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이 참혹해진 까닭...공부는 왜 '차별 합리화'의 근거가 됐나
'국민제안위원회'는 생활 현장에서 느끼는 문제와 정책 아이디어를 직접 제안하는 참여형 의제 제안 프로젝트입니다. 시민과 정부를 연결하는 가교로서 다양하고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해 국민주권정부의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합니다. <편집자말>
[서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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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7월 6일, 서울의 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7월 모의고사'를 보고 있다. |
| ⓒ 연합뉴스 |
교육개혁의 성공 여부는 아이들의 표정에서 확인된다. 주말에도 학교에 가고 싶어 안달하는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 곧, 액자 속 교훈으로만 머물렀던 '즐겁고 보람찬 학교생활'을 제대로 구현하는 게 교육개혁의 본령이다. 교육개혁의 성공을 위해선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게 먼저다.
노파심에서 전제한다면, '거대 담론'으로 접근하면 필패다. 역대 정부의 교육개혁이 매번 용두사미로 끝난 것도 그래서다. 대한민국의 '교육개혁사'는 학교 현장을 모르는 교육 전문가들의 탁상공론을, 보고서 작성에 이골이 난 관료들이 새 교육과정으로 포장해 상명하달식으로 일괄 적용해 온 역사나 다름 없어 보인다.
교육개혁의 세부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데는 아이들과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되는 게 맞다. 아이들의 '즐겁고 보람찬 학교생활'을 방해하는 요소와 영향의 인과관계를 따져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합리적인 대안이 도출될 수 있다. 학계와 시민사회를 대상으로 한 공청회는 그다음이다.
'중위권' 학생이 사라진 학교
기말고사가 끝나고 겨울방학을 앞둔 지금, 수업하다 말고 한 반 아이들에게 학교생활이 만족스러운지 물었다. 뜬금없는 교사의 발문에 이구동성 "이 세상에 좋아서 학교 다니는 학생이 어디 있겠느냐"라고 대답했다. 그들의 심드렁한 답변에는 짜증 섞인 표정과 피곤함만 가득하다.
그나마 학교생활의 버거움을 달래주는 건, 친구들과의 운동과 수다, 무엇보다 점심 급식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학교 밖에는 함께 놀 친구가 없고, 끼니를 스스로 챙겨야 해서 불편하다는 뜻일 테다. 학교의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는 '배움의 즐거움'을 손꼽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대학 진학이 당연시되는 분위기 속에 학업 성적에 대한 부담이, 예상했던 대로 학교생활의 만족도를 떨어뜨리는 절대적인 요인이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는 말은 백번 지당하지만, 생략된 단어가 있다. 공부 앞에 '대입'을 넣어야 완전한 의미의 문장이 된다. 아이들에게 대입을 위한 공부 외엔 '딴짓'일 뿐이다.
곧, 교육개혁의 고갱이는 아이들의 학업 성적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것이어야 한다. 오로지 대입을 위한 맹목적이고 획일적인 공부를 강요하는 학교에선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1등은 1등을 놓치게 될까 불안하고, 꼴찌는 종일 무의미한 수업 시간을 견뎌 내야 하는 게 고통스럽다.
근본적으론, 대학 진학이 '의무 교육'처럼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를 해소해야 한다. 아이들 대다수가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진학해 온 대학 교육의 사회적 요구와 위상을 재정립해야 할 때다.
지금 지성의 전당이라는 '상아탑'으로서 대학의 이상은 온데간데없고 '우골탑'의 피폐한 현실만 남았다. 천문학적인 자녀의 학비를 감당하기 위해 노년의 삶을 저당 잡히는 부모 세대가 사회 문제로 대두될 정도다. 대학 교육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걸 그들도 모르진 않는다.
인문학의 몰락과 학문 수준의 질적 저하 등 우리 대학 교육의 위기는 이미 오래전 시작됐다. 온존한 학벌 구조와 대학 졸업장이 신분증 역할을 하는 현실에 기대어 손 놓고 있다가 이제야 대학마다 존폐 위기라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위기의식을 느끼게 한 건 되레 학령 인구의 급격한 감소였다.
대학의 입학 정원보다 고등학교 졸업자 수가 더 적은 상황에서도 성적 경쟁은 조금도 완화되지 않았다. 서울의 상위권 대학의 경쟁률은 여전히 높고,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지방대의 경우엔 외국 유학생 유치에 사활을 걸거나 서둘러 '평생 교육 기관'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입학 자격을 중장년층으로 넓혀 정원을 채우고 보려는 고육지책이다.
