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李 방중 직전 대만 포위…"中, 한국에도 레드라인 그었다"

윤지원 2025. 12. 30.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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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10월 31일 경북 경주시 라한셀렉트호텔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갈라만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이 9개월만에 대만을 포위하는 대규모 군사훈련 실시 계획을 발표했다. 공교롭게도 1월 초로 예정된 이재명 대통령의 국빈 방중 직전이다. 대만 해협 문제를 두고 중·일 간 갈등이 심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은 우방인 일본보다 중국을 먼저 방문하는 외교적 부담을 감수했는데, 이를 앞두고 중국은 직접적인 대만 침공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중국군 동부전구 대변인은 29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날부터 동부전구 육군·해군·공군·로켓군 등이 대만해협과 대만 북부·서남부·동남부·동부에서 '정의의 사명-2025' 훈련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그는 순찰 및 종합 통제권 탈취, 주요 인프라 봉쇄, 외곽 차단 등을 목적으로 설명했는데, 사실상 대만 포위 및 주일미군 등 후방 지원 전력 차단 훈련이다. 30일에는 대만을 둘러싼 다섯개 해역 및 공역에서 실탄 사격도 진행된다.

미국은 중국의 대만 침공을 2026~2027년으로 상정하고 다양한 대응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중국이 새해를 맞이하기 직전 대놓고 군사적 위협 수위를 높이는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나스렉 엑스포센터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비공식 약식 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입장에서 이런 상황이 ‘강건너 불구경’이 아닌 이유는 이 대통령의 국빈 방중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0월 31일~11월 1일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EP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방한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각기 첫 정상회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두 정상은 모두 이 대통령의 방문을 초청했다.

당초 이달 초부터 이 대통령이 내년 1월 중순 다카이치 총리의 고향인 나라를 방문할 계획이라는 일본 매체의 보도가 흘러나오는 등 셔틀외교 차원의 방일이 먼저 구체화하는 분위기였다. 일본이 의장국인 한·일·중 3국 정상회의를 1월에 일본에서 열 예정이었지만,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발언(11월 7일)으로 중국이 사실상 정상회의에 어깃장을 놓으면서 한·일 정상회담이라도 단독으로 진행하려는 게 일본의 의도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대통령은 일본에 앞서 1월 초 중국부터 국빈방문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오랜 기간 냉각됐던 한·중 관계를 개선하고, 북핵 문제에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이끌어내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순서 자체가 외교적으로 지니는 의미가 작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과 일본이 대만 문제로 정면 충돌하는 국면에서 한국 대통령이 일본보다 중국을 먼저 찾는 건 외교적 부담으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 특히 이를 앞두고 중국이 대규모 대만 포위 훈련까지 나서면서 상황은 더 민감해지는 분위기다.

사실 중국의 이번 훈련은 이 대통령의 방중보다는 자신들의 일정에 따른 준비를 강화하고, 일본을 압박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 하지만 이는 당장 곧 이뤄질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관련 입장을 주목하겠다는 뜻도 될 수 있다. 지금 중국이 일본에 전방위 압박을 가하는 것도 한국을 비롯한 역내 국가 역시 ‘언제든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깔렸다. 동시에 한국은 일본과 달리 대만 문제에서 선을 넘지 않고 있기에 국빈으로 맞이한다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의미도 있어 보인다.

김진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훈련은 중국이 국내적으로 정치적 단결을 공고하게 하려는 의도가 크지만,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 이익이니 한국도 와서 다른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뜻도 될 수 있다”며 “우리 입장에서는 원칙을 지키면서 예민한 문제는 유연하게 피해갈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번 방중에서 중국 뿐 아니라 미국, 일본을 염두에 두고 정교한 메시지를 발신해야 한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미·일 내에는 여전히 이 대통령을 ‘친중’적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중국이 한·미·일 안보 협력체에서 한국을 ‘약한 고리’로 보고 견인하려는 오래된 전술을 또 꺼내들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최근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일본을 방문해 고위급 인사들과 만난 것도 사전에 이와 관련한 오해를 없애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10월 30일 경북 경주 APEC 정상회의장에서 르엉 끄엉 베트남 국가주석과 한-베트남 양자회담을 하기 전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에 대해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국이 이번 훈련을 통해 ‘양안 통일’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다시 표명한 가운데 한국에 대만해협 등에 대한 입장을 요구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하나의 중국 존중’이라는 기존 입장을 다시 확인하면서도 대만 해협에 대해서는 대외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 주요 해상 교통로 안정이 중요하다는 차원에서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설명하는 투트랙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이전에도 고위급 회담 뒤 한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한다고 공개 발표하고는 했다. 하지만 실제 정부는 ‘원칙’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하나의 중국 존중 입장’으로만 밝혀왔다. 외교적 결례임에도 중국이 한국 정상 등의 발언을 자국에 유리한 식으로 왜곡하는 건 그만큼 대만 문제에 예민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만 해협과 관련, 정부는 2021년 5월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 간 정상회담 결과물에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내용을 담은 이후로 같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중국의 이번 훈련은 한국을 향해서도 대만 문제와 관련한 ‘레드라인’을 그은 것”이라며 “이재명 정부가 이미 ‘한·미동맹을 중심에 둔 실용외교’를 표방한 만큼 우리로서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면서 중국과의 관계 개선, 공급망 협력과 한반도 최대현안인 북핵 문제 협력 등 우리가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부분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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