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분 기다리다 깨달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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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연 기자]
벌써 12월의 끝자락이다. 2025년의 마지막 주간은 몸도 마음도, 그리고 내 주변까지 정리하느라 정신없이 흘러가는 중이다. 친구들은 벌써 새해 첫 곡으로 어떤 노래를 들을지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하고,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연말을 맞고 있다. 그런데 유독 나는 요 며칠 계속 지난달의 한 순간이 떠오른다. 15년 만에 다시 찾은 천문대에서 그날 본 별이 자꾸 생각난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야자를 끝내고 집에 갈 때면 앞만 보고 걷지 않았다. 익숙한 아파트 단지를 지날 때 나는 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5분도 안 되는 짧은 구간이었지만 그 사이에 보이는 별들을 따라 걷곤 했다. 어릴 때는 별을 딱히 좋아하지 않았는데, 사춘기를 지나면서 감성이 몸에 차올랐는지 밤하늘을 오래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흐린 날이든 맑은 날이든 밤에 집 밖에 나설 일이 있으면 멈춰 서서 몇 분간 하늘을 올려다봤다. 겸사겸사 목 운동도 되니 좋았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자란 덕에 나는 비교적 많은 별을 보며 자랐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별을 좋아하지만, 서울로 올라오고부터는 하늘을 볼 여유조차 없어졌다. 서울은 별이 잘 보이지도 않았고, 별을 볼 시간에 빨리 누워 내 부족한 숙면 시간을 채우기 급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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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산 천문대 |
| ⓒ 최주연 |
어두운 산길을 뚫고 천문대에 도착해 영상실에서 우주 관련 영상을 보고, 직원 분의 설명을 들으며 망원경이 있는 옥상으로 향했다. 아이들에게 먼저 망원경 관측을 양보한 뒤 나는 조용히 뒤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사실 망원경으로 보지 않아도 이미 이 천문대에 도착한 순간부터 별을 이미 쏟아지듯 많았으니 하늘을 보며 기다리니 금세 줄이 줄어들었다. 그렇게 차례대로 망원경으로 별을 관측한 후 나는 천문대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이렇게 많은 별을 눈으로만 담기엔 너무 아쉬웠다.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사진이 필요했다.
휴대폰으로 별을 찍으려면 꽤 섬세한 설정이 필요하다. 조리개를 오래 열어야 하고 흔들림을 막으려면 삼각대로 단단히 고정해야 한다. 그래서 한 장의 사진을 찍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별 사진은 움직일수록 실패하고, 멈출수록 성공한다.
그렇게 6분으로 셔터를 설정해두고 주차장 바닥에서 숨을 죽인 채 하늘만 올려다봤다. 하늘엔 별이 무척이나 많았다. 내가 몽골인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더 선명한 시력으로 더 많은 별을 눈에 담아갈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6분 동안 오랜만에 온전한 '기다림'이라는 겪었다. 결과를 확인할 수 없고, 중간에 확인 버튼도 없고, 딴짓도 할 수 없는 시간 6분. 요즘엔 이런 종류의 시간이 거의 없다. 기다림이 길어지면 조바심이 나야 하는데 이상하게 그때는 조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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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산 천문대 밤하늘 |
| ⓒ 최주연 |
늘 잠시 시간이 생길 때면 나는 무언가라도 해야한다는 압박에 시달렸지만, 별을 찍는 그 순간은 정반대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동안 나는 뒤처지지 않았고 흐려지지도 않았다. 별이 선명하게 찍히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나도 가끔 한 템포 쉬어야 제대로 보이는 게 있는 모양이다.
2025년 마지막 주가 되니까 이상하게 그 6분이 계속 떠오른다. 새해 계획을 세우려 펜을 들 때마다 그때처럼 조용히 나한테만 집중했던 순간이 거의 없었다는 걸 알게 됐다. 많은 사람이 새해 목표를 세운다. 어떤 자격증을 따고, 어떤 공부를 할 것인지 각자의 목표를 빼곡하게 적어둔다.
목표를 세우는 건 늘 빠르고 능숙하다. 근데 정작 그 목표를 세우는 사람인 '나'를 확인하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새해는 늘 '더 나은 나'를 해야 한다는 압박을 스스로에게 주지만, 정작 필요한 건 어쩌면 본연의 '나'를 만나는 시간일지 모른다.
별 사진이 잘 찍힌 이유도 결국 별 때문이 아니라 그 시간만큼은 아무 데도 시선이 새지 않고 딱 한 위치에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일 거다. 새해를 잘 시작하는 방법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다이어리에 적어둔 목표를 하나씩 이루어가는 것도 즐거운 한 해를 보내는 방법이겠지만, 나를 알아가는 일도 꽤나 즐거운 일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나를 알아가는 일은 그 자체로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걸 마음 속에 새겨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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