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기업... '쿠팡 없는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안호덕의 암중모색]

안호덕 2026. 1. 2.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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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덕의 암중모색] 소비자의 결단이 필요한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

[안호덕 기자]

 김범석 쿠팡 Inc 이사회 의장과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이사.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만든 이미지.
ⓒ 오마이뉴스
"쿠팡 잘못도 있어요. 그러나 문제는 정보 유출 중국인에게 있지요. 그리고 정보 유출이 쿠팡만의 문제도 아닌데 유독 난리를 치는 건 이해가 안 돼요."

지하철 옆자리 두 사람 대화에 귀가 갔다. 쿠팡 대응이 과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옆 사람은 국민의 정보 유출이 작은 일이냐며 아예 정부가 더 크게 나서서 문을 닫게 해야 한다고 했다. 쿠팡 정보 유출에 대한 정부 대응을 '난리'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어이없지만, 정부가 나서서 문을 닫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과격하기만 할 뿐 실속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3370만 고객의 이름, 이메일, 전화번호는 물론 주문 이력 등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이 화나는 건 단지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김범석 쿠팡 Inc 이사회 의장 등은 얼굴도 드러내지 않는 모습이나 버티다 떠밀리듯 한 사과는 소비자 조롱이자 국회가 상징하는 대한민국에 대한 모욕에 가깝다.

그래서 정부가 나서서 영업 정지라도 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충분히 공감되는 요구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부에게 권한 밖 권력을 주문할 수 없는 일이고 그래서도 안 된다. 또 정부가 국민의 개인정보 유출 기업에 책임을 묻는 건 당연하지만 더 큰 칼자루는 소비자인 국민에게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쿠팡이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라고는 하지만 전체 매출의 90% 이상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다. 그럼에도 미국 기업임을 내세워 정부와 국회의 요구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쿠팡은 일방적으로 이른바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해 공분을 키웠고 김범석 의장은 재차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트럼프 1기 미국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로버트 오브라이언이 자신의 엑스(옛 트위터)에 올린 "한국이 미국 기술 기업을 표적 삼아 그의 노력을 훼손한다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는 글은 미국 정계 로비에 의한 우리 정부 압박용이라는 짐작이 충분히 가능하다.

지난해 연 매출이 41조 원에 이를 만큼 쿠팡을 글로벌 빅테크로 만든 한국 소비자들은 14세 미만을 제외하면 사실상 전 국민에 가까운 개인정보 유출을 당하고도 여전히 조롱과 멸시에 가까운 대접을 받고 있는 모양새다.

매서운 경고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이사가 12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쿠팡 침해사고 및 개인정보 유출, 불공정 거래, 노동환경 실태 파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이쯤 되면 쿠팡이 이토록 막 나갈 수 있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미국 기업이라는 정체성과 미국 정계라는 뒷배경도 한몫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또 정계, 언론계, 법조계를 망라하는 대관 조직의 역할도 그들에게는 믿는 구석일 것이다. 그러나 그게 다라고 할 수 없어 보인다. 사상 최대의 매출을 만들어주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켜 준 한국의 소비자들이 쿠팡 없는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계산이 그들에게 신념처럼 자리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정보 유출 사태가 있기 전에도 쿠팡은 장시간 야간 근무 등 과중한 업무로 인한 사망 사고가 끊이질 않았고 이때마다 유족을 회유하고 대관 조직을 이용해 입막음하는 데 급급했다, 노동단체, 시민단체, 소비자의 개선 요구는 번번이 찻잔 속 태풍에 머물렀고 시간이 지나면 쿠팡은 또다시 매출 기록을 경신했다.

정부가 법대로 정보 유출 기업을 조사하고 제재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고 소비자인 국민도 쿠팡 없는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기업에,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한순간에 버려질 수 있다는 매서운 경고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이 됐다.

쿠팡 정보 유출 사태를 접하면서 일부에서는 정부의 대응이 과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더 나아가 기업 규제가 커지면 경제 성장에 저해되고 결국은 거기에 몸담고 살아가는 물류 노동자나 새벽 배송을 필요로 하는 소비자들이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기업이 소비자의 개인정보와 안전을 내팽개치는데 소비자가 기업을 걱정하고 결국 소비자의 손해로 이어지리라 우려하는 건 앞뒤가 뒤바뀐 모순적 발상이다. 대한민국에서 먹고사는 기업에 올바른 역할을 기대하는 국민이라면 당연히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오너 일가의 갑질과 기업의 반사회적 행위가 드러날 때마다 국민들은 분노했고 그때마다 불매 운동으로 이어졌다. 기업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결기는 넘쳐나지만 지나고 보면 기업에 따끔한 회초리가 된 적은 많지 않다.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에 국민 공분이 크다. 정부와 국회도 어느 때보다 높은 조사와 제제를 추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쿠팡이 진실과 사과, 책임 있는 보상,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가 없지 않다. 기업 불매가 대통령 탄핵보다 힘들다는 농담이 단순히 농담으로 그치지 않아 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일까
 김광석 전국택배노동조합 위원장이 12월 26일 오전 쿠팡CLS 본사 앞에서 열린 쿠팡 로켓배송 택배노동자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전선정
"저렴한 상품이 있으려면 저렴한 노동이 있어야 하고, 저렴한 노동이 있으려면 저렴한 국가가 있어야 한다. 그런 국가는 우리 아버지들이 건국한 국가도 아니고, 우리 아들들이 지켜나가고자 하는 국가도 아니다."

미국의 25대 대통령인 윌리엄 매킨리가 남긴 말이다. 쿠팡이 사상 최대의 매출을 올리며 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던 건 저렴한 상품과 빠른 배송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저렴한 상품과 빠른 배송은 잠시의 휴식도 가질 수 없는 힘든 노동과 과로사가 이어진 새벽 노동이 바탕이 되었다.

쿠팡의 정보 유출 사태 앞에서 소비자인 국민은 무엇에 분노하고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가 됐다. 윌리엄 매킨리의 지적처럼 저렴한 노동으로 만들어진 저렴한 상품에 길들여진 소비가 우리가 꿈꾸는 미래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2025년을 보내고 2026년이 왔지만, 해가 바뀐다고 세상이 저절로 좋아지지는 않는다. 새해에는 내가 주문한 제품을 새벽에 배송하다가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노동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편리를 위해 누군가의 죽음을 강요하는 사회는 '우리 아버지들이 건국한 국가도 아니고, 우리 아들들이 지켜 나가고자 하는 국가도 아니다'.

소중한 개인 정보 유출도 화나는 일이지만,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사과보다 대관 조직을 앞세워 무마하려던 기업의 반인륜적 행위는 쉽게 용서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그가 열심히 일한 기록을 남기지 말라." 2020년 10월 쿠팡 칠곡 물류센터 노동자가 과로로 숨진 직후, 김범석 의장이 임원에게 지시한 내용이라고 알려졌다. 김범석 의장과 쿠팡, 참 무서운 사람이고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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