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더 잘해"... 시골집에 갔다가 내 두 눈을 의심했다

전미경 2025. 12. 2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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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 본 AI 뉴스 진행자... '사람'을 구별하는 것도 이제 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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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 기자]

 G1방송 뉴스의 인공지능 앵커
ⓒ G1방송
최근 엄마가 계신 강원도 시골집에 가서 주말 저녁을 보냈다. TV를 보다가 G1방송 지역뉴스까지 보게 됐는데 갑자기 두 눈을 의심했다. "안녕하십니까" 하고 말하는 앵커 모습 옆 자막으로 "AI(인공지능) 앵커"라고 표시됐다.

잘못 봤나 싶어 평소에는 보지도 않던 지역 뉴스를 끝까지 지켜봤다. 뉴스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앵커가 다시 화면에 나타날 때만 기다렸다. 설마 했는데 인공지능 앵커가 맞았다. 뉴스 중간중간 나타나는 앵커 두 손에 들린 보고서는 고정돼 있었고 끝날 때까지 자세가 흐트러짐이 없었다.

서서 입만 벙긋벙긋하며 뉴스를 진행하는데 음성의 감정, 장단, 높낮이가 정말 사람 같았다. AI라고 자막 표시가 없었다면 아마 몰랐을 것이다. 지역뉴스가 끝날 때까지 취재기자와 같은 진짜 사람은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았다. 사람 없는 사람 뉴스가 진행된 것이다.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가능해도 되는 걸까.

너무 놀라서 " 엄마, 뉴스를 진행하는 사람이 사람이 아니야. AI라고 인공지능 기계야"라고 하자 엄마는 "그걸 이제 알았어? '로보트'가 하는 거잖아. 사람보다 말도 더 잘해" 하신다. 그러곤 앞으로 일자리가 줄어들어 사람들이 살아가기 점점 더 힘들어질 것 같다고도 했다. 갑자기 미래를 상상하니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숨이 턱 막혀오는 것만 같았다. 이제 정말 인공지능의 서막이 열리는 건가. 뉴스에 등장한 인공지능 앵커라니...

인공지능 활용도 개인의 능력인 시대

식당, 공장 등 인공지능이 생활과 노동에 깊숙이 침투했다는 소식은 들었다. 인공지능 가수와 실제 가수를 구별하는 노래 프로그램 방송도 본 적 있다. 일본에서는 인공지능으로 쓴 소설이 공모전 대상을 받았다는 뉴스도 접했다. 인공지능이 삶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지만 사실과 진실을 전달하는 뉴스의 앵커까지 진출한 줄은 몰랐다. 이러다가 나중에는 드라마도 인공지능 배우가 연기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방과 후 수업 때 인공지능을 주제로 토론한 적이 있다. 아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인공지능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했다. 이유는 사람은 생각하고, 머리를 써야 하는데 인공지능이 대신 다하면 사람은 도태돼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설명이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편리하게 숙제를 해준다고 해도 그건 내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까 의존해선 안된다고. 특히, 글 그림 같은 예술영역은 더 안된다고 했다. 아이들은 확고했다.

하지만, 직장인 및 일반인들의 생각은 많이 달랐다. 학교 선생님들 중 일부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를 작성한다고 했다. 회사의 보고서도 인공지능을 사용하면 편리하다고 한다. 사람이 한 것보다 더 잘하니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마치 일을 잘 못하는 사람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것도 개인의 능력이라고 했다. 이유는 인공지능도 사용자의 지시에 따라 새로운 결과물을 내놓기 때문에 굳이 인공지능을 구분해 내는 게 의미 없다고 했다. 이렇듯 인공지능에 대한 해석과 생각은 저마다 각각 다르다.

오래 전 대학 시절 교수님이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실격>의 독후감을 과제로 내준 적이 있다. 그때 난 그 책을 구입해 열심히 읽고 느낀 소감을 써서 제출했다. 최고 등급을 받았던 것 같다. 교수님께서 그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 " 어디서 보고 베낀 것이 아니라 진짜 읽고 쓴 감상문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 글은 잘 못썼지만 진심이 담겨 있다"라고 평가하셨다는 것을.

인공지능에는 진심이 없다. 학습된 감정만 있을 뿐이다. 그 감정이 인간을 감동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마음을 채울 수는 없다. 마음은 고유한 감정이니까. 하지만, 언젠가 그 고유한 마음까지 인공지능이 갖게 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되는 걸까. 표정 변화 없는 인공지능 앵커가 전달하는 생활뉴스를 보며 혼란스러웠다.

그런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공중파 전국 뉴스로 연결되면서 날씨를 전달하는 아나운서가 등장했다. 스튜디오로 걸어가는 저 사람은 진짜 사람일까.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간다. 저 사람은 진짜 사람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사람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것도 이젠 일이 된 것 같다.

인공지능이 점점 정교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뉴스에 등장한 앵커가 인공지능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엔 한동안 적응하기 힘들 것 같다. 여전히 정리가 안 되고 허탈하다. 거부하기엔 이미 가까이 있고 받아들이기엔 너무 커버린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우리 삶을 대신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의 삶을 전하는 앵커라면 그래도 사람이 진행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이다. 요즘 매일 한글을 배우는 6살 꼬마의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나는 사람인데 왜 기계하고 말해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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