이 와중에도 고래 심줄보다 질긴 학벌 구조 속에 아이들의 선택은 둘 중 하나다. 공부에 목매달거나 아예 포기하거나. 요즘 학교엔 '중위권'이라는 말이 없다. 점수 분포가 극단적으로 양분되어, 가운데가 봉긋한 정규 분포 곡선이 그려지지 않는다. 상위권과 하위권의 숫자로만 치면, 허리가 잘록하고 아래가 불룩한 오뚜기 형태다.
어쩌면 소수의 상위권과 대다수의 하위권이라는 표현이 더 적확할지도 모른다. 중위권 아이들이 대입 공부에 찌들어 시나브로 하위권으로 추락하는 양상이다. 비율을 기준으로 나뉘는 등급으로는 도드라지지 않지만, 아이들 사이의 극심한 학력 격차는 이미 수습하기 힘든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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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부 이미지 (자료사진) |
| ⓒ 연합=OGQ |
상위권 아이들은 대체로 시험 성적에 따른 차별이 공정하다고 말하고, 하위권도 그들의 매몰찬 주장에 수긍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조차 없는 아이들이 태반이다. 고등학교에서 시험 성적은 자존감과 정비례하는 지표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학교에서의 학력 격차로부터 이미 시작됐다.
중요한 건, 상위권과 하위권 모두 공부를 '혐오'한다는 점이다. 상위권은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공부하고, 하위권은 '이번 생은 망했다'며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공부를 도외시한다. 공부는 차별을 합리화하는 근거로 전락했고, '배움의 즐거움'이란 아이들에겐 형용모순이다.
모두가 '죽기보다 싫어하는' 공부의 참뜻을 아이들이 깨닫도록 해야 한다. '배우고 익히니 또한 즐겁지 아니하냐(學而時習之不亦說乎)'고 반문했던 공자의 일갈처럼 공부는 본디 즐거운 것이다. 알다시피, 공부를 뜻하는 '학습'이라는 단어도 <논어>의 첫 구절인 이 글귀에서 비롯됐다.
대입에 종속된 공부를 해방시키는 게 급선무다. 한낱 대입이 공부의 개념을 독점하도록 내버려둬선 안 된다. 대학 공부를 위해서 반드시 요구되는 지식이 있다면, 그것만 평가하면 된다. 굳이 점수와 등급으로 서열을 매길 필요는 없다. 그게 30여 년 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도입한 취지이기도 하다.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 정도의 학업 능력을 갖추는 일을 제외하곤, 아이들의 '즐겁고 보람찬 학교생활'을 위해 배움의 '자유'를 허락하면 좋겠다. '배움의 즐거움'은 자발성으로부터 비롯된다. 교육 당국과 학교는 아이들의 요구에 맞춤한 다양한 배울 거리와 즐길 거리를 제공해 주면 된다.
"이상적이긴 한데, 그게 가능하겠어요?" 아이들은 내 이야기를 귓등으로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비현실적이라는 거다. 나날이 의치대와 'SKY'를 정점으로 한 학벌 구조가 공고해지는데,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냐며 비아냥댔다. 아예 대한민국 교육 현실에선 헛된 기대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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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지난 11월 12일 오후 대전시 유성구 구암동 수능 제27지구 17시험장인 유성고등학교에서 수험생이 시험 유의사항을 확인하고 있다. |
| ⓒ 연합뉴스 |
수능의 자격 기준만 통과하면, 대입에서 나머지 다른 교과 성적을 묻지 않아야 한다. 아이들 입에서조차 "그렇다면 대학이 무엇을 근거로 신입생을 선발하느냐"는 반문이 전가의 보도처럼 뒤따른다. 대학에서 해야 할 걱정을 아이들이 대신해 주는 것도 우스꽝스럽지만, 대학과 수험생이 '갑을 관계'라는 걸 자인하는 꼴이어서 당혹스럽다. 기실 수험생들 위에 군림해 온 '슈퍼 갑' 명문대의 학문적 나태함과 정원 채우기에 급급해 대학 교육의 존재 이유를 상실한 지방대의 생존 투쟁이 대학 위기의 본질이다.
대학마다 아이들의 잠재력이 가장 중요한 선발 기준이라며 공지하고 있다. 그러나 잠재력은 수능을 비롯한 선다형 시험 위주의 평가를 통한 점수와 등급으로 판별할 수 있는 역량이 아니다. 대입을 위한 맹목적인 공부는 아이들의 잠재력을 발현하는 기회를 빼앗는 일이다. 아이들을 시험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시험은 자격을 묻는 수능 하나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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