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공무원도 점심시간에 밥을 먹습니다

조명호 2026. 1. 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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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공서 점심시간 휴무, 이제는 노동자의 기본권으로

[조명호 기자]

▲ 대구 행정복지센터 점심시간 휴무제 시행 대구광역시 9개 구·군이 '민원실 점심시간 휴무제 공동 시행'을 발표했다. 2026년 1월 1일부터 대구 전역의 구·군청, 주민센터 등에서 일제히 점심시간 휴무가 시행된다.
ⓒ 조명호
1일 오후, 동네 행정복지센터 앞을 지나다 현수막을 봤다.

"행정복지센터 점심시간(12~13시) 휴무 안내. 양질의 민원행정 제공을 위하여 2026. 1. 1.부터 점심시간 휴무제를 시행합니다."

'아, 이제 관공서도 점심시간에 문 닫는 시대가 됐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쳤다. 공무원도 점심 한 끼 편하게 먹을 권리를 갖게 됐다는 이야기였다. 당연한 일인데, 왜 이제야 당연해진 걸까.

"밥 한 끼라도 편하게 먹자"는 목소리

예전부터 공공기관은 점심시간에도 민원업무를 이어왔다. 관공서는 '공공의 봉사자'이니 언제든 민원인을 받아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사실 법적으로는 점심시간이 명확히 정해져 있다.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9조 제2항은 "공무원의 1일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하며, 점심시간은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로 한다. 다만, 행정기관의 장은 직무의 성질, 지역 또는 기관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1시간의 범위에서 점심시간을 달리 정하여 운영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에 따라 행정복지센터와 같은 대민업무를 주로 하는 관공서에서는 점심시간에도 근무자를 두고 문을 열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

공무원노조와 노동단체는 꾸준히 이 문제를 제기해 왔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2019년부터 '점심시간 휴게권 보장'을 주요 요구사항으로 내걸었다. 2021년에는 전국 곳곳에서 "밥 한 끼 편하게 먹을 권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가끔은 밥을 먹다 말고 민원인 응대를 해야 하고, 밥을 먹고 쉬어야 하는 짧은 시간마저 온전히 쉴 수 없는 현실. 법으로는 보장된 휴게시간이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는 모순. 이런 이야기들이 조금씩 사회적 공감을 얻기 시작했다.

변화는 지방에서 시작됐다

변화는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진행됐다. 그리고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방정부에서 먼저 시작됐다.
2017년 경남 고성군이 전국 최초로 점심시간 민원실 전면 휴무를 시행했다. 당시만 해도 "주민 불편이 크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고성군은 "온라인 민원 처리가 가능한 시대"라며 "공무원도 노동자로서 기본적인 휴식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결과는 의외로 담담했다. 민원 건수는 크게 줄지 않았고, 오히려 오후 업무 효율이 올라갔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후 양평군, 보은군, 무안군 등 여러 지자체가 점심시간 휴무제를 도입했고, 2023~2024년을 거치며 전국으로 확산됐다.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 중 상당수가 점심시간 휴무제를 시행 중이거나 시행 예정이다.

그리고 최근 대구광역시 9개 구·군이 '민원실 점심시간 휴무제 공동 시행'을 발표했다. 2026년 1월 1일부터 대구 전역의 구·군청, 주민센터 등에서 일제히 점심시간 휴무가 시행된다. 광역시 단위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지역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꽤 상징적인 변화다.

공무원도 노동자다

공무원에게 점심시간이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에게 일정한 휴게시간을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 법은 주로 민간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지만 '근로자는 휴게시간 동안 사용자의 지휘·감독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쉬어야 한다'는 취지는 모든 노동 영역에 적용되는 일반 원칙이다.

대법원은 여러 판결에서 "휴게시간이란 근로시간 도중에 사용자의 지휘·감독으로부터 해방되어 근로자가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을 말한다"고 명확히 했다(대법원 2006. 11. 23. 선고 2006다41990 판결, 대법원 2017. 12. 5. 선고 2014다74254 판결). 밥을 먹으면서도 민원 전화를 받고, 민원인이 오면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건 '휴게시간'이 아니라는 뜻이다.

