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모래시계 검사 신화에 반기, 나는 왜 두번째 재심을 청구했나

구영식 2026. 1. 1.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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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인터뷰] '국제 PJ파 사건' 다시 재심 청구하는 여운환 아름다운컨벤션 대표

[구영식 기자]

 여운환 아름다운컨벤션 대표가 지난 2017년 10월 25일 광주의 한 호텔에서 <오마이뉴스>를 만나 인터뷰 하고 있다.
ⓒ 소중한
<오마이뉴스>는 지난 2017년 10월 25일과 26일 이틀 동안 광주에서 1990년대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에 의해 '호남 최대 조폭조직 국제 PJ파 두목'으로 구속 기소됐던 여운환(72) 아름다운컨벤션 대표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당시 인터뷰에서 여 대표는 "모래시계 검사는 완전히 조작되고 날조된 영웅담일 뿐이고, 그렇게 조작되고 날조된 영웅담을 통해 여당·야당 대표, 경남도지사, 대선후보 등으로 승승장구했다"라며 '모래시계 검사 신화'를 격하게 비판했다. 이에 홍준표 전 대표 측은 "검찰(검사)이 불의한 깡패 세력을 소탕한 사건"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관련기사 : 여운환, 홍준표를 쏘다 https://omn.kr/1pu11).

특히 여 대표는 당시 인터뷰가 끝난 직후 "한 검사의 비뚤어진 영웅심에 아직도 폭력 조직의 두목이라는 억울한 누명 속에 살고 있다"라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그에게 재심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최근 두 번째 재심을 청구했다.

여 대표는 1986년 말 자신이 국제 PJ파의 '자금책 및 두목의 고문급 간부'로 활동하면서 국제 PJ파에 자금을 대주고 그 대가로 국제관광호텔 오락실(파친코) 영업을 보호받았다는 검찰의 공소 사실과 법원의 판결을 정면으로 반박할 '새로운 증거'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그가 제시한 새로운 증거는 국제관광호텔 폐쇄등기부 증명서, 국제관광호텔 영업의 경력 사실증명원, 신라당 폐업사실 증명 등이다.

성광기업 소유의 국제관광호텔은 광주광역시 서구 주월동에 있던 지상 7층, 지하 3층 건물로 지하 2층과 3층에는 각각 나이트클럽과 오락실이 있었다. 국제관광호텔의 폐쇄등기부 증명서와 영업의 경력 사실증명원에 따르면, 국제관광호텔은 지난 1988년 12월 28일 영업허가를 받고 다음해인 1989년 1월 24일 소유권보전등기를 마쳤으며, 지난 2003년 12월 22일 폐업했다. 여 대표가 운영했다는 오락실은 홍준표 당시 광주지검 강력부 검사가 범죄 시점으로 특정한 '1986년'에는 개업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그는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에서 '신라당'이라는 대형제과점을 운영하고 있었다(1986년 4월~1989년 7월).

이러한 사실을 확인한 여 대표는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에 따라 재심을 다시 청구했다.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는 "유죄의 선고를 받은 자에 대하여 무죄 또는 면소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는 최근 <오마이뉴스>와 한 옥중 인터뷰(사업 진행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현재 복역중-기자주)에서 "세상에 이 이상 명확하고 뚜렷한 증거는 없다"라며 "존재하지도 않은 범죄 혐의로 기소했고, 존재하지도 않는 곳에서 범죄를 했다고 판결을 내렸으니 이 얼마나 억지 판결이었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법부 정의가 존재하는 한 이번 재심 청구가 외면당할 일은 없다"라며 "오직 법대로만 판단하면 될 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라고 재심에 대한 기대감을 강하게 드러냈다.

다음은 여운환 대표와 서면으로 주고받은 옥중인터뷰 전문이다.

