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특별판' 추가된 9분... 25년 만에 도착한 왕가위의 선물
[김상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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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양연화특별판> 포스터 |
| ⓒ ㈜엔케이컨텐츠 |
어느 날, 두 사람은 '차우' 넥타이와 '첸 부인' 가방이 서로의 배우자 것과 같음을 발견한다. 둘 다 홍콩에선 구할 수 없는 '레어템', 우연일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결론은 하나다. 기구한 인연이다. 둘은 대체 왜 상대 배우자들이 불륜에 빠졌는지 심정을 토로한다. 과정에서 그들 역시 유혹에 직면하지만, 배신한 반려와 같은 일을 저지를 수 없다는 윤리적 고심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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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양연화 특별판> 스틸 |
| ⓒ ㈜엔케이컨텐츠 |
물론 거장의 검증된 명작이 몇 차례씩 재개봉하는 건 이제 하나의 흐름으로 극장가에 자리한 지 오래다. 신작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역할 대신에 '안전빵'을 택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병존하지만, 관객의 입장은 선택 폭이 비약적으로 넓어질 수 있다. 창작자는 근심이 깊어도 저비용 고효율 안정된 부가시장인 셈이다. 그렇게 극장 개봉작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체험을 제공하는 중이다. 하지만 <화양연화>의 2025년 마지막 날 재개봉은 그저 흔한 돌려막기와 차원을 달리 한다고 봐도 좋겠다.
요즘 고전 명작 재개봉이야 당연히 따라붙는 디지털 리마스터링은 당연하지만, 첫 공개 시절부터 정평이 난, 거의 모든 장면이 CF 이미지 스틸 사진처럼 보는 이를 매료시키던 미술과 관객의 귓가에 꽂히던 배경음악 사운드트랙의 맛이 한층 더 극대화된다. 오히려 이미 영화를 기존 판으로 봤던 이들에겐 예전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극상의 감각적 체험이 가능케 된 셈이다.
즉슨, 감독도 여러 인터뷰에서 말했듯, 25년 만에 마침내 <화양연화>를 작업할 때 본인이 구상했던 이상적인 형태로 비로소 완결된 형상을 극장에서 선보일 수 있게 된 셈이다. 나름대로 왕가위의 배려심 가득한 AS라 너그럽게 봐주면 될 테다. 영화 자체는 현재까지 나온 21세기 영화 중 수위권을 놓치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평가가 더 올라갈 만큼 검증을 마쳤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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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양연화 특별판> 스틸 |
| ⓒ ㈜엔케이컨텐츠 |
<화양연화 특별판> 역시 9분가량 원래 판보다 늘었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감독의 또 다른 대표작 <동사서독>의 경우엔 <동사서독 리덕스>라 불린 재개봉 버전에서 오히려 상영 시간이 줄어든 전례처럼, 그저 쭉 잡아서 늘리는 게 감독의 비전이 아님을 아는 팬들로선 궁금하고 놀라운 일이다. 명품이라 칭송되는 기존 판본에서 더 끼워넣는 게 오히려 사족이 되지 않나 염려할 만하다. 하지만 안심해도 좋다.
영화를 극장에서 만났다. 색감은 선명하고 소리는 더 잘 귀에 스민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하지만 물음표가 따라온다. 대체 어디가 늘어난 거지? 몇 번이고 보고 또 본 영화이니 대차대조하지 않을 수 없다. 기존에 봤던 내용에서 하등 추가된 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의문이 크레디트가 올라오자 끼어든다. 그러나 궁금증은 곧 풀린다. 너무나 반갑고 감격스런 만남이 시작될 차례다.
이 영화에는 전설로 떠돌기만 했던 '판도라의 상자' 같은 존재가 있었다. 단 한 번, 2000년 최초 공개가 이뤄진 칸영화제가 다음연도 영화제에서 감독의 마스터클래스를 열 때 상영했다는 'In the Mood for Love 2001'이 마침내 화면에 출현한 것이다. 그 유일한 상영 후 소문만 떠돌던 전설의 단편이다. 영문 제목에 '2001'이 붙은 것처럼 1960년대 배경이던 본편의 배경을 영화 공개 당시 현재(2000년 공개)로 옮겨 같은 두 주인공의 만남을 다룬 소품이다.
