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통일" "강한 일본"…중·일 신년사에 李 고심 깊어졌다

중국이 대만 문제를 거론하면서 한국 측에 ‘하나의 중국’ 원칙을 준수하라고 요구했다. 지난해 12월 29일부터 31일까지 대만을 포위하는 대규모 군사훈련을 전개한 데 이어 새해 벽두부터 한국을 외교적으로 압박하는 모양새다. 오는 4~7일 중국 국빈 방문을 앞둔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외교가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현 외교부 장관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해 12월 31일 통화를 하고 이 대통령의 방중과 상호 관심 사안에 대해 논의했다. 왕이는 통화에서 “일본의 일부 정치 세력이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 하며 침략·식민 범죄를 뒤집기 하려 한다”며 “한국 측이 올바른 입장을 취하고 국제 정의를 수호할 것이라 믿는다. 대만 문제를 포함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준수해 달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지난해 11월 7일)으로 시작된 중·일 갈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한국 측에 ‘하나의 중국’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구한 셈이다.
대만 해협 문제로 촉발된 중·일 갈등은 장기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2월 31일 중국 중앙방송(CC-TV)을 통해 방영된 신년사에서 대만을 통일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밝혔다. 시진핑은 “지난해 대만 광복 기념일을 지정했다”며 “양안(중국과 대만) 동포의 피는 물보다 진하며, 조국 통일이란 역사의 대세는 막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맞서 다카이치는 1일 신년사를 통해 ‘강한 일본’을 다시 들고 나왔다. 그는 자신의 신년사 일부를 엑스(X)에 올리면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필요한 개혁을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 당시 내세웠던 ‘강한 일본’을 재차 부각한 것이다. 대만 문제를 두고 중·일 양국이 정면 출동하는 양상이 당분간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최근 중국의 행보는 표면적으로 일본을 압박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다음 주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관련 입장을 지켜보겠다는 뜻도 될 수 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한국이 미·중 사이에 끼여 외교적 스탠스를 잡기 어려운 현실이 이번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라며 “스스로 선택에 몰렸다는 인식보다는 전략적 입장을 정교하게 개진하는 방식으로 풀어갈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 대통령이 이번 방중에서 중국뿐 아니라 미국·일본까지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메시지를 내야 한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실제로 미·일 조야에서는 이 대통령을 ‘친중’으로 보는 시각이 여전히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왕이의 발언은 한·미·일 삼각 공조를 겨냥한 측면이 강해 보인다”며 “한국이 미국에 경도되지 않고 일본과의 관계도 적절히 조절해 달라는 의미도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중국은 이전에도 한국을 견인하기 위한 ‘매력 공세(charm offensive)'를 펼쳤다. 2013년 방중한 박근혜 대통령은 시진핑과의 회담에서 “안중근 의사를 기념할 수 있는 표지석을 설치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중국이 이듬해 하얼빈역에 안중근 기념관을 건립하며 통 크게 화답했던 게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독도 문제를 둘러싼 불협화음도 한·일 갈등을 파고드는 중국에는 기회 요인으로 꼽힌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중국은 진보 성향인 이재명 정부와 미국 간의 틈새를 파고들며 매력 공세를 이어갈 것”이라며 “제대로 선을 긋지 않으면 미국의 신뢰를 잃고 중국과도 원만한 관계를 이어갈 수 없는 상황에 놓일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2021년 5월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 간 정상회담 결과물에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내용을 담은 뒤 같은 입장을 유지해왔다. 일관된 입장을 밝히면서 만들어진 외교적 공간을 활용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는 이유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은 “중국도 한국에 친중적인 입장보다는 중립적인 노선을 택하라는 원칙론적인 메시지를 일관되게 발신해온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도쿄=신경진·김현예 특파원,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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