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적 없는 길을 간다...‘부채 광풍’ 세계 경제 [스페셜리포트]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5. 12. 3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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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조달러(51경원).

2025년 3분기 기준 글로벌 총부채다(국제금융협회·IIF). 2025년 들어 몸집을 불린 글로벌 부채만 26조4000억달러다. 매일 약 1000억달러(약 147조원) 빚이 세계 경제에 쌓였다는 의미다.

1000억달러는 불가리아, 에콰도르 GDP와 맞먹는다.

‘부채 광풍’이 세계 경제를 휩쓸고 있다. 고도 성장기 땐 가계·기업이 부채 증가를 주도했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2025년 들어 늘어난 세계 부채 대부분은 미국 등 선진국이 주도했다. 한국도 부채 증가 상위국에 이름을 올렸다.

작금의 ‘부채 광풍’을 예사롭지 않게 바라보는 이유는 차입 주체 때문이다. 민간이 아니라 정부가 세계 최대 차입자가 돼 부채 감축이 구조적으로 더 힘들어졌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가계·기업 부채는 위기를 겪으며 정리되지만, 정부 부채는 위기 때 더 늘어난다. 눈덩이 국가 부채는 중앙은행 통화정책에도 제약 요인으로 작용한다. 금리를 올려야 할 상황에서 막대한 정부 부채 탓에 긴축을 주저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은 부채를 줄이기 더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가파른 고령화로 연금·의료 서비스 비용에 더 많은 나랏돈을 투입해야 해서다. 중장기적으로 한국 역시 재정적자 확대 → 국채 금리 급등 → 이자 부담 증가 → 재정 압박 악순환 고리에 빠져들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게 됐다. 저성장으로 통화당국이 금리를 내리고 정부가 지속적으로 확장재정을 펼 경우 종국에는 물가가 말이 뛰는 식으로 급등하는 ‘캘로핑 인플레이션’을 맞닥뜨릴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악순환 고리 1선진·신흥국 부채

빚으로 빚 갚는 개도국 늘어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2025년 3분기 기준 글로벌 총 부채는 약 346조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는 세계 GDP의 310%에 해당하는 규모다. 2022년 중반 이후 부채 절대 규모는 계속 늘고 있다.

이번 부채 증가는 완화적 통화정책과 확장재정이 맞물린 결과로 분석된다. 2025년 들어서만 세계 부채가 26조4000억달러 늘었는데, 대부분 선진국 정부 차입 때문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 ‘부채 광풍’ 진원지다. 프랑스·이탈리아·브라질이 뒤를 이었다. 선진국 전체 미상환 부채는 230조6000억달러, 신흥국도 115조달러를 넘어 각각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러시아·한국·폴란드·멕시코 등도 부채 증가 상위국에 포함됐다.

기업 부채도 만만찮다. 보고서에 따르면, 비금융 기업 부채는 100조달러에 육박한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신재생에너지 등 미래 산업에 집중됐다. AI 낙관론이 기업 차입 구조를 바꾸고 있다는 평가다. 가계는 정반대 흐름을 보였다. 같은 기간 글로벌 가계부채는 64조달러로 늘었지만, GDP 대비 비율은 57%로 2015년 이후 최저다. 이는 건전성 개선이라기보다, 고물가·주거비·정책 불확실성 여파로 가계 차입 여력이 위축된 결과로 해석된다.

