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분 기다리다 깨달은 것

최주연 2025. 12. 29.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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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도 가져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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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연 기자]

벌써 12월의 끝자락이다. 2025년의 마지막 주간은 몸도 마음도, 그리고 내 주변까지 정리하느라 정신없이 흘러가는 중이다. 친구들은 벌써 새해 첫 곡으로 어떤 노래를 들을지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하고,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연말을 맞고 있다. 그런데 유독 나는 요 며칠 계속 지난달의 한 순간이 떠오른다. 15년 만에 다시 찾은 천문대에서 그날 본 별이 자꾸 생각난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야자를 끝내고 집에 갈 때면 앞만 보고 걷지 않았다. 익숙한 아파트 단지를 지날 때 나는 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5분도 안 되는 짧은 구간이었지만 그 사이에 보이는 별들을 따라 걷곤 했다. 어릴 때는 별을 딱히 좋아하지 않았는데, 사춘기를 지나면서 감성이 몸에 차올랐는지 밤하늘을 오래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흐린 날이든 맑은 날이든 밤에 집 밖에 나설 일이 있으면 멈춰 서서 몇 분간 하늘을 올려다봤다. 겸사겸사 목 운동도 되니 좋았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자란 덕에 나는 비교적 많은 별을 보며 자랐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별을 좋아하지만, 서울로 올라오고부터는 하늘을 볼 여유조차 없어졌다. 서울은 별이 잘 보이지도 않았고, 별을 볼 시간에 빨리 누워 내 부족한 숙면 시간을 채우기 급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 버킷리스트에는 늘 '천문대 가서 별 보기'가 있었다. 시골에서 보는 별도 좋지만 천문대에서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느낌은 또 완전히 다르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며 정말 오랜만에 어릴 적 자주 가던 천문대에 별 관측 예약을 했다. 유치원 때 갔던 천문대를 몇 십 년 만에 다시 간다니! 이런 작은 이벤트에도 설레는 어른이었다.
 보현산 천문대
ⓒ 최주연
"오늘은 특히 안드로메다 은하를 보기 좋은 날이랍니다."

어두운 산길을 뚫고 천문대에 도착해 영상실에서 우주 관련 영상을 보고, 직원 분의 설명을 들으며 망원경이 있는 옥상으로 향했다. 아이들에게 먼저 망원경 관측을 양보한 뒤 나는 조용히 뒤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사실 망원경으로 보지 않아도 이미 이 천문대에 도착한 순간부터 별을 이미 쏟아지듯 많았으니 하늘을 보며 기다리니 금세 줄이 줄어들었다. 그렇게 차례대로 망원경으로 별을 관측한 후 나는 천문대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이렇게 많은 별을 눈으로만 담기엔 너무 아쉬웠다.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사진이 필요했다.

휴대폰으로 별을 찍으려면 꽤 섬세한 설정이 필요하다. 조리개를 오래 열어야 하고 흔들림을 막으려면 삼각대로 단단히 고정해야 한다. 그래서 한 장의 사진을 찍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별 사진은 움직일수록 실패하고, 멈출수록 성공한다.

그렇게 6분으로 셔터를 설정해두고 주차장 바닥에서 숨을 죽인 채 하늘만 올려다봤다. 하늘엔 별이 무척이나 많았다. 내가 몽골인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더 선명한 시력으로 더 많은 별을 눈에 담아갈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6분 동안 오랜만에 온전한 '기다림'이라는 겪었다. 결과를 확인할 수 없고, 중간에 확인 버튼도 없고, 딴짓도 할 수 없는 시간 6분. 요즘엔 이런 종류의 시간이 거의 없다. 기다림이 길어지면 조바심이 나야 하는데 이상하게 그때는 조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린다'는 행위 자체가 편안하고 설렜다.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어서일까? 조용한 산 꼭대기, 세상에 별과 나만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6분이 지나고 나서야 내가 왜 그 순간을 편안하게 느꼈는지 알 수 있었다.
 보현산 천문대 밤하늘
ⓒ 최주연
천문대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렸던 6분의 시간은 오로지 '나'에게 집중한 시간이었다. 그 잠깐동안 내가 이렇게나 별을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고, 무엇을 할 때 즐거워 하는지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나 즐거워 하는 일은 거창하지 않다는 것, 그런 일을 할 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짓는지도 깨달았다. 필요한 건 고작 6분이었다.

늘 잠시 시간이 생길 때면 나는 무언가라도 해야한다는 압박에 시달렸지만, 별을 찍는 그 순간은 정반대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동안 나는 뒤처지지 않았고 흐려지지도 않았다. 별이 선명하게 찍히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나도 가끔 한 템포 쉬어야 제대로 보이는 게 있는 모양이다.

2025년 마지막 주가 되니까 이상하게 그 6분이 계속 떠오른다. 새해 계획을 세우려 펜을 들 때마다 그때처럼 조용히 나한테만 집중했던 순간이 거의 없었다는 걸 알게 됐다. 많은 사람이 새해 목표를 세운다. 어떤 자격증을 따고, 어떤 공부를 할 것인지 각자의 목표를 빼곡하게 적어둔다.

목표를 세우는 건 늘 빠르고 능숙하다. 근데 정작 그 목표를 세우는 사람인 '나'를 확인하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새해는 늘 '더 나은 나'를 해야 한다는 압박을 스스로에게 주지만, 정작 필요한 건 어쩌면 본연의 '나'를 만나는 시간일지 모른다.

별 사진이 잘 찍힌 이유도 결국 별 때문이 아니라 그 시간만큼은 아무 데도 시선이 새지 않고 딱 한 위치에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일 거다. 새해를 잘 시작하는 방법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다이어리에 적어둔 목표를 하나씩 이루어가는 것도 즐거운 한 해를 보내는 방법이겠지만, 나를 알아가는 일도 꽤나 즐거운 일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나를 알아가는 일은 그 자체로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걸 마음 속에 새겨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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