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조개 가리비는 왜 중·일 갈등의 ‘볼모’가 되었을까
중, 일본의 가리비 수출액 절반 이상 차지
일 동맹국 집결시키는 연대 상징물 부상

지난해 11월 5일 일본 홋카이도의 한 항구에서 6t 분량의 냉동 가리비를 실은 선박이 중국으로 출항했다. 중국이 2023년 8월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한 이후 처음으로 일본산 가리비를 수입하는 순간이었다. 외교가에서는 가리비가 배에 실리는 모습을 ‘양국 관계의 해빙’을 나타내는 상징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 가리비는 중국 식탁에 오르기도 전에 또다시 멈춰섰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중국의 대만 침공은 일본의 존립위기 사태가 될 수 있다”는 발언을 한 게 화근이었다. 현직 일본 총리가 대만 유사시 일본 자위대의 무력 개입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었다. 중국은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을 철회하라고 강하게 요구했고, 11월 19일 다시 일본산 수산물 수입 중지를 통보했다. 가리비는 일본과 중국의 지정학적 갈등의 상징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NYT)는 1일 흔한 조개류인 가리비가 “동북아시아 외교의 예민한 ‘볼모(pawn)’로 떠올랐다”면서 중국이 일본을 압박할 외교 수단으로 가리비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가리비는 일본이 중국에 수출하는 대표 수산물이다. 동시에 중국에 수출하는 수산물 수출액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중국이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를 내리기 전인 2022년까지 중국은 일본 가리비 수출의 50% 이상 차지하는 최대 큰손이었다. 2022년 일본 수산물 한해 수출 규모는 3878억엔(약 3조5814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중국 비중은 전체의 20%인 871억엔(7545억원)에 이르렀다. 일본산 가리비의 중국 수출액은 489억엔(4516억원)으로 56%에 달했다.
홋카이도산 가리비는 중국 고위층 연회나 결혼식에서 빠질 수 없는 고급 식재료로 통용된다. 또 중국은 일본산 가리비를 수입해 껍데기를 깐 뒤 이를 가공해 재수출하는 일본의 해외 공장 역할도 한다. 중국이 일본산 가리비에 대한 수입을 금지하고 소비 자체를 제한할 경우 일본에 가해지는 경제·산업적 타격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NYT는 “중국의 전형적인 ‘경제적 강압(economic coercion)’ 전술”이라고 분석했다. 반도체나 자동차 같은 일본의 핵심 산업을 건드려 전면전을 벌이는 대신 지방경제에 타격을 주며 압박하는 방식이다. NYT는 “홋카이도의 한 가리비 가공업체는 전체 매출의 4분의 1일 중국 수출에 의존했다”면서 “2023년 수출이 하루아침에 중단되면서 상당한 타격을 봤다”고 전했다. 이어 “중국은 급격히 늘어나는 중산층의 소비를 외교 지렛대로 삼고 있다. (일본산 가리비 외에도) 대만산 파인애플, 호주산 와인, 미국산 대두, 리투아니아산 소고기 등에 수입 제한 조치를 취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반작용으로 가리비가 일본 동맹국들을 결집시키는 연대 무기로 부상했다. 미국과 대만이 일본산 가리비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지지를 보내는 동시에 중국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간접적으로 내비치고 나선 것이다.
조지 글래스 주일 미국 대사는 지난해 12월 소셜미디어에 가리비 요리 사진과 함께 “미국인들은 가리비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중국의 강압적인 경제 대응은 지역 안정을 훼손한다”며 일본산 가리비 소비를 중국에 대한 애국적 저항 행위로 규정했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도 홋카이도산 가리비가 포함된 스시 식사 장면을 공개하며 일본에 대한 지지 의사를 보였다. 그는 “지금은 일본 요리를 먹기 좋은 때다”라고 말했다.
중국의 일본산 가리비 수입 금지가 일본 경제에 큰 타격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NYT는 “홋카이도의 생산자들이 가리비 가공 시설을 베트남과 다른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이전하기 시작했고 미국으로도 직접 수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기업들이 그간 중국의 수출 규제에 대비해 사업 다각화를 추진한 만큼 경제적 타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차에 시큰둥한 ‘1020’ 잡아라… 차업체들 앞다퉈 게임속으로
- 美우선주의 외교 올해도 계속된다
- 위험 가중치 20%로 상향… 주담대 문턱 더 높아진다
- 尹 선거법 위반 기소… 국힘 선거비용 400억 반환 유탄 맞나
- 환율 방어 맡은 국민연금 전략… 득이냐 실이냐
- 정가 4만5000원→20만원?…스타벅스 ‘곰돌이 컵’ 또 품절·리셀 대란
- “대한민국 대도약 원년 만들고 결실의 시간 열어젖힐 것”
- 항공정비사 꿈꾸던 고교생, 장기기증으로 6명에 새 생명
- 고환율, 새해에도 이어진다… 1400원대 요지부동 전망
- [단독] ‘나쁜 의사’ 철밥통 깨졌다… 성범죄만으로 첫 면허 박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