우려를 키우는 대목은 만기 위험이다. 2026년 한 해 동안 신흥국은 약 8조달러, 선진국은 16조달러 이상 채권·대출을 차환해야 한다. 경기 둔화나 금융 여건 악화가 겹칠 경우, 막대한 부채는 재정·정책 위험으로 급속도로 전이될 수 있다. 전망도 녹록지 않다. 2026년부터 미국·일본·독일·중국에서 대규모 재정 부양책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 적자 재정이 구조화된 상황에서 정부 부채와 이자 비용이 추가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선진국이 깔고 앉은 막대한 부채는 시차를 두고 개발도상국 부채에도 영향을 끼친다. 선진국이 경쟁적으로 확장 재정을 펼치자 시차를 두고 글로벌 유동성 ‘구축효과’로 이어진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전통적 의미의 구축효과는 정부 재정 지출 확대 → 국채 공급 증가 → 금리 상승 → 민간 투자 위축을 초래한다. 현재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선진국 정부 차입 확대 → 무위험 자산(국채) 공급 증가 → 유동성 흡수 → 개발도상국 자금 조달 환경 악화로 나타난다는 진단이다. 글로벌 유동성 구축 효과는 금리 상승을 자극하므로, 시차를 두고 개발도상국 부채 부담을 더욱 키우는 악순환을 낳는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세계은행 ‘국제부채보고서 2025(International Debt Report 2025)’에 따르면, 저소득·중소득 국가(LIC·LMIC) 총대외부채는 약 9조달러 안팎으로 조사됐다. 부채 절대 규모는 전년 대비 큰 변화가 없었으나 원리금 상환 부담은 사상 최고 수준으로 확대됐다. 이들 국가 정부 부채가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나 재정이 더 이상 성장 마중물이 아니라, 이자를 갚으려 국채를 찍는 수준으로 변질됐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이를 보여주는 핵심 지표가 ‘순대출’(Net Transfers)이다. 이는 신규 차입에서 이자·원금·수수료를 제외한 자금 순유입을 뜻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아프리카 일부 국가를 포함한 저소득국(LIC) 순대출은 2022년 -48억달러에서 2024년 -121억달러로 악화일로를 걸었다. 이 수치가 마이너스면 차입국에서 해외로 빠져나가는 돈이 새로 들어오는 돈보다 많다는 의미다. 성장을 위해 부채를 조달하는 게 아니라 기존 부채 원리금을 갚으려 다시 빚을 내는 악순환 초입에 들어섰다는 진단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2월 16일 정부세종청사 기재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 겸 성장전략 TF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악순환 고리 2美 장기국채

장기금리-기준금리 탈동조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미국 장기 국채금리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것에도 세계 주요국 부채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결과로 시장은 보고 있다. 2025년 들어 미 연준은 기준금리를 2회, 유럽중앙은행(ECB)은 3회, 한국은행은 두 차례 각각 내렸다. 대체로 기준금리와 단기 금리가 하락하면 장기 금리도 시차를 두고 하락해야 하지만, 정반대 상황이 펼쳐진다. 여기에는 추가 국채 발행이 잇따를 것이란 시장 의구심 때문이란 진단이다.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 10년 국채 금리는 4.1%, 30년물 금리는 4.7% 안팎 수준을 보인다. 이들 장기 금리는 미 연준 12월 금리 결정을 앞두고 꾸준히 오르다 25bp(bp=0.01%p) 금리 인하 직후 소폭 내리는 데 그쳤다. 시계열을 넓히면 장기 금리와 기준금리 탈동조화는 더 두드러진다. 미 연준이 금리를 내리기 시작한 2024년 9월부터 기준금리(상단 기준)가 5.5%에서 3.75%로 내려오는 동안, 10년 금리는 3.61%에서 4.14%로 올라왔다. 2024년 하반기 금리 인하 기간 동안 10년물 금리는 반등했고 2025년 9월부터 재개된 추가 금리 인하에도 10년물 금리는 4.1%대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

채권시장에서는 정부 부채 만성화로 과거와 다른 국채금리 사이클이 펼쳐질 것이란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놓는다. 과거 채권시장에서 기준금리 인하는 장기금리 하락 신호였다. 가령, 미 연준이 긴축을 멈추고 금리를 내리기 시작하면 경기 둔화 우려로 투자자들은 미래 성장률과 물가 상승률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장기채권을 보유할 때 요구하는 추가 금리인 ‘기간 프리미엄’ 축소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정부 역시 경기 위축에 대응해 재정 지출 조정에 들어가 국채 공급이 감소한다. 이런 요인이 맞물려 금리 인하 때 장기국채 금리는 시차를 두고 자연스레 하향 안정화됐다.

