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는 '아바타 맛'이 나야 한다
[황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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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아바타 : 불과 재>(2025) 한 장면 |
| ⓒ 20세기 스튜디오 |
제임스 카메론의 신작 <아바타 : 불과 재>는 태풍을 만나 항로를 잃은 배가 혼신의 힘을 다해 키를 돌린 결과물처럼 보였다. 전작 <아바타 : 물의 길>(2022)에서 들이닥친 두 눈 뜨고 보기 힘들었던 황당한 신파극과 부성애, '위대한 토루크 막토 제이크 설리'의 난데없는 육아일지를 벗어나 제법 '대작 영화'의 구색을 갖춘 모양새다.
그렇다고 해서 내러티브가 아주 매끄러워졌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인간 vs. 외계인'의 구도를 '세력 vs. 세력'으로 확장하며 다층적인 사유의 흐름을 만든다. 에이와에 호의적인 나비족이 있다면 그에 반기를 든 나비족도 있을 것이고, 그들 사이가 좋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제임스 카메론의 의도는 그럴싸하다. 다른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의 세력 다툼에 비춰봐도 타당하고 외계 문명에 대한 현실적인 사고에 비춰봐도 자연스럽다.
무엇보다, 1편에서 맛보았던 주인공의 결기가 되살아난 것이 이번 '불과 재'의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 싶다. 판도라에 동화되어 같은 종족에게조차 반기를 들었던 제이크 설리의 기개는, <아바타>의 시각적 충격을 넘어 생태에 관한 우리의 막힌 사고를 뚫는 일종의 기폭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에 반해 쿼리치 대령의 습격에 조금의 고민도 없이 부족을 버리고 산호초 부족으로 도망간 주인공의 모습은 2편 <아바타 : 물의 길>에서 가장 이질적인 부분이었지만 <아바타 : 불과 재>에서는 다시 과거의 영광이 그럭저럭 재현된다.
물론 이 작품에 단점이 없지는 않다. 나비 부족 사이에서 함께 자란 인간인 스파이더를 서사의 중심에 놓고 새로운 갈등을 유발하는 방식은 여전히 어색하기 짝이 없지만 감내할 만한 수준이다. 전편의 망가진 서사를 원상 복구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면 말이다. 그럼에도 설리 부부가 스파이더를 배척하려는 과정 자체는 낯 뜨거운 구석이 있으나 이 역시 대미를 장식하기 위한 한순간의 악취라고 생각한다면 참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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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아바타 : 불과 재>(2025) 한 장면 |
| ⓒ 20세기 스튜디오 |
그렇지만 <아바타> 시리즈는 서사만 놓고 볼 수 없는 영화다. 가장 이상했던 <아바타 : 물의 길>에서조차 그 압도적인 해양 신은 미장센만으로 전율을 일으킨다. <아바타 : 불과 재>에서 기대했던 망콴족의 화산폭발급 화염 이미지는 모닥불과 불화살 몇 개로 대단히 축소되어 다소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불을 숭앙하는 부족이 문명의 기초인 화약을 적극적으로 취한다는 설정도 보기에 나쁘지는 않았다.
<아바타 : 불과 재>는 탄내 나는 부제와는 달리, 전작처럼 해양과 물의 이미지가 더 강조된 모양새이긴 하나 그렇다고 표현력이 줄지는 않았다. 아바타 세계관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은 분명히 있다. 판도라 행성의 낯선 생태계를 광대하게 펼쳐놓은 그 위용도 대단하지만, 인간 쪽의 발전한 기술 문명에 대한 묘사를 읽는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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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아바타 : 불과 재>(2025) 한 장면 |
| ⓒ 20세기 스튜디오 |
본디 <아바타> 시리즈는 기저에 여러 가지 담론이 깃든 영화다. 큰 틀에서는 생태와 문명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생명과 지성의 본질, 자본과 탐욕과 같은 거시 담론은 물론 가족애나 우정, 성장, 용기와 같은 미시 담론을 다루고 있기도 하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그 자신도 대가족의 일원으로 <아바타 2>부터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지만, 아바타엔 아바타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다.
'설리 가족은 성벽이다', '설리 가족은 포기하지 않는다' 같은 낯간지러운 다짐보다는 판도라의 대자연이 낳은 자연 지성과 인간의 탐욕이 빚은 인공 지성의 최종대결을 그려가는 것이 유사한 세계를 살아가는 지구인들에게 좀 더 생각 거리를 던져주는 일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끈끈한 가족애는 '아바타'가 아니어도 설명될 수 있지만 생태와 인간의 대결 같은 장은 '아바타' 시리즈에 최적화되어있으니 말이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도 그 점을 의식했는지, <아바타 : 불과 재>에서 전편의 가족 중심 서사를 다소 축소해 놓았다. 특히 결말에서는 <아바타> 1편의 웅장한 대혈투가 떠오르는 장면들이 반복된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마치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2003) 결말부를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지만 판도라 행성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진풍경들이 맞물려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 된다. 대자연에게 도륙당하는 인간을 보며 공포를 느끼는 게 아니라 도리어 응원하게 되는 일은 과연 <아바타> 시리즈만의 독특한 체험이지 않나.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극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바람 상인' 장면도 주목할 만하다. 판도라 행성 내의 원시 사회가 행성 규모의 교역망을 구축하며 '에이와'가 아닌 방법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인간이 무역과 교류로 문화와 사회를 발전시켜온 과정을 은유할 수 있다는 일련의 암시다. 다시 말해 아바타 내의 담론이 언제든지 더 큰 규모로 확장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담론이 커지면 표현의 스케일이 커지고, 이미지 역시 확장되는 경향이 있다. 고대 제국의 전쟁사를 다루는 영화들처럼 스펙터클을 강조하는 연출을 자연스럽게 내러티브에 녹여낼 수 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 역시 이 장면에 대해 언급하며 후속작에서도 '다양한 부족의 갈등과 교류'라는 역사적 맥락을 취할 것임을 내비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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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아바타 : 불과 재>(2025) 한 장면 |
| ⓒ 20세기 스튜디오 |
아바타 속에서 들여다보고 싶은 인간을 초월한 어떤 가치, 거대한 의지, 그에 걸맞은 이미지들. 우리가 이 영화에 기대하는 것은 그런 가치들이다. 차기작 역시 '아바타 맛'이 잘 우러나는 서사와 이미지로 스크린을 채운다면 영화 팬들의 기대를 조금은 더 만족스럽게 채워주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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