"홍준표 검사가 '범죄와의 전쟁'을 철저하게 활용했다"
 1990년 10월 13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건전시민운동 단체대표들로부터 수범사례 발표와 건의를 듣고 범죄와 폭력을 소탕하기위한 강력한 실천 방안을 천명했다.
ⓒ 연합뉴스
- 1992년 이른바 '국제 PJ파' 사건으로 징역 4년 형을 확정받았는데, 당시 홍준표 광주지검 검사가 이 사건을 수사하게 된 특별한 배경이 있나?
"먼저 저는 1975년 3월 이후 이 사건이 발생했던 1992년 초까지 무려 17년 동안 사소한 폭력사건에 연루되거나 처벌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 따라서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된 1990년 10월 이전이나 이후에도 폭력 조직 활동과 관련되어 수사기관에 소환되거나 참고인 조사 한 번 받아본 사실이 없다. 그때는 전국에 조직폭력배 소탕령이 발동되어 폭력 조직의 수괴는 말할 것도 없고 조직원들도 거의 수배되고 구속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폭력 조직의 조무래기들까지 검거해서 구속하고 이를 실적에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피해나갈 수 없는 사회 분위기였다. 심지어 변호사까지도 사건을 맡지 않으려고 하는 분위기였다. 그 즈음 국제 PJ파 폭력 조직도 예외는 아니었기에 여러 조직원들이 구속되고, 이때 두목 김길○이도 검거돼 구속 기소되었다. 그는 1심 법원에서 검찰의 공소 사실이 다 인정되어 징역 5년 형을 선고받았다.

홍준표 검사가 나를 수사하게 된 특별한 배경과 관련해, 딱히 뭐라고 할 만한 이유가 없었지만 1991년 여름 골프장에서 홍준표 검사가 인사하는 것을 제가 면전에서 거절했다는 '괘씸죄'가 발단이 되었다고 알고 있다. 그 후 몇 개월에 걸친 내사도 있었으나 아무런 혐의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국제 PJ파 두목으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김길○이 감형을 받기 위해 항소심 선고 만기 10여 일을 남겨두고 1991년 9월 28일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그 탄원서에서 과거 자신의 폭력 세계 선배들이었던 사람들(전휘○, 여운환, 현희○, 유재○)을 거명했다. 이때 김길○의 항소심 재판부는 '여운환과 현희○'은 두목으로, 김길○은 부두목으로 인정했고, 2년을 감형해 주었다. 반면 저를 광주·전남 최대 폭력조직인 국제PJ파를 결성하고 활동한 수괴·두목으로 올가미를 씌웠고, 이것은 홍준표 검사에게 엄청난 먹잇감이 되었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조사 한 번만 이뤄졌다면 탄원서가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는 홍준표 검사는 자신의 목적에 그저 철저하게 이용만 했다. 꼬투리 하나라도 잡으려고 수개월 동안 내사했다는 홍준표 검사가 선고 10여 일을 남기고, 그것도 결심 공판까지 끝난 시점에서 김길○이 써낸 탄원서의 진의를 몰랐다면 그것은 검사로서 자격이 없다. 게다가 그동안 김길○을 (국제 PJ파의 두목으로) 검거하고 수사해 검찰에 송치한 경찰관들이나 광주지검 강력부 소속 검사들은 직무유기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김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항소심에 제출한 탄원서 내용과 검찰(홍준표 검사)에서 한 진술은 허위이며, 자신이 감형을 받기 위한 술책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여운환과 현희○'은 국제 PJ파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서 별 피해가 없을 줄 알고 이용한 것뿐이라고 했다. 이러한 김길0의 증언 시점은 제가 구속되기도 전이었다. 이후 김길○은 '여운환 사건'(91고합719호) 재판부에서도 자신이 국제 PJ파의 두목으로서 폭력 조직을 결성하고 활동했다고 거듭 증언했다.