이번 사이클은 정반대 양상을 보인다. 최근 수년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경기 대응과 별도로, 국방·산업·복지 지출을 경쟁적으로 늘렸다. 무차별 확장 재정은 기준금리 인하 국면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국채 발행이 줄기보다 더 늘어날 것이란 시각을 확산시켰다는 진단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전통적인 통화정책 효과가 약화하고 재정 여건이 금리 수준을 결정하는 ‘재정 우위(fiscal dominance)’ 국면 초기 신호로 해석한다.

경제학 교과서에서 금리 인상은 물가를 잡는 ‘절대반지’였지만, 정부 부채가 임계치를 넘어선 ‘재정 우위’ 국면에서는 이 공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 금리를 올리면 막대한 빚을 깔고 앉은 정부 이자 부담이 폭증해 재정 위기 우려를 키운다. 이는 다시 화폐 가치 하락과 물가 상승을 자극하는 딜레마를 초래한다. 결국 시장 참여자들은 정부가 빚을 갚으려 돈을 찍어낼 것(부채의 화폐화)이라 예상하고 이런 기대 심리는 구조적 인플레이션을 고착화한다. 국채 금리가 기준금리와 무관하게 재정 위험을 반영해 치솟는 현상이 ‘뉴노멀’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악순환 고리 3기업 ‘돈맥경화’

눈덩이 국가 부채 우려 팽배

각국 부채와 확장재정 우려가 뒤엉킨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심리는 한국 국고채 금리를 밀어 올리고, 이는 기업 자금 조달 환경에도 연쇄 영향을 미친다. 한국 국고채 금리는 미 국채 등 글로벌 무위험 금리를 기준으로 매겨진다. 미국 등 글로벌 장기금리가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하거나 인하를 시사해도 국내 국고채 금리는 독자적으로 내려오기 힘든 환경에 처했다. 제로 성장이 예고된 한국도 확장재정에 따른 재정건전성 우려가 확산하고 있어, 국고채 금리 상승과 이에 따른 기업 자금조달 환경 악화를 우려하는 시선이 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1월 기준 한국 국고채 10년물 금리의 2025년 상승률은 약 14%다. 이는 주요국 가운데 일본(61%)보다는 낮지만, 정부 부채 우려로 신용 등급이 하락한 프랑스(8%)보다 높다. 무디스·피치·S&P 등 3대 신용평가사 모두 프랑스 신용 등급을 내렸다. 한국이 비기축통화국인 점을 고려해도 프랑스보다 국고채 금리 상승세가 높은 점을 시장은 이례적으로 바라본다.

여기에는 가파르게 증가하는 한국 공공 부문 부채로 국고채 발행이 급증할 수 있단 시장 참여자들의 복합적인 우려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기획재정부 ‘2024년도 일반정부 부채 및 공공 부문 부채 집계 결과’에 따르면, 중앙·지방 정부와 공기업 빚을 포함한 공공 부문 부채는 2024년 말 1738조6000억원으로 1년 전(1673조3000억원)보다 65조3000억원(3.9%) 늘었다. 2024년 50조원대 국고채를 발행한 데다, 남양주 왕숙·부천 대장 3기 신도시 등 주택 사업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차입금·공사채가 8조7000억원 불어난 탓이다. 2024년 말 공공 부문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68%에 달한다.