밥 한 끼 편히 먹고 숨을 고르는 시간은 서비스가 아니라 권리다. 시민에게 양질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먼저 사람답게 대우받아야 한다. 지친 사람이 어떻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겠는가.
▲ 점심시간 휴무제 전면시행 쟁취 기자회견 2025년 11월 18일 오전 중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무원 점심시간 휴무제 시행을 촉구하고 있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대구지역본부.
ⓒ 대구MBC
시민의 불편, 인정한다

물론 시민 입장에서는 불편하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점심시간이 직장인에게는 가장 움직이기 쉬운 시간이다. 회사에서 1시간 쉬는 동안 잠깐 주민센터 들러서 등본 떼고, 증명서 받고, 민원 접수하고 돌아오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불만의 목소리도 올라온다.

"회사 쉬는 시간에 잠깐 들르려고 했는데 그것도 안 되네요."
"맞벌이 부부는 언제 민원실 가라는 건가요."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서 점심시간까지 쉬겠다는 건 좀…"

이런 목소리를 무시할 수는 없다. 실제로 불편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온라인 사용이 어려운 어르신들, 급하게 서류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난감한 상황이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는 이미 비슷한 불편을 감수하고 있지 않은가. 회사 구내식당도 점심시간이 아닐 땐 문을 닫는다. 은행도 점심시간에 창구 절반을 닫는다. 우체국도 점심시간엔 업무가 느려진다. 동네 빵집도, 세탁소도, 약국도 점심시간엔 "잠시 후 돌아오겠습니다"라는 팻말을 걸어둔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시간을 존중한다. "아, 점심시간이네" 하고 돌아선다. 공무원에게만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일해야 한다'고 말할 이유가 있을까.

대체 수단은 충분하다

게다가 요즘은 대체 수단이 많다. '정부24' 홈페이지나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에서 웬만한 증명서를 즉시 발급받을 수 있다. 주민등록등본, 초본, 가족관계증명서, 인감증명서 등 자주 쓰는 서류는 PC나 스마트폰으로 클릭 몇 번이면 된다. 주민센터나 구청 로비에 설치된 무인발급기도 24시간 작동한다. 점심시간이든 새벽이든 언제든 증명서를 뽑을 수 있다. 굳이 창구 앞에 줄 설 필요가 없다.

물론 복잡한 민원은 직접 방문해야 한다. 건축 허가, 사업자 등록, 복지 급여 신청 같은 건 상담이 필요하다. 그럴 땐 오전이나 오후에 방문하면 된다. 아니면 전화로 미리 예약하는 방법도 있다. 요즘은 많은 지자체가 '민원 예약제'를 운영한다. 불편하다고 해서 누군가의 휴식권을 포기하라고 할 순 없다. 불편을 최소화할 방법을 함께 찾는 게 맞다.

현수막 문구부터 솔직하게

그런데 아직도 석연치 않은 게 하나 있다. 바로 현수막 문구다.

"양질의 민원행정 제공을 위하여 점심시간 휴무제를 시행합니다."

이건 솔직하지 않다. '양질의 민원'은 표면적 이유일 뿐, 진짜 이유는 노동자의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본질은 이것이다. '공무원도 사람이다. 밥 먹을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현수막도 솔직해져야 하지 않을까.

"공무원도 노동자입니다. 노동자의 휴식권 보장을 위해 점심시간 휴무제를 시행합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만, 넓은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아니면 이렇게는 어떨까.

"공무원에게도 따뜻한 밥 한 끼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잠시 쉬고 1시부터 더 밝은 얼굴로 모시겠습니다."

정직하게 말하자. 굳이 '양질의 민원'이라는 명분을 앞세우지 말고, "우리도 사람입니다. 밥 좀 먹겠습니다"라고 말하자. 그게 더 설득력 있다.

사실 우리는 이미 여러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해 왔다. 택배기사의 주 1회 휴무제, 간호사의 3교대 근무 개선, 배달 노동자의 보호장치, 편의점 야간 근무자의 안전 보장. 처음엔 "불편하다"는 말이 나왔지만, 우리는 조금씩 적응했다.

이제 공무원의 한 끼도 그 범주에 들어간다. 관공서 점심시간 휴무를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한 사회가 성숙해지는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건 누가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조금 더 인간적인 사회로 가는 일이다.

밥은, 사람답게 먹자

다음에 또 행정복지센터 앞을 지나갈 일이 있을 것이다. 점심시간이면 문이 닫혀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나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 저 안에서 누군가 따뜻한 밥 한 끼 편하게 먹고 있겠구나.'

'밥은, 사람답게 먹자.' 그게 공무원이든, 택배기사든, 간호사든, 누구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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