이 깜짝 이벤트는 원래 연작인 것처럼 '따로 또 같이' 색다름과 반가움을 동시에 선물하는 추가분이다. 내용은 극장에서 이 영화와 재회할 이들에게만 허락된 기쁨이라 생략한다. 다만 감독은 이 특별판 상영에 단서를 달았다. 어떤 2차 매체에도 제공하지 않은 채 오직 극장 상영만 허용한다는 것이다. 즉 OTT 공개나 블루레이, VOD 발매는 하지 않겠단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나는 <화양연화 특별판>이 블루레이 호화판 발매된다면, 촌각을 다투며 예매 대기줄에 설 주변 지인을 수십 명 넘게 아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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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양연화 특별판> 스틸 |
| ⓒ ㈜엔케이컨텐츠 |
그렇다면 <화양연화>란 대체 무엇일까? 제목 그대로 누군가 청춘에 가장 좋았던 시절을 뜻한다. 차우와 첸 부인이 스크린에서 펼치는 숨 막히는 긴장과 슬픔, 아련함은 이미 25년 동안 전 세계 관객에게 검증된 바 있다. 그윽하고 심미적이면서도 애가 타고 처연하다. 보는 이는 자신이 경험한 각자의 '화양연화'를 되새기며 한없는 감정에 휩싸이는 것 외엔 도리가 없다. 그렇게 '인생 영화'로 관객의 가슴에 자기만의 자리를 차지하는 영화다.
그런 영화와 오랜만에 재회한다. 두 감정이 교차한다. 원래 판본에선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옛 인연과 추억을 되새기며 회한에 잠길 수밖에 없다. 실패한 사랑의 고통, 그릇된 선택에 관한 자책, 어쩔 수 없는 미련이 보이지 않는 망토처럼 자신을 휘감는다. 아프지만 피할 수 없으니 즐길 수밖에 없는 감각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반대로 추가된 외전 단편은 관객에게 타임머신에 올라탈 기회를 제공한다. 만약 차우와 첸 부인이 1960년대가 아니라 '현대'에 살았다면 결말은 어땠을까? 휴대전화와 이메일, SNS와 24시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존재했다면? 누구나 애타게 그들의 운명을 목격했다면 품었을 상상이 현실이 된다. 그게 좋기도 싫기도 하건만, 아무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는 뜻밖의 선물임이 분명하다. 그것도 25년 걸려 도착한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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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양연화 특별판> 스틸 |
| ⓒ ㈜엔케이컨텐츠 |
두 주인공이 너무나 건전한, 하지만 외부 시선으론 은밀한 만남을 지속하던 호텔 객실 호실은 '2046'이다. 중국이 홍콩을 반환받으며 혼란을 막기 위해 제시한 '일국양제' 유효기간이 끝나고 완벽히 흡수되는 시기로 규정된 해다. 심지어 감독의 후속작 제목도 < 2046 >이다.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작가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예술작품에 의지를 반영한 장치다. 그 공간의 운명이 어떤지 영화를 본 이라면, 홍콩의 장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둘은 계속 만나고 헤어지며 때론 숨다가도 애타게 찾아 헤맨다. 마치 자석의 양극이 붙었다 떨어지길 반복하는 자기장처럼, 그 풍경 속에 단지 고혹적이고 탐미적인 미장센에 그치지 않는 여러 상징과 암시가 가득 숨어 있다. 살인적인 홍콩 부동산 환경이 좋건 싫건 강제하는 일상생활 방식은 둘에게 피할 수 없는 만남을 종용한다. 1960년대 본토를 넘어 홍콩에도 불어닥친 급속한 정세 변화와 혼란 역시 양념처럼 스민다. 차오가 친구에게 무심한 듯 들려주던, 옛날 사람들이 '비밀'을 봉인하던 방법을 그가 나중에 실천하는 방식 역시 세월의 풍화 속에 돌이킬 수 없는 무상함을 표상한다. 비밀을 봉인하는 장소가 어딘지 떠올려보라.
그렇게 한 예술가가 지극하지만 이룰 수 없는 사랑과, 자신이 나고 자랐기에 연인과도 같은 홍콩의 장래를 직감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보관하려는 궁극의 기예가 한데 어우러져 '명작'이 탄생했다. 그리고 25년, 사반세기가 지나 한참 전에 홍콩 부두에서 병에 담아 바다에 보낸 편지가 한국 관객에게 이제야 도착한다. 얼른 열어보지 않고는 '어쩔 수가 없다.'
<작품정보>
화양연화 특별판
花样年华25周年导演特别版4K
In the Mood for Love
2000|홍콩|로맨스, 멜로, 드라마
2025.12.31. 개봉|108분|15세 관람가
감독 왕가위
출연 장만옥, 양조위
수입 ㈜엔케이컨텐츠
배급 ㈜디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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