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 시대, 살기 위해 '여장'한 두 음악가의 사연
[안지훈 기자]
대공황이 세계를 강타하고, 금주법이 시행되던 1931년 시카고. 사람들은 곳곳에서 마음을 졸인 채 밀주를 즐기고, 거리에선 총성이 울려 퍼진다. 대공황은 음악가들에게도 가혹했다. 베이스를 연주하는 '제리'와 색소폰을 부는 '조'에게 연주 기회를 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당장 생계를 위해 두 남자는 10달러를 받고 악보를 나르는 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악보를 나르던 중 밀주업자 '스패츠'의 살인 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제리와 조는 스패츠 일당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둘은 남자 음악가로 특정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때 여자 음악가들로 구성된 밴드에서 베이시스트와 색소포니스트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제리와 조는 살기 위해 여장을 하고 밴드에 지원한다. 스패츠 일당의 감시를 피하는 동시에 일자리 얻을 수 있는 기회이다.
|
|
| ▲ 뮤지컬 <슈가> 공연 사진 |
| ⓒ PR컴퍼니 |
시대 배경은 암울하고, 제리와 조가 처한 상황도 긴박하다. 하지만 뮤지컬 <슈가>는 범죄 드라마가 아닌 코미디를 자신의 장르로 설정한다. 그리고 정통적인 코미디 문법을 빌린다. 덕분에 새롭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웃음은 확실히 보장한다.
살기 위한 수단으로 여장을 선택하고, 밴드 내에서 정체를 들킬 위기를 수차례 경험한다. 시카고를 떠나 마이애미로 온 밴드를 따라 스패츠 일당도 마이애미에 당도해 제리와 조는 여전히 쫓기는 신세다. 하지만 작품 전반에 긴장감이 흐르기보단 유쾌함이 묻어난다.
여장을 한 두 남자 곁에는 매력적인 가수 슈가가 있다. 제리와 조는 슈가에게 매력을 느끼지만, 정체를 들킬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랑을 고백할 용기는 없다. 조는 잔머리를 굴려 슈가에게 구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조와 슈가의 사랑이 이어지는 동안 제리는 의도치 않게 다른 남자에게 고백을 받는다. 백만장자 노인 '오스굿 필딩'은 제리에게 끊임없이 구애한다.
|
|
| ▲ 뮤지컬 <슈가> 공연 사진 |
| ⓒ PR컴퍼니 |
시카고는 추운 땅이다. 또 제리와 조가 살아남기 벅찬 도시다. 그렇게 공간적 배경은 마이애미로 옮겨진다. 마이애미는 시카고와 대비되는 곳으로, 따뜻하고 일자리도 있으며 범죄 조직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시카고를 떠날 당시만 해도 제리와 조는 마이애미를 '기회의 땅'처럼 여겼을 것이다.
물론 상황이 개선되긴 했어도 마이애미가 제리와 조를 온전히 지켜주지는 못한다. 가까스로 얻은 일자리는 정체가 밝혀질 경우 잃게 된다. 제리는 '다프네'라는 이름으로, 조는 '조세핀'이라는 이름으로 정체를 속인 채 살아가야 한다. 또 스패츠 일당도 마이애미에 도착해 제리와 조를 추적한다.
제리와 조는 더 이상 자력으로 상황을 개선하기 힘들다. 정통적인 코미디에는 위기에 빠진 주인공을 구원해주는 영웅이 있는 법이다. <슈가>에는 우스꽝스럽지만 순수한 사랑을 갈망하는 백만장자 노인 오스굿 필딩이 있다. 제리와 조, 그리고 슈가가 위기를 모면하는 데에는 비대칭적인 능력을 가진 오스굿 필딩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뮤지컬 <슈가>는 자력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었던 이들의 코믹한 생존기로 읽힌다. 살아남기 벅찬 시카고에서 희망이 있는 마이애미로 향했지만, 결국 마이애미에서도 희망을 누리지 못한 채 새로운 희망을 찾아 떠나야 하는 공간적 은유도 눈여겨볼 만하다.
|
|
| ▲ 뮤지컬 <슈가> 공연 사진 |
| ⓒ PR컴퍼니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고3 엄마'로 살았던 한 해...이 말 붙잡고 버텼습니다
- 18년 만에 이서진에 복수 나선 한지민, '비서진' 최고의 선택
- 평양서 일하는 스웨덴 남자, 북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다
- 관객 속터지게 하는 '아바타3', 그럼에도 봐야 하는 이유
- '키스는 괜히 해서!' 과몰입 로맨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 '장애'만 앞세워 말하지 않는 것의 당연함, 이 감독의 연출법
- 도박 중독에 빠진 택배기사, 세 번의 기회와 파국
- "처음 겪는 추락" 김흥국에... 누리꾼 "내란 동조 사과 없나"
- JTBC 손 들어준 법원... '불꽃야구'는 회차 공개 강행, 그 이유는?
- '역대급' 핑계고 시상식, 하하 울린 지석진 대상 수상소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