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희망 - 태국 미얀마 이주민 학교' 국경 너머, 빛으로 연결되다
[이보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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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 데이 스쿨 학생 Marry Doe Wah의 사진 |
| ⓒ Marry Doe Wah |
조경사님은 앞으로의 관리법을 알려주었다.
아무리 작아도 정원은 정원이라 품이 많이 들거예요.
그는 웃으며 경고했다.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아이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크게 하려면 거울을 이용하시는 것도 좋아요.
거울이요?
놀라 되묻는 나에게 그는 설명했다.
남쪽으로 비치는 햇빛을 주는 거예요. 반사시켜서.
여기는 종일 빛이 없잖아요.
한강, <빛과 실>, p.91.
지난 12월 15일 밤, 태국행 비행기 안에서 읽은 한강의 에크리 <빛과 실>. 책에는 열다섯 평의 대지 위에 세워진 열 평 남짓한 집이 등장한다. 마흔여덟에 이르러, 작가의 이름으로 처음 온전히 갖게 된 집이다. 그 집에 딸린 작은 정원은 북향이라 햇빛이 충분히 들지 않는다. 그래서 작가는 조경사의 말에 따라 정원 곳곳에 빛을 붙잡아 둘 수 있는 거울 여러 개를 설치하고, 빛의 방향에 따라 거울을 옮기는 작업을 반복한다. 식물들은 그 미약한 빛을 향해 몸을 기울여 치열하고 아름답게 생존한다.
한 권의 책을 다 읽자, 비행기는 치앙마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번 여정은 후지필름 코리아가 후원하는 〈천 개의 희망–태국 미얀마 이주민 아동학교〉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 시작됐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성남훈을 중심으로 권학봉, 유예훈, 이보슬, 이윤후, 장창근, 정면주, 함형열, 8인의 한국인 사진가들이 태국 서부 국경 지역인 딱(Tak) 주에 여섯 날을 머무는 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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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12월 16일 오후1시 53분. QJ3G+8G6, Mae Pa, Mae Sot District, Tak 63110 태국에서 마지막 검문직후 허가를 받고 촬영한 천 개의 희망팀 단체사진 (왼쪽부터 태국경찰, 권학봉, 장창근, 정면주, 성남훈, 함형열, 이윤후, 유예훈, 이보슬, 뉴 데이 스쿨 관계자, 태국경찰) |
| ⓒ 천개의희망 |
총 네 곳의 검문소를 통과하는 동안 사전에 준비한 NGO 허가 서류와 여권을 반복해 제시해야 했다. 검문 절차 중에는 차량 번호판이 명확히 보이도록 차 앞에 서서, 또 다른 검문소에서는 얼굴이 잘 보이도록 모여서 단체 사진을 찍기도 했다. 마지막 검문소에서는 뉴 데이 스쿨 관계자가 직접 동행해야 했기 때문에 한동안 검문소에서 대기한 후 이동할 수 있었다.
복잡한 검문 절차를 거치고 마침내 도착한 미얀마 이주민 학교 '뉴 데이 스쿨(New Day School)'은 3미터 남짓의 낮은 건물들이 넓게 펼쳐진 공간이었다. 대부분의 건물은 유리창 없이 바깥과 바로 맞닿아 있는 구조였다. 기온은 약 26도. 등 뒤로 땀이 흐르는데, 태국에서는 겨울 날씨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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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교육을 듣고있는 New Day School 학생들 |
| ⓒ 이보슬 |
이론 수업 동안 낯섦과 긴장감이 감돌던 아이들의 표정은 카메라를 손에 쥔 순간 달라졌다. 한국인 사진가들은 학생 한 명 혹은 두 명에 한 명씩 튜터로 붙었다. 튜터들은 학교내에서 학생들의 자율적인 촬영을 유도하는 한편, 자신의 카메라로 아이들의 모습을 담기도 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나이불문 학생들이 카메라 앞으로 몰려들었다. 여학생들은 당당하게 포즈를 취해 보이기도, 남학생들은 서로 장난을 치고 사춘기 소년처럼 굴면서 관심을 기울였다. 한편, 다른 학생들은 운동장 구석구석에 쪼그려 앉아 도시락을 나눠 먹었다. 바로 앞에서는 축구를 하는 학생들로 인해 흙먼지가 일었고, 또 다른 한 구석에서는 흙과 돌을 모아 소꿉놀이를 하는 어린 아이들이 보였다. 그런 장면들이 학생들의 카메라를 통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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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얀마 이주민 집촌 근방에서 카메라를 활용해 촬영중인 뉴 데이 스쿨 학생들 |
| ⓒ 이보슬 |
이튿날인 12월 17일 수요일, 다 함께 모여 촬영한 사진을 보고 서로의 이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또다시 촬영에 나섰다. 그렇게 보고, 찍고, 다시 보는 시간이 반복되었다. 과정에서 학생들은 무엇을 찾아가는지 궁금했다.
십오 분 마다 쓰기를 중지하고 마당으로 나와 거울들의 위치를 바꾼다. 더 이상 포집할 빛이 없어 질 때까지 그 일을 반복한다.
남쪽으로 비치는 햇빛을 주는 거예요. 거울로 반사시켜서.
그렇게 내 정원에는 빛이 있다.
그 빛을 먹고 자라는 나무들이 있다.
잎들이 투명하게 반짝이고 꽃들이 서서히 열린다.
한강, <빛과 실>,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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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풍경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 뉴 데이 스쿨 학생 |
| ⓒ 천개의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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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 개의 희망 뉴 데이 스쿨 전시 및 행사 정경 |
| ⓒ 이보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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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 개의 희망 뉴 데이 스쿨 전시를 보는 학생들 |
| ⓒ 이보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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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 데이 스쿨 학생 Cherry Oo의 사진 |
| ⓒ Cherry Oo |
안녕,
만나고 헤어졌던 우리는
안녕,
만난 적도 헤어진 적도 없는 우리는
시작도
끝도 없이
날개를 펼쳤다 접으며 날아가는 나비처럼
우리가 통과하고 있는 이것이
몇 번째로 수축하고 팽창한 우주인지
우리는 알지 못하고
한강, <빛과 실>, p.79
가녀린 학생들을 안고나서야,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이주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조금이나마 감각할 수 있었다. 뉴 데이 스쿨에서 사진을 통해 소통하는 매 순간 <빛과 실>에 등장하는 북향의 정원이 떠올랐다. 빛의 방향에 따라 거울을 옮기고, 적정한 물을 주어야만 자랄 수 있는 북향의 정원 속 식물들처럼— 내전으로 인해 이주한 미얀마 학생들이 피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약간의 번거로운 관심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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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하루 더 크리스마스 전시 포스터 |
| ⓒ 천개의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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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 개의 희망에 참여한 한국인 사진가들과 10명의 뉴 데이 스쿨 학생 및 선생님 |
| ⓒ 천개의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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