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서 벌어진 일 두고 엇갈린 반응, '대홍수' 제 생각은요...

박성호 2025. 12. 29.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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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넷플릭스 영화 <대홍수>

[박성호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김병우 감독의 넷플릭스 신작 영화 <대홍수>(주연: 김다미, 박해수 / 시나리오: 김병우, 한지완 / 제작: 환상의 빛)는 한국 재난 영화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영리하고도 경제적인 지점이 어디인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흔히 재난 영화라고 하면 거대한 해일이 도시를 휩쓸고 수만 명의 군중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물량 공세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이 영화는 그 기대를 정면으로 배신한다. 하지만 그 배신은 관객에게 실망감을 안기기보다, 오히려 좁은 공간 안에 압축된 이야기의 힘이 얼마나 강력할 수 있는지 깨닫는다.

현재까지 흥행성과도 놀랍다. 글로벌 OTT 순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지난 12월 19일 공개된 이후 28일 현재까지 한국을 포함한 92개국 넷플릭스 영화 TOP10에 이름을 올렸으며, 이 중 미국을 포함해 70개국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상징적 장소
▲ 대홍수 영화 장면 2 좁은 공간에서 전개되는 내러티브는 일반적으로 화면의 지루함을 유발할 수 있으나, 재난 영화의 극적 긴장감이 이를 만회한다
ⓒ 넷플릭스
감독은 거대한 자본을 쏟아부어 도시 전체를 물에 잠그는 대신, 아파트라는 일상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을 선택함으로써 시나리오의 장점을 극대화했다. 이는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내러티브라는 측면에서 전작 더 테러 라이브에서 보여주었던 공간 활용 능력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킨 결과물이며, 제한된 환경을 오히려 영화적 표현의 확장 도구로 활용한 탁월한 선택이다.

또한, 주거 공간으로 아파트가 대세인 한국적 상황에서 관객에게 가장 밀접하게 어필할 수 있는 상징적 장소로 아파트를 선택했다는 점은 이병헌 주연의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 / 시나리오: 이신지, 엄태화)와도 흥미롭게 비교되는 지점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아파트를 집단적 광기와 계급 사회의 축소판으로 그렸다면, 대홍수는 같은 공간을 지워지지 않는 기억과 생존의 미로로 재해석하며 한국형 재난물의 공간적 변주를 완성했다.

영화의 배경은 물에 잠겨가는 아파트 한 채로 한정된다. 2시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단 하나의 아파트, 혹은 그 안의 몇몇 호실과 복도만으로 끌고 가는 것은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에게는 엄청난 도전이다. 자칫하면 단조로움에 빠져 관객의 몰입도가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병우 감독은 이를 타임 루프와 인공지능, 그리고 기억의 전이라는 SF적 설정을 겹겹이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돌파했다.

차오르는 물은 단순히 캐릭터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장애물을 넘어, 캐릭터들이 마주해야 하는 과거의 트라우마와 선택의 순간을 압박하는 상징적인 경계선이 된다. 관객은 주인공 안나가 겪는 무수한 반복의 고통을 함께 공유하며, 좁은 공간이 주는 물리적 답답함보다 서사가 주는 심리적 압박에 더 크게 반응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물이 차오르는 수위가 높아질수록 인물들의 행동 반경은 좁아지지만, 그 안에서 드러나는 심리적 갈등과 과거의 진실은 점점 더 선명해져 간다. 이는 단순히 어떻게 살아남느냐를 넘어 왜 살아남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관객을 이끄는 영리한 장치다.

이러한 선택은 제작비 측면에서도 매우 전략적인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대홍수라는 제목이 주는 위압감에 비해 영화의 실질적인 스케일은 의외로 작다. 외부의 거대한 파도를 보여주는 장면은 극도로 절제되어 있으며, 영화의 대부분은 정교하게 설계된 세트장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일반적인 재난 블록버스터가 천문학적인 액수의 CG 비용을 투입해 파괴 혹은 붕괴 장면에 집중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감독은 물의 질감과 배우의 표정, 그리고 긴박한 사운드를 통해 직접 보여주지 않는 것을 상상하게 만드는 방식을 택했다. 창밖으로 침수된 서울의 전경을 굳이 비추지 않아도, 틈새로 스며드는 물줄기와 삐걱거리는 건물의 소리만으로 관객은 이미 세상이 멸망했음을 직감한다. 세트라는 통제된 환경 안에서 물을 다루는 방식은 거대한 야외 촬영보다 훨씬 효율적이었을 것이며, 공개된 촬영현장 사진을 보면 수조를 중심으로 아파트 세트가 부분적으로 설치되고 나머지는 대부분 합성을 위한 녹색의 크로마용 벽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폐쇄 공간의 장인이 만난 대작의 함정
▲ <대홍수> 김병우 감독의 필모그래피 김병우 감독은 <더 테러 라이브>로 상업영화계에서 주목을 받게되는데 당시 제작비 35억으로 500만이 넘는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 씨네2000
김병우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훑어보면 그가 가장 잘하는 것과 가장 위험한 지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첫 작품이자 본격적인 상업영화 데뷔작인 <더 테러 라이브>(관객 558만, 2013)는 그의 장기가 집약된 대표작이었다. 라디오 부스라는 극단적으로 좁은 공간에서 하정우라는 배우의 연기와 속도감 넘치는 편집만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던 이 작품은 한국 영화계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당시 그는 밀폐된 공간 내 실시간 스토리텔링이라는 자신만의 확실한 강점을 보여주었다. 영화 투자업계 관점에서는 완벽하게 설계된 시나리오가 제작비(35억원)를 획기적으로 절감하면서도 상업적 성취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이후 선보인 < PMC: 더 벙커 >(관객 167만, 2018) 역시 지하 벙커라는 고립된 공간을 무대로 삼았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다만 이 작품은 전작과 달리 대규모 전투 신과 화려한 장비들이 동원되며 제작비 규모(140억원 추정)가 커졌고, 감독의 특기인 심리적 압박보다는 시각적 볼거리에 치중하며 호불호가 갈렸다. 특히 지속적인 화면의 떨림으로 관객에게 멀미를 유발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며 관객 및 평단으로부터 연출적 과잉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김병우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아쉬운 작품으로 꼽는 건 단연 <전지적 독자 시점>(2025, 안효섭 이민호 채수빈 주연)이다. 원작을 대폭 각색한 내용이 설득력을 얻지 못했고, 광활한 스케일과 수많은 캐릭터를 다루는 연출은 감독의 전공 분야가 아니었다.