앞서 경찰도 김길○을 국제 PJ파 두목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광주지검 강력부)도 김길○의 조직원들을 구속 기소하면서 김길○을 국제 PJ파 두목으로 공소 제기했다. 이에 1심 법원은 공소를 인정하고 김길○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그런데 김길○이 항소심 선고 만기 10여 일을 남기고 제출한 탄원서 한 장 덕분에 '부두목'으로 강등되어 2년을 감형받았는데도 여운환과 현희○ 및 국제PJ파 조직원들 사건 재판에서는 김길○이 국제PJ파를 결성하고 두목으로 활동해 왔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렇듯 홍준표 검사의 수사는 그야말로 코미디 같은 일이었다."

- 1990년 10월 13일 노태우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홍준표 검사가 그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를 철저하게 이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1992년 초에는 조폭들도 일망타진되는 등 '범죄와의 전쟁'의 목적을 거의 다 이루었다. 저에게 폭력 혐의가 있었다면 그때 무사할 수 없었을 것이다."

- 당시 홍준표 검사는 당신을 조직폭력단체인 국제PJ파를 조직해 활동한 "우두머리"(수괴)라고 기소했는데, 이러한 기소는 어떻게 가능했던 것인가?
"앞서 상세하게 설명했지만, 홍준표 검사의 감정, 공명심 등이 작용했다고 본다. 완전히 자의적이었다. 얼마나 잘못된 기소였으면 (두목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가 나왔겠나?'

- 당시 홍준표 검사는 당신이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야쿠자와 칠성파 간의 시카스키 의식(야쿠자 조직의 의식)에 참석한 내용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유력한 증거로 제시했는데.
"홍준표 검사가 저에게 불리한 부분만(언론에) 확대해 활용했다. 그 의식에 참석하게 된 앞뒤 내용들은 홍준표 검사가 검증할 수 있었고, 심지어 당시 '가수 남진'이 전남경찰국 출입기자단에 회견까지 해서 당시 참석 배경과 동기를 설명했다. 홍준표 검사가 사실이 확인된 부분을 자의적으로 만들어 검사장과 언론에 선동용으로 적극 활용했다. 이같은 비디오테이프 영상은 1심 재판부에서도 검증했고, 재판부가 무죄 증거로 인용했다. 거기에 참석한 사람들은 제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자금책 겸 두목의 고문급 간부'라는 판결은 허위의 공소사실에 기반한 것"
 박상원은 홍준표 검사의 모델로 그려졌다
ⓒ 드라마 모래시계 화면 캡처
 SBS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정성모는 여운환을 묘사했다.
ⓒ SBS 드라마 화면 캡처
- 법원은 당신이 '국제 PJ파의 우두머리'라는 검찰의 공소사실은 인정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재판 과정을 통해 공소사실을 철저하게 검증했고, 검사의 입증 증거는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김길○과 박주○의 진술을 허위로 판단한 것이다."

- 다만 법원은 당신이 국제 PJ파의 "자금책 및 두목의 고문급 간부"이고, '서방파의 재건'으로서 국제 PJ파를 구성한 사실은 인정했다. 이러한 법원의 판단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그러한 법원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다. '서방파의 재건'이라는 공소장 내용 자체가 허위 사실이다. 오히려 1975년 3월 제가 재판받았던 폭력사건은 서방파 조직원을 폭행한 사건이었다. (김태촌의) 서방파는 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고, 오로지 '김태촌'이라는 사람이 조직해 활동했던 범죄단체일 뿐이다. 다만 김태촌은 유년 시절 선배 밑에서 함께 어울렸던 과거가 있을 뿐이다. 그것도 1975년 이전의 일이었다. 국제 PJ파와 서방파는 완전히 다른 조직이다. '자금책 겸 두목의 고문급 간부'로 인정한 법원의 판단은 그야말로 실체가 없고 존재하지도 않은 범죄 사실을 억지로 만들어서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재심을 신청하게 된 것이다."

