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15년 경력 현장 정비사가 AI 인력으로…대한항공의 실험[AI시대, 일자리가 바뀐다]

전영주 2026. 1. 2.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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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출범 국내 항공업계 유일
안전·비용 동시 잡는 선제적 정비 방식
항공기당 센서 2500여개, 하루 62GB
빅데이터·AI 활용 이상징후 사전 감지
전원 재교육으로 AI역량 키운 내부인력
정비사·엔지니어, 코딩 공부해 팀 합류
편집자주
제조업을 포함한 산업 현장에서의 인공지능(AI) 활용은 올해 산업계 최대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제조현장에 투입된 AI는 생산성 향상에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점을 입증했다. 그 범위는 올해 본격적으로 넓어지게 된다. AI발 생산 혁신의 이면에는 일자리 감소 우려가 자리하고 있다. 인력 개입없이 생산이 이뤄지는 소위 '다크팩토리(Dark Factory)' 개념이 점차 현실화되면서 완전 자동화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시아경제가 확인한 AI 적용 제조현장에서의 일자리 변화는 복합적이다. 반복적이고 위험한 작업은 기계가 맡되 판단과 관리, 책임의 역할은 사람이 맡는 방향으로 확실한 영역 구분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AI가 사람을 밀어내는 게 아니라 일자리를 다시 규정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AI시대는 생산성과 기술 경쟁뿐 아니라 일자리 전환이라는 숙제를 안겼다. 아시아경제는 새해 산업현장을 찾아 AI가 몰고온 일자리 변화를 직접 살폈다.
지난달 9일 인천 중구 대한항공 정비고에서 대한항공 예지정비팀과 정비사가 A330항공기 엔진 흡입구에 장착된 온도 센서를 점검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정비사들이 예지정비팀을 보고 '신기(神氣)'가 있냐고 물어봐요. 어떻게 며칠이나 먼저, 비행기를 직접 안 보고도 결함을 짚어내냐고요."

지난달 9일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근무하는 박창훈 예비정비팀 차장의 컴퓨터 모니터에 경고 알림이 떴다. 김포로 향하던 한 여객기의 기내 압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비행기에 장착한 센서들이 덕트(공기가 흐르는 기내 호스) 사이사이 고무 소재 연결부가 느슨해졌다는 걸 감지, 이대로면 일주일 후 운항에서 덕트 연결부가 찢어져 객실에 충분한 공기가 공급되지 않을 수 있다는 신호였다. 박 차장은 과거 정비 이력 등 관련 데이터를 분석하고 현장 정비팀에 '덕트 연결부를 교체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작업 요청을 보냈다.

그는 "회항 또는 결항을 할 뻔한 위험을 일찌감치 잡아내서 다음 비행 전에 정비하게 됐다"며 "최근 부품 노후화 같은 이유로 비슷한 결함이 3~4번 발생해서 기압이 떨어지는 원인을 빠르게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지난달 9일 인천 중구 대한항공 정비고에서 대한항공 예지정비팀과 정비사가 A330항공기 엔진 흡입구에 장착된 온도 센서를 점검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예지정비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항공기의 문제점을 미리 찾아내고 조치하는 선제적인 정비 방식을 말한다. 대한항공은 항공기 1대에 2500여개의 센서를 탑재해 하루 평균 62기가바이트(GB), 전자책 6만3000권 분량의 데이터를 생산한다. 자체 개발한 AI 기반 결함 예측모델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상징후가 감지되면 정비가 필요한지 살펴본 뒤 작업 수행을 지시한다.

예지정비가 기존 정비 방식보다 효율적인 이유는 항공기 결함에 따른 시간 및 비용 소요를 피할 수 있어서다. 운항 직전 정비에서 항공기 결함이 발견되면 대부분 지연이나 결항이 된다. 정비하는 동안 숙소와 대체 항공편을 준비해야 해서 비용도 들어간다. 하지만 예지정비는 일주일가량 먼저 결함을 예측하기 때문에 정비에 필요한 시간을 사전에 확보하고 비용을 줄인다는 장점이 있다.