국고채 금리 상승은 기업 ‘돈맥경화’로 이어진다. 글로벌 정부 부채 확대와 확장 재정 우려에 따른 국고채 금리 상승이 민간 채권 가산금리를 밀어 올려서다. 채권 시장에서는 주요 기업이 회사채 발행을 줄줄이 취소하거나 기업어음(CP) 같은 단기 자금으로 몰리는 등 충격이 현실화했다.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회사채 발행을 준비하던 기업이 수요 예측을 연기하거나 철회하는 사례가 잇따른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1월 채권시장에서 국채·특수채·금융채 발행이 증가한 반면, 회사채는 2조8000억원 줄어든 7조원을 기록했다. 최근 SK텔레콤과 KCC글라스 등은 회사채 발행을 미뤘다. CJ CGV는 회사채 대신 250억원 규모 CP를 발행하는 등 단기자금으로 눈을 돌렸다.

이 때문에 새해 초 회사채 만기 물량이 집중된 상황에서 발행 일정이 뒤로 밀릴 경우, 자금 조달이 특정 시점에 몰리며 금리 부담이 더 커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다수 기업이 조달금리 상승을 우려해 회사채 발행 시점을 새해 3~4월 이후로 늦추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국고채 3년물 금리가 3%대에서 내려오지 않으면 연초 회사채 발행 물량이 예상보다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기업이 높은 조달 비용을 감수하며 차환에 집중할수록, 설비투자와 연구개발(R&D)은 후순위로 밀릴 것이란 우려도 팽배하다. 설비 투자가 필수인 산업이 대부분인 한국 경제에는 중장기적으로 잠재성장률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사정이 이렇자 경기 부양을 명분으로 한 우리 정부 확장 재정이 오히려 민간 투자를 위축시키는 역설적 효과를 초래했다는 날 선 지적이 시장에서 제기된다. 문제는 확장 재정 → 국고채 금리 급등 → 회사채 시장 경색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를 단기간 끊어낼 것으로 기대하기 힘들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 이재명정부 들어 적극적인 확장 재정을 펴고 있어 나랏빚은 큰폭 불어날 전망이다. 정부가 추산한 2026년 말 국가 채무는 2024년 말 대비 238조6000억원 불어난 1413조8000억원이다. 공기업 부채 규모가 더 늘어나지 않는다고 가정해도 2026년 말 공공 부문 부채는 2000조원에 육박한다.

우리 정부 기준에 따르면, 한국 국가채무 비율은 현재로선 큰 이상이 없는 듯 보인다. 정부는 국가 채무와 일반 정부 부채, 공공 부문 부채 등 세 가지로 나랏빚을 집계한다. 2024년 말 중앙·지방 정부 빚만 집계한 국가 채무는 1175조2000억원으로 GDP의 46.1%다. 다만, IMF에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사회보장기금(연금·건강보험 등)까지 포함한 일반 정부 부채를 기준 삼는다. 2024년 말 일반 정부 부채는 1270조8000억원으로, GDP의 49.7%다.

하지만, 나랏빚 증가속도가 워낙 가파르다. 통상 재정 준칙(재정 운용 목표 등) 논의에서 비기축통화국은 정부부채비율을 60% 이하로 관리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된다. ‘60%’ 자체는 경제학적 근거는 아니지만, 국제 사회에서 비기축통화국 건전재정 벤치마크로 인용된다. 60%는 경험적으로 국채 금리 급등·외환위기 위험이 자주 발생한 임계치로 관찰됐다는 게 학계 진단이다. 추세는 정반대다. IMF는 ‘재정점검보고서 10월호’에서 한국의 일반정부 부채(D2)가 2030년 GDP 대비 64.3% 수준까지 상승할 것으로 진단했다. IMF는 2025년 한국의 D2 비율이 전년(49.8%)보다 3.6%p 상승한 53.4%로 늘어날 것으로 봤다. 이는 IMF가 선진국으로 분류한 11개 비(非)기축통화국 가운데 싱가포르(175.6%), 이스라엘(69.2%)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김대종 세종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가 및 공공부문 부채가 국가 신인도를 저하시켜 환율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라며 “국회는 재정지출을 절제하고 외환안정 예산을 최우선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41호 (2026.01.01~01.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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