- 당시 김길○, 박주○ 등 국제 PJ파 조직원들도 검찰과 법원에서 당신이 국제 PJ파에서 활동했다고 주장했는데 그들이 그렇게 주장한 이유는 무엇인가?
"앞서도 말했듯이 김길○이 항소심 선고 만기 10여 일을 남기고 탄원서를 꾸며 감형을 받기 위한 작전에 동원된 허위진술이었다. 박주○도 수배 상태에서 처벌을 피하기 위해 검사의 회유와 협박, 약속 등에 의해 진술을 꾸몄다는 것이 공판 과정에서 다 드러났다. 또한 공판 기일 전 법원에서 이루어진 증인신문 과정에서도 허위 주장이었다는 사실이 모두 다 밝혀졌다."

- 2심 재판부는 당시 김길○에 의해서 국제 PJ파의 "최고 선배"로 추대되었다고 판시했는데 이러한 법원의 판단을 어떻게 생각하나?
"2심 재판부의 판단은 1심 법원의 판결을 지지하는 내용인데 이미 김길○의 진술들은 허위의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 이렇게 설시하는 것은 서로 맞지 않다. 1심과 더불어 항소심 판단에서도 김길○과 박주○의 진술들을 허위 사실로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무죄와 유죄의 증거로 각각 인용하고 있는 것 자체가 참으로 모순된다. 이는 자유심증주의를 과도하게 위배하는 것이다.

김길○과 박주○의 진술들은 모두 다 허위였다는 사실이 1차적으로 다 밝혀졌으나 1심 법원이 급조해 만들어낸 범죄 사실, 즉 제가 '자금책 겸 두목의 고문급 간부'라는 판결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날조된 사실인지 이번 재심 청구를 통해 증명하려고 한다. 존재하지도 않은 호텔오락실의 영업활동을 보호받는 대가로 조직에 돈을 지원하고 사건 수습을 위해 조직에 가입했다는 판결은 그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허위의 공소사실에 기반한 것이다. 법원은 허위사실을 그대로 인용한 위법을 저질렀다. 대법원에서도 이같은 증거 인용은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아직도 '국제 PJ파 고문'이라고 관리해서 부당함을 제기했지만…"
 지난 1995년 방영된 SBS 드라마 ‘모래시계’는 최고 시청률 64%를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배우 박상원이 강직하고 정의로운 강우석 검사역을 맡았는데, 강우석 검사의 모델은 ‘홍준표 검사’로 알려졌다. 본인도 선거 등에 나와 “모래시계의 모델이 되었던 검사”라고 홍보해왔다. 하지만 드라마 대본을 쓴 송지나 작가는 나중에 “그분은 ’모래시계‘를 집필할 때 취재차 만났던 여러 검사 중 한 분일 뿐”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 SBS 드라마 ‘모래시계’ 포스터.
- 이 사건 이전에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을 위반해 실형을 받은 적이 있나?
"단 한 번도 없다. 실형은 고사하고 수사기관에 소환되거나 조사 한 번 받아본 적이 없다. 참고인으로도 지목받은 적도 없다. 그저 유년시절 '건달 생활'을 했던 과거만 있을 뿐이다."

- 1975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2년에 3년간의 집행유예를 받은 이후부터 이 사건으로 실형을 받기까지 조직폭력단체에 가입하거나 활동하거나 자금 등을 지원한 적이 있나?
"그런 일은 전혀 없다. 시점을 떠나서 국제 PJ파 누구에게라도 단돈 10만 원도 지원한 적이 없다. 증거도 전혀 없어서 검찰도 발견할 수 없었다."

-김길○, 현희○ 등 국제 PJ파에서 활동했던 사람들과는 어떤 관계였나?
"김길○은 과거 유년시절과 사회 초년생 시절 함께 어울린 적이 있던 후배였고, 현희○도 중학교 후배로서 마음을 잡기 전까지 함께 활동했던 사이였다. 현희○도 저와 비슷한 시기에 마음을 잡았고, 결혼도 했고, 사업에 전념해 왔다."

