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료 ‘관제탑’의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르포]

# 22주 쌍둥이 초산모인 26세 여성이 조기 진통으로 응급 상황이 발생했다. 119구급대는 병원에 환자 수용을 의뢰했으나 받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119구급대는 즉시 광역응급의료상황실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다. 하지만 광역상황실에서 해당 광역 단위 의료기관 섭외가 지연돼 전국 광역상황실이 공동 대응해 다른 지역 병원이 선정됐다.
# 70세 여성이 좌측 후두부 열상과 의식 저하로 계단에 쓰러져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119구급대는 병원에 환자 수용을 의뢰했으나 미수용 답변을 받아 광역응급의료상황실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다. 환자의 활력징후는 안정적이었으나 의식 상태는 혼미해 빠른 대처가 필요했다. 광역상황실은 다소 먼 거리의 외상센터로부터 수용 가능하다는 답을 받았으나, 환자의 의식 저하로 인해 가장 가까운 의료기관에 먼저 이송할 것을 권고받았다. 광역상황실은 119 사전의뢰기관 중 최근거리 기관을 설득해 1차 처치하도록 안내하고, 환자 처치 후 헬기를 통해 외상센터로 이송했다.
인력이 교대로 돌아가며 중증응급환자의 병원 수용 여부를 확인하고, 응급의료기관들의 업무를 조정하며 국가 재난의료 상황에도 발 빠르게 대응하는 곳이 있다. 바로 ‘응급의료상황실’이다. 6개의 광역응급의료상황실은 경각에 달린 환자의 생명을 잇는 곳인 만큼 365일 24시간 항상 불이 밝혀져 있어야 한다.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단이 28일 찾은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응급의료상황실에는 10개의 모니터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전국의 병상 현황과 구급 요청 정보, 이송 중인 응급환자들의 상태가 실시간으로 뜨고 있었다.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은 구급대원이 환자를 실은 채 병원과 병원을 전전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막기 위한 응급의료체계의 컨트롤타워로, 2014년 재난·응급의료상황실에서 출발했다. 이후 2016년 중증응급환자의 병원 간 전원 지원 업무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중증 확진 환자의 시·도간 전원 지원 상황실을 운영했다. 현재는 서울·인천, 경기·강원, 대전·충청, 대구·경북, 광주·전라, 부울·경남의 6개 광역응급의료상황실을 운영하고 있다.
응급의료상황실은 단순히 의료기관들의 가용 가능한 병상 숫자만을 보는 것이 아니다. 해당 병원이 지금 어떤 진료를 할 수 있는지, 갑작스러운 수술 차질 가능성이나 의료진 공백은 없는지를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응급의료상황실은 119구급대가 현장 도착 후 병원 전 중증도 분류체계인 ‘Pre-KTAS’ 1등급 환자로 분류했지만, 이송병원 수용이 지연되는 경우 구급상황관리센터로부터 요청받아 중증응급환자 공동 대응에 나선다. 이때 응급구조사와 간호사로 구성된 상황요원과 상황의사인 응급의학과 전문의로 이뤄진 응급의료상황팀이 실시간 병상 정보와 중증응급질환 진료 정보, 네트워크 사업 정보, 순환당직 정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병원 선정과 전원을 결정한다.
김정언 중앙응급의료상황실장은 “세월호 참사,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 코로나19 확산 등 굵직한 재난 상황에서 의료 자원의 중심 역할을 해 온 게 바로 응급의료상황실”이라며 “환자 수용 기관을 선정하면 바로 구급상황관리센터에 통보하는데 여기서 역할이 끝나는 게 아니다. 환자가 병원에 잘 도착했는지부터 입원 여부, 부득이하게 상태가 변해 다른 병원으로 가야 하는 건 아닌지를 모니터링 하는 등 후속조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응급의료상황실은 평시뿐 아니라 지난해부터 1년 반 동안 이어진 의정 사태 속에서도 집중 가동됐다. 의료진의 판단이 즉시 필요한 상황에선 전략회의실에서 주요 결정권자들이 모여 빠르게 판단하고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 향후엔 상황요원들이 위급 상황에서 전문적 판단이 가능하도록 교육 체계를 강화하고, 인공지능(AI) 기반 병원 선정 지원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또 구급대원의 병원 선정 부담 경감을 목표로 119와의 공동 대응 체계를 고도화할 방침이다.
김 실장은 “의료계 환경 변화 속에서 응급의료상황실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함께 고민하고, 변화에 지속적으로 대응하며 응급의료 현장과 환자를 연결하는 역할을 계속하겠다”며 “상황실이 응급환자 분류에 있어 전문성과 데이터 접근성이 좋은 만큼, 앞으로 119 구급대원들의 부담을 줄이고 현장 대응을 효율화할 수 있도록 협력 범위를 점차 확대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응급의료상황실의 업무 강도는 만만치 않은 만큼 인력 보강을 위해 관련 내년도 예산에 30명이 추가 편성되기도 했다. 복지부는 응급실 미수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광역상황실 인력을 현 120명에서 내년 150명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또 중증응급환자 이송·전원을 통합 관리하고, 정보 공유를 강화한다. 종합적인 이송 체계 개편 방안은 내년 중 마련할 방침이다.
이경원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는 무너진 적이 없다. 오히려 잘 작동하고 있다”면서 “응급실 미수용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법령도 정비되고 있고, EMS(응급의료) 역량도 꾸준히 강화되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지역 이송 지침은 예전에 반대도 많았지만, 의정 사태 이후로 현장에서도 필요성을 느끼며 공감하고 있다”라며 “응급의료체계는 매우 복잡해 어떤 정책이나 단순 법제화로 쉽게 해결되기 어렵다. 각 단계마다의 응급의료 제공자의 책임성과 역량 강화, 합당한 보상과 충분한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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