마이너스인 게임에서 이탈한 상태’에 가깝습니다. 현재의 노동 시장과 청년의 기대가 현격하게 차이가 나면서 나타난 양상이죠.
예전에는 첫 직장에서 저임금을 받더라도 다음 단계와 희망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첫 직장에 잘못 들어가면 그 고착된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어렵고 아예 ‘쉬었음’ 상태가 리스크 관리 전략이 됩니다. 단기 알바를 전전하면서 자격증 준비를 하거나 공부를 하는 게 핵심입니다. 당연히 고정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부모님 집에 머물러야 하고요.
기성세대는 이들 전업자녀를 두고 수군덕댑니다. “요즘 애들은 헝그리 정신이 없어” “게으르면서 눈만 높아서는….” 이 같은 프레임은 문제를 개인 차원에 머물게 하면서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신호를 무시하게 만듭니다. 결과는요? 정책은 어긋나고, 청년은 더 쉬었음을 많이 선택하며, 종국에는 격차가 훨씬 더 커질 테죠.
저출생 문제의 출발점은 쉬었음 청년을 줄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손해 보는 게임을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겠다’는 이들에게 ‘출산 장려금 올리고 육아휴직 혜택을 더 주겠다’ 이런 식의 목소리는 공허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떤 조건이어야 이들이 구직에 매달릴까?” 질문이 바뀌어야 정책이 바뀌고, 정책이 바뀌어야 프레임이 바뀝니다. 어떻게든 쉬었음 청년들이 다시 일터로 나갈 수 있도록 새로운 시스템을 설계하는 게 지금 가장 중요한 과제일지 모릅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42호 (2026.01.07~01.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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