- 국제 PJ파라는 조직폭력단체가 결성된 것은 사실 아닌가? 그렇다면 국제 PJ파의 '두목'은 누구였나?
"딱히 언제, 어디에서 국제 PJ파라는 폭력조직을 결성했다는 것은 사실과 맞지 않다. 자연스럽게 떼지어 몰려 다니면서 활동하고 싸움하는 행위로 인해 수사가 이뤄지고 구속되면서 수사기관인 경찰에서 붙인 이름이다. 조폭들의 주요 활동 무대의 상호나 지역 이름을 붙여 폭력 조직의 이름을 정했고, 그렇게 명단을 작성해서 관리해 왔다. 경찰에서는 제일 선배로 활동한 사람을 두목으로 정해왔다는 점에서 국제 PJ파의 두목은 '김길○'이 맞다. 그동안 여러 사건에 나온 전력들이나 수사기록, 공소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경찰과 검찰의 공소 사실, 법원의 판단 모두 다 김길○을 두목으로 인정하는 데 일치했다."

- 아직도 경찰에서 당신을 조직폭력배 조직원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사실인가?
"아직도 저에 대해 '국제 PJ파 고문'이라고 (경찰의) 관리대장에 적혀 있다. 이는 당시 판결문에 그렇게 설시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는 이 점에 대해 수없이 부당하다고 지적해 왔다. 그와 같이 기재한 기준이 과연 무엇인지 답변을 요구하고, 심지어 광주경찰청장을 국가인권위원회에 고발까지 했다. 그렇게 관리되어야 할 정황이나 증거는 전무하다. 1975년 이후 현재까지 무려 50여 년 동안 폭력배 사건에 연루되어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다. 하지만 저의 호소를 수사기관은 외면으로 일관했다.

1996년 초 출소 후에는 제가 조직폭력배 명단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2001년 이용호 게이트 사건 국정조사 때 홍준표가 한나라당 동대문을 보궐선거 후보로 나오면서 '모래시계 검사'를 내세우고, 그때 맞춰 제 사건이 크게 대두되었다. 그때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이 경찰청장에게 '왜 여운환이 조직폭력배 명단에서 빠져 있느냐? 누군가의 비호세력들이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 적이 있다. 이렇게 홍준표가 흘린 정보에 따라 홍준표를 지원하기 위해 만든 각본에 따라 제가 조직폭력배 명단에 다시 올려졌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저는 70이 넘은 고령이 되어서도 그와 같은 부당함을 감내하고 있다. 국제 PJ파라고 지목받고 있는 사람들과의 교류가 전혀 없는데도 벗어날 수조차 없다. 똑같은 판결에 똑같이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현희○은 관리대장에 아예 없다. 그만큼 홍준표의 영향력 아래에서 누구도 선뜻 나서 제 불이익을 대변하려 하지 않았다."

2017년에 이어 두 번째 재심 청구… "가장 핵심적인 '알리바이 증거'를 찾았다"
 국제관광호텔의 폐쇄등기부 증명서. 국제관광호텔은 1988년 영업을 시작해 2003년 문을 닫았다. 여운환 아름다운컨벤션 대표가 국제PJ파에서 활동하며 국제관광호텔 오락실 영업을 보호받고 있었다는 1986년에는 국제관광호텔이 없었다.
ⓒ 오마이뉴스
 국제관광호텔의 ‘영업의 경력 사실증명원‘.국제관광호텔은 1988년 영업을 시작해 2003년 문을 닫았다. 여운환 아름다운컨벤션 대표가 국제 PJ파에서 활동하며 국제관광호텔 오락실 영업을 보호받고 있었다는 1986년에는 국제관광호텔이 없었던 것이다.
ⓒ 오마이뉴스
- 이 사건으로 징역 4년의 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되고 26년이 지난 2017년에 재심을 청구했는데, 당시 재심을 청구한 이유가 뭔가?
"이 사건이 1992년 12월 22일 확정된 이후부터 줄곧 억울함을 호소해 왔다. 그러나 검토를 맡았던 변호사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끝난 뒤에는 (분명한) 재심 사유가 없을 때에는 재심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1%도 없으니 잊어버려야 한다는 말로 저를 설득했다. 그러던 중 오랜 세월이 지났고,1997년에 1991년 당시 홍준표 검사가 꾸몄던 '박주○'의 공판기일 전 증인신문조서가 저나 저희측 반대신문권 없이 이뤄진 점에 대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났다. 저는 수사기록과 공판기록을 찾고 있었지만 세월이 오래 지나 기록보전이 안돼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017년 어느날 우연히 검찰 관계자로부터 저의 사건 기록은 당시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사건이었기 때문에 '영구보전'으로 관리되고 있어 광주지방검찰청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사건기록을 바로 찾을 수 있었던 것이고, 2017년 12월 재심을 청구했다."