9일 인천 중구 대한항공정비고에서 대한항공 예지정비 엔지니어와 정비사가 A330항공기 엔진 흡입구에 장착된 온도 센서를 점검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이에 대한항공은 2023년부터 예지정비 업무를 위한 예지정비팀을 만들었다. 국내 항공업계에서 유일무이한 이 예지정비팀은 올해 100건 이상의 결함을 미리 찾아냈고 수십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도 거뒀다.

일례로 예지정비팀은 시각 센서를 활용해 착륙장치의 이상징후를 잡아낸 적 있다. 이륙한 뒤 90도 수준으로 접혀야 하는 비행기 바퀴가 휘어진 채 날고 있었다. 이 부위는 동체를 통째로 들어 올려 살펴봐야 하기 때문에 예지정비 기술이 없으면 일찍이 결함을 파악하기 어렵다. 다음 또는 그다음 운항에서 바퀴의 각도가 더욱 벌어진다면 착륙 시 바퀴가 내려오지 않는 문제가 발생해 회항이 불가피하다. 해당 기체는 비즈니스석만 90석, 승객이 총 300명 탑승하는 대형 기종이어서 회항이 발생했다면 상당한 비용 부담이 따를 수 있었다.

오종훈 대한항공 예지정비팀장이 지난달 9일 인천 중구 대한항공 정비고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예지정비팀 인력은 외부 채용이 아니라 정비사나 엔지니어 등 현장 업무를 수행하던 인력을 재교육해 AI 역량을 갖추도록 전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오종훈 예지정비팀장은 "우리 팀은 항공기를 잘 아는 사람이 언제나 1순위"라며 "항공 시스템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수기 때문에 외부에서 AI 인재를 뽑기보다 내부 풀(pool)에서 AI에 관심 있는 직원을 데려오고 있다"고 했다.

특히 오랜 기간 현장에서 항공기를 직접 다루며 노하우를 축적한 정비사가 선호된다. 박 차장 역시 15년 경력의 대한항공 정비사였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당시 항공사 휴업이 시작되자 그는 '코딩 붐'에 발맞춰 개발 공부를 시작했다. 업무용 홈페이지나 프로그램을 뚝딱 만들 만큼 실력이 금세 늘었고, 2023년 8월 예지정비팀이 만들어지면서 팀에 몸담았다. 박 차장은 "정비사로 일하면서 '어떻게 하면 반복 업무를 줄이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프로그래밍을 이용한 데이터 자동화를 접하면서 코딩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팬데믹 이후 예지정비팀이 구성된다는 소식을 듣고 합류를 희망했다"고 했다.

지난달 9일 인천 중구 대한항공 정비고에서 대한항공 예지정비팀과 정비사가 A330항공기 엔진 흡입구에 장착된 온도 센서를 점검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대한항공 엔지니어 출신 김재민 과장은 항공기 운영 중 기술적 문제가 발생하면 결함의 원인을 분석해 예방 대책을 세우는 업무를 담당했었다. 김 과장은 "예지정비는 결함이 발생한 이후가 아닌 사전에 문제를 예측하고 해소하는 업무라서 매력적으로 느껴졌다"며 "퇴근 이후 개인적으로 코딩 공부를 병행하면서 현장에서 축적한 실무 노하우와 시너지가 나도록 노력했다"고 했다.

대한항공도 AI와 임직원의 공존을 독려하기 위해 지원에 나섰다. 올해 예지정비팀이 참석한 국제 콘퍼런스나 글로벌 회의만 해도 10건에 달한다. 오 팀장은 "해외 항공사들은 우리보다 먼저 예지정비 기술을 도입했고 이미 자체 솔루션을 상업화한 곳도 있다"며 "선진 기술을 직접 보고 개발자들과 대화하면서 기술력을 높이고 있다"고 했다.

전영주 기자 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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