다만 김병우 감독은 제한된 공간에서의 연출이라는 자신의 본령으로 돌아올 때마다 존재감을 증명해왔다. 작품들의 평가와 별개로 연출 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이 아예 없지 않으며, 감독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집중적으로 연출하는 데 힘을 많이 쓴다. 문제는 그러한 장면들을 다 연결해서 보면 부실하고 디테일이 얕은 각본과 안정적이지 못한 연출력 때문에 연결성 자체가 부실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병우 감독의 OTT영화 데뷔작인 이번 <대홍수>는 어떨까?

엇갈린 반응
▲ <대홍수> 영화 장면 홍수로 물에 잠긴 아파트 단지에서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하는 주인공 구안나(김다미)
ⓒ 넷플릭스
현재 <대홍수>에 대한 이용자들의 반응은 구성의 영리함이 주는 지적 쾌감만큼이나 대중적인 호불호 또한 강렬하게 나뉘고 있다. 한편에서는 한국 SF 재난물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극찬이 쏟아진다. 특히 단순한 신파를 배제하고 차갑고 지적인 서사 구조를 택한 점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는 시청자들이 많다. <인셉션>이나 <테넷>처럼 반복해서 보아야 이해되는 구조적 재미가 있으며, 단순한 오락물을 넘어 인간의 생존 본능과 기억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는 평이다.

반면, 전형적인 재난 탈출극을 기대했던 이들 사이에서는 불친절한 전개와 모호한 결말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온다. 영화가 제공하는 정보량이 워낙 압축적이고 시간 순서가 뒤섞여 있다 보니, 직관적인 즐거움을 원하는 대중에게는 다소 피로감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아이의 돌발 행동이나 반복되는 전개가 일부 시청자들에게는 소위 답답함을 유발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호불호조차도 이 영화가 기존의 정형화된 재난물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증거이며, 흥행 공식에 따른 대중성 확보보다 감독 특유의 실험적 연출을 타협 없이 밀어붙였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뒤따른다.

<대홍수>는 김병우 감독의 치밀한 계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거대 재난의 규모를 온전히 담아내기엔 부족할 수 있는 제작 예산의 한계를 물량 공세 대신 시나리오의 영리한 구조와 연출의 묘미로 정면 돌파하려 했다. 영화는 물에 잠긴 아파트라는 제한된 무대를 선택했지만, 그 안에서 펼쳐지는 서사는 광활한 배경 못지않게 인간의 의지와 기억의 세계를 깊게 파고든다.

다만,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에 지나치게 경도되다 보니 스토리 전개의 설득력이 뒤로 밀리는 모습은 이번에도 반복된다. 서사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환경과 캐릭터, 그리고 사건이라는 세 요소가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필연적인 인과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하지만 메시지를 강조하느라 이들의 연결 고리가 느슨해지는 지점들은 결국 시나리오가 확보해야 할 사회학적 상상력의 부재와 연결된다. 인물들이 놓인 사회적 맥락과 사건의 구체적인 디테일이 치밀하게 설계되지 못한 점은 감독이 앞으로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할 숙제다.

결국 <대홍수>는 좁은 공간 안에서 밀도 높은 세계를 그려낼 때 감독의 강점이 극대화됨을 재확인시킨 작품이다. 논리적 연결의 아쉬움은 남지만, 제한된 예산 속에서 설계한 이 독특한 영화적 체험은 한국 장르 영화가 시도할 수 있는 효율적 전략의 성공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 <드가의 다큐맨터리 이야기>에도 실립니다.필자는 언론학 박사로 미디어와 내러티브 콘텐츠를 연구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방송제작을 수업을 하고 있으며, 특히 내러티브의 개연성에 대한 강의시 환경, 캐릭터, 사건 3요소와 사회학적 상상력의 필요성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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