- 하지만 법원은 재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는 유죄의 증거로 쓰인 조직원 박주○의 공판기일 증인신문조서가 1996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났기 때문에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17년 재심 담당 재판부는 '당시 증인신문조서는 형사소송법 제184조에 따라 관계 당사자에게 신문기일 통지를 거쳐 진행한 증인신문 내용을 기재한 것으로 인정된다'라며 '형사소송법 제221조의 제2항에 의해 작성됐다는 청구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라고 판단해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박주○의 진술조서는 홍준표 검사의 회유와 협박에 의한 것이었는데 왜 법원이 그와 같이 판단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 처음 재심을 청구하고 8년이 지나 두 번째로 재심을 청구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현재 처한 사건에 대한 유죄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결과가 일어난 것이어서, 제가 조직폭력배 두목이라는 '주홍글씨' 때문에 그와 같은 결과가 생겼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그래서 과거 억울하기 그지없었던 판결문과 기록을 검토하는 데 매달렸다. 그러다가 이 사건 공소장과 판결의 차이점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범죄를 했다고 판결을 내렸으니 이 얼마나 억지 판결이었나?"

- 그동안 법원은 1986년 당신이 운영하던 국제관광호텔의 오락실 영업을 보호받는 대가로 국제 PJ파에 자금을 지원했다고 판단했는데, 국제관광호텔 폐쇄등기부 증명서, 국제관광호텔 영업의 경력 사실증명원, 신라당 폐업사실 증명 등이 이것을 정면으로 뒤집는 증거라는 것인가?
"당연하다. 판결문에 범죄 사실이 특정되어 있다. 존재하지도 않은 시기와 장소에서 범죄 행위를 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가 발견된 것이다. 형사사건에서 가장 핵심적인 '알리바이 증거'를 찾게 된 것이다. 세상에 이 이상 명확하고 뚜렷한 증거는 없다."

- 국제관광호텔은 1988년 12월에서야 영업 허가를 받았고, 1989년 1월에 소유권보존등기를 마쳤기 때문에 1986년 말경에 국제 PJ파로부터 국제관광호텔의 오락실 영업을 보호받는 조건으로 자금을 지원했다는 검찰의 공소장 내용은 완전히 '허위'라는 것인가?
"그렇다. 두말할 것도 없이 허위 공소 사실이 맞고, 존재하지도 않은 범죄 혐의로 기소한 것이다."
 홍준표 검사가 여운환 아름다운컨벤션 대표가 국제 PJ파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특정한 시점인 1986년에 여 대표는 광주 금남로에서 ’신라당‘이라는 제과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사진은 신라당의 ’폐업사실증명‘ 자료다.
ⓒ 오마이뉴스
- 그렇다면 검찰이 국제관광호텔의 오락실을 운영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던 1986년 말경에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저는 1986년 4월 26일 '신라당'이라는 제과점을 개업해 집사람과 운영 중이었다. 1985년 12월 인테리어를 시작하고 제빵기계를 수입하거나 국내에서 구매해 대규모 양산 체제가 가능한 제과점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다. 공장장을 비롯해 직원들만 20여 명이나 되었다."

