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에 결혼자금 날린 택배기사... 두 남자의 비극적 결말
[김성호 평론가]
존경하는 켄 로치의 걸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 인상적인 대사 하나가 등장한다. 평생을 목수로 살아온 주인공 다니엘이 꼬마 소년에게 "코코넛과 상어 중에 뭐가 사람을 많이 죽일까?" 하고 묻던 물음이다. 소년이 이 답을 찾기까지는 영화 안에서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그 답은 바로 '코코넛'이다. 어떻게 이빨 하나 없는 코코넛이 바닷 속에선 포악하기 짝이 없는 상어보다도 더 많은 사람을 해할 수 있었을까? 영화가 답을 알려주지 않는 이 질문은 곧 로치가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통해 관객의 머리에 심고자 했던 물음이다.
조금 바꾸어 한 번 질문해보자. "강원랜드와 한국의 살인마 중에 누가 더 많은 사람을 죽일까?" 좀처럼 대응하지 않는 듯한 두 가지 보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제법 그럴듯한 승부가 이뤄진다. 강도와 절도, 사기 등 상대적으로 작은 사건부터 살인과 각종 변사사건, 자살 등 강원랜드와 얽힌 사건이 꾸준히 보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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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험사회 스틸컷 |
| ⓒ 스튜디오 린린 |
만 19세 이상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국내 유일의 카지노, 연간 3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인기 관광시설, 1조 원이 훌쩍 넘는 매출에 순이익만 4000억 원 이상에 이른 황금알 낳는 거위, 상장 이래 꾸준히 성장을 거듭해온 강원랜드를 수식하는 말들이다. 그러나 강원랜드를 다녀간 이들 중 상당수가 도박중독의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것,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주변인들의 삶까지 무너뜨린다는 이야기는 충실하게 전해지지 않는다. 강원랜드가 국가가 운영하는 시장형 공기업으로 내국인 출입이 가능하게 운영되는 건 과연 마땅한 일일까? 영화 <위험사회>가 겨냥하는 바가 바로 이 지점이다.
<위험사회>는 2년여 만에 정식 개봉에 이른 한국 장편 독립영화다. 2023년 열린 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서 김병준 감독에게 감독상을 안긴 이 영화는 도박에 중독된 이들이 제 삶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풍경을 현실적으로 담아낸다. 택배기사 영길(박우건 분)과 교사인 진수(장준휘 분)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는 강원랜드 카지노가 막 개장한 2001년을 배경으로 두 사람의 삶이 비극적으로 교차하며 추락하는 풍경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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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험사회 스틸컷 |
| ⓒ 스튜디오 린린 |
악마는 첫 배팅에서 승리를 가져다준다고 했다. 영길에게도 악마가 찾아왔던 것일까. 강원랜드에서 그는 행운을 맛본다. 룰렛, 판을 돌리고 맞는 숫자며 색깔이 나오면 돈을 버는 이 단순한 게임에서 그는 큰 돈을 당긴다. 단 5분에 천 만원을 딸 수 있는 카지노는 하루 종일 일해도 8만원을 버는 제 삶을 어리석게 느끼게 한다. 그 낙차를 맛본 그가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뒷얘기야 뻔하고 빤하다. 저도 떳떳하지 못한 걸 아는 영길은 애인과 장모될 이를 속이고서 카지노를 번질나게 오간다. 그러나 도박이 어디 마음처럼 될까. 눈앞에서, 겨우 몇 센티미터 차이로 큰돈이 오는 듯했다가 날아간다. 본전을 찾겠단 욕구는 번번이 좌절된다. 결혼자금으로 마련한 돈도 모조리 털어붓고 급기야는 제 배달트럭을 사채업자(황상경 분)에게 맡기고 1000만 원을 빌린다. 그 돈까지 몇 판 룰렛 게임에 꼬라박는 데는 몇 분이 걸리지 않는다. 그는 이제 빈털터리다. 가장 가까운 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엉망진창의 쓰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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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험사회 스틸컷 |
| ⓒ 스튜디오 린린 |
<위험사회>는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된 옛 이야기다. 영길과 진수가 사채빚을 쓰고 제 삶을 망가뜨려가며 도박에 빠져드는 이야기다. 비단 강원랜드가 아니라도 비슷한 이야기는 쌔고 쌨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일제강점기며 조선시대, 심지어는 고려에 이르기까지 도박으로 제 딸 농까지 팔아먹고 조상 전답을 잡혔단 이야기가 여러 기록에 숫하게 등장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감독은 2023년에 20년도 더 된 강원랜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그건 이 이야기가 갖는 시대적 유효함이 있다는 판단일 테다.
지난 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전해진 연출의도로부터 이 영화가 가진 유효함을 짐작해볼 수 있겠다. 김병준 감독은 말한다. "OECD 중, 국가에서 주도하는 사행산업이 한국이 제일 많다"고, "주식이나 비트코인이나 땅 투자 아파트 투자 등... 탐욕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본능이며 누구나 도박중독에 걸릴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위험사회>는 한국 사행산업 중 최고의 유병률을 보이고 있는 곳, 대한민국 도박 문제의 시작이라고 평가받는 곳, 바로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 위치한 강원랜드 카지노의 이야기"라며 "공적 역사의 기억으로 확장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이 각종 사행성 게임으로 병들어 있단 건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온라인 도박게임이 공공연히 유통되며 젊은 남성의 도박중독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온라인 실시간 배팅게임부터 불법 스포츠토토, 홀덤펍에 이르기까지 청소년이 도박에 접근할 수 있는 경로가 많아진 오늘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국가가 도박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 사행성 게임을 산업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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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험사회 포스터 |
| ⓒ 스튜디오 린린 |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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