- 당신은 국제관광호텔의 오락실을 운영한 적이 있나?
"그렇다. 그러나 국제관광호텔 오락실은 1989년 말경 주주로 참여했고, 호텔 오락실 운영은 호텔 측에서 직영으로 운영했다. 저희 측에서는 경리직원(관리팀) 한 사람만 근무하고 있었다. 그것도 1992년 1월 초 제가 구속되면서 계약이 만기가 돼 해지되었다. 연장할 수도 있었지만 제가 엮이기 싫어서 그만뒀다."

- 어떤 계기로 그 증거자료들을 찾게 됐나?
"공소장과 판결문 등을 살피다가 공소사실에 적힌 범죄행위 시기에 제가 신라당 제과점을 운영하고 있었고, 사업이 부진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 때였다는 사실이 생각나 증거자료들을 찾게 되었다."

- 그 사건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을 당시에는 왜 이러한 증거들을 제출하지 못했나?
"제가 그 당시에는 물론이고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법률상식이 부족해 판결문 내용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래서 제가 2014년 <모래시계에 갇힌 시간>이란 책을 쓸 때도 국제 PJ파는 김길○이 조직하고 결성해 활동했다고 판시했다는 것조차 제대로 몰랐다. 국제 PJ파의 두목이 누구라고 확정하지도 못하고 저에게 '두목의 고문급 간부'라고 내린 판결을 부당하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법률 상식이 있었다면 그 당시 끝났을 것이다. 또한 공소장에 적시된 '1986년 말경'이라고 특정된 사실에 대해서도 홍준표 검사가 제가 김길○을 알게 된 시점을 자의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제 사건이 무죄로 끝났다면 '홍준표 검사'가 출세하는 일은 없었을 것"
 제21대 대통령 후보자 국민의힘 3차 경선 진출자를 발표하는 지난 4월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홍준표 후보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 국제 PJ파 사건은 홍준표 검사가 자신의 출세 욕망을 위해 무리하게 표적수사한 것이라고 보나?
"그 당시에는 홍준표 검사가 출세하기 위해 한 수사라고 생각할 수 없었고, 그저 성질머리 고약한 한 검사가 자기에게 대든 한 사람에게 화풀이 하고 유죄를 받아내기 위해 나쁜 짓을 무차별적으로 했던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이 지금까지 국민 앞에서 보여줬던 행동을 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결국 홍준표 검사는 '모래시계 검사'라는 신화까지 만들며 승승장구해 국회의원이 되었고, 대선주자로도 출마하는 유력 인사가 되었는데, 그런 홍준표 검사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 사건이 무죄로 끝났다면 당연히 징계 처리가 되어 서울중앙지검으로 영전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참으로 양심 없는 나쁜 짓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출세할 수도 있구나 하는 경험을 직접 하게 됐다. 저런 사람이 권력을 계속 갖게 된다면 많은 피해자가 생겨날 것이라는 걱정거리만 늘었다."

- 두 번째 재심을 청구한 지금 홍준표 검사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홍준표 검사는 언론 취재 시 자신은 잘못한 게 없고, 잘못한 사람이 있다면 판결을 한 법원인 것처럼 회피하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언어도단이다. 홍준표 검사가 저에게 덧씌워놓은 '주홍글씨'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홍준표의 몫이다. 이 모든 허위사실을 사실인 것처럼 조작했고, 이를 지속적으로 활용해 완전히 처지가 바뀌었다. 자기가 해왔던 행동에 대해 인간이라면 한 번쯤은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 잘못된 사실로 인해 제가 파멸의 길을 걷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드문데, 당신의 두 번째 재심 청구는 받아들여지리라고 생각하나?
"확실하다. 사법부 정의가 존재하는 한 이번 재심 청구가 외면당할 일은 없다. 특히 지금 상황은 30여 년 전 암울했던 시기도 아니고, 법원이 좌고우면할 일도 없어서 오직 법대로만 판단하면 될 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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