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김범석이 부정하고 싶었던 영상, 온 국민이 봐야 합니다

박정훈 2025. 12. 2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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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이 박정훈에게]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 쿠팡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을까요?

흔한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 '오마이뉴스 기자 박정훈'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연대를 모색해 나갑니다. <편집자말>

[박정훈 기자]

 쿠팡 창업주이자 쿠팡 모회사 쿠팡아이엔씨(Inc)의 김범석 이사회 의장
ⓒ 연합뉴스
"그들은 시간제 노동자들이다. 시간당 급여를 받는다. 성과급이 아니라!"

쿠팡Inc 김범석 의장이 고 장덕준씨 산재사망사고를 은폐하라는 지시를 하면서 쿠팡 직원에게 한 이야기입니다. 장덕준씨는 쿠팡 대구칠곡물류센터에서 1년 4개월간 일하다 2020년 10월 12일 심근경색으로 사망합니다.

김범석은 고 장덕준씨의 영상을 분석해 과로사가 아니라는 걸 입증하고 싶었겠지만, 영상 속의 장덕준씨는 쉴틈 없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고인은 매일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주5~6일 일했습니다. 1년 동안 일하면서 몸무게가 무려 15kg이 빠졌습니다.

불성실하게 일한 증거를 찾기가 어려웠는지 쿠팡은 유족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재판에서 고 장덕준씨가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다가 사망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쳤습니다. "4시간 골프를 쳐도 1만 5천보는 걷는다"며 과로사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고인의 CCTV를 본 또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유족입니다. 유족은 2024년 MBC와의 인터뷰에서 전 국민이 아들의 CCTV를 봤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노동자 감시와 통제의 역사

'노동자는 시간만 때우면 임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열심히 일할 리가 없다'는 김범석의 의심은 노동력을 구매해 이윤을 얻는 모든 자본가가 가진 근원적 불안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역사는 노동자에 대한 통제와 감시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아는 테일러리즘은 대표적인 노동자 통제방식입니다. 미국의 프레더릭 테일러는 1911년 '과학적 관리법'을 출판해 생산현장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노동자의 동선과 동작 재료낭비 등을 막기 위해 최적의 관리체계를 만드는 것이죠. 작업을 표준화하고 세분화해 누구나 똑같은 속도로 일 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기계의 속도에 인간을 맞추면 노동자들에게 쉬지 않고 일을 시킬 수 있습니다. 테일러는 초시계로 각 동작을 마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측정해 '최적의 동작'을 발견하려 했습니다.

포드 공장이 테일러리즘을 도입해 성공을 거두면서 테일러-포드주의가 산업의 주요한 시스템으로 자리잡습니다. 20세기 초 자동차공장이 테일러리즘을 보여줬다면 20세기 후반에는 맥도날드가 테일러리즘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조지 리처 메릴랜드대 사회학과 교수는 저서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에서 맥도날드는 효율성, 계산가능성, 예측 가능성, 자동화를 통해 효율성을 극대화한다고 합니다. 맥도날드는 아이스크림은 세 바퀴 반을 돌려야 한다, 감자튀김 소금은 20cm 위에서 뿌려야 한다, 햄버거는 45초 내에 만들고, 배달은 17분 30초 안에 해야 한다는 등 세세한 매뉴얼을 둬 노동자들의 노동을 표준화하고 통제합니다.

새로운 감시체계, 디지털 테일러리즘
 지난 17일 서울 시내의 한 쿠팡 물류센터 모습.
ⓒ 연합뉴스
최근 플랫폼기업이 성장하면서 맥도날드화를 뛰어넘는 우버화가 주요한 이슈로 떠오릅니다. 한국에서는 쿠팡화라고 불러야 할 듯합니다. 쿠팡물류센터는 노동자에게 PDA(휴대용 단말기)를 지급하고, PDA를 통해서 업무지시를 합니다. 쿠팡과 알파고를 합쳐 쿠파고라 부르는 쿠팡물류센터의 PDA시스템은 노동자의 동선과 물건의 적재장소, 재고를 파악하여 노동자에게 '빨리 목적지로 옮겨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띄워 업무지시를 합니다.

속도가 늦으면 기계에 빨간색 불이 뜨고 시간당 생산량(HTP) 기록이 실시간으로 관리자에게 측정됩니다. 인간 관리자는 속도가 느린 노동자에게 다가와 재촉하거나 방송을 통해 공개적으로 사원 이름을 부르며 속도를 올려달라고 합니다. 노동자는 디지털 공장과 현실의 공장 두 군데 모두 출근하고 양쪽에서 감시와 통제를 받습니다. 자신의 손에 있는 디지털 기계는 무표정하게,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인간관리자는 화가 난 표정으로 노동자를 닦달합니다.

쿠팡뿐만이 아닙니다. 이제 기업은 노동자의 컴퓨터에 마우스가 움직이는지, 노동자가 어떤 사이트에 접속하는지, 어떤 화면을 보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메신저 대화 내용도 감시가 가능합니다. JTM(직원 모니터링) 시스템을 제공하는 회사 홈페이지에는 기업들이 별점 5점을 준 생생한 사용 후기를 볼 수 있습니다.

"직원이 사용한 프로그램명과 접속한 인터넷 사이트를 명확하게 확인이 가능하고 사용시간까지 확인되어, 직원 업무 모니터링에 편리합니다."

실시간 모니터링이 불가능해 보였던 야외 노동자에 대한 노동 통제 역시 가능해졌습니다. 쿠팡은 택배노동자에게 앱을 깔게 해 배송지, 남은 물량 정보 등을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노동자의 노동데이터를 수집합니다. 쿠팡이츠는 AI가 배달 노동자에게 배차를 하고, 배달 구역을 세세하게 쪼개 실시간으로 배달료를 결정합니다. 주문량, 날씨, 접속한 노동자의 숫자에 따라 배달료가 순간순간 바뀌는 겁니다. 라이더들의 배달 속도 데이터도 실시간으로 수집하므로, 회사가 예상한 배달시간보다 더 빠르게 배달하면, 배달료를 더 낮춰버릴 수도 있습니다.

쿠팡이츠 배달 파트너 앱을 통해 배달을 하지 않을 때도 위치정보를 제공할 것을 요구하며, 로그인한 노동자뿐만 아니라 유휴인력 정보까지 고려해 배달료 등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테일러가 초시계를 들고 한명 한명의 동작을 관찰했다면 오늘날 기업들은 디지털 기기와 앱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수만 명의 노동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습니다. 잠을 자지도 담배도 피지 않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관리자 '디지털테일러'가 탄생한 겁니다.

가장 효율적인 자발적 통제, 건당임금
 2025 산재사망 배달노동자 추모 행진에 참가한 라이더유니온 조합원을 비롯한 배달 노동자들이 지난 8월 12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앞에서 산재 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며 약식 추모집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임금입니다. 맥도날드 배달노동자는 최저임금에 더해 건당 400원의 성과급을 받습니다. 회사는 배달을 마치고 매장에 늦게 오는 라이더를 질책할 수 있지만, 매장 밖 배달과정을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빨리 배달해 버리고 한참을 쉬고 돌아올 수도 있는 것이죠. 이 때문에 자발적으로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건당 임금을 도입합니다.

고작 400원으로는 노동자의 노동의욕을 불러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배달기업들은 고정급을 모두 없애고 건당으로만 임금을 받는 '건당 노동자'들을 탄생시켰습니다. 회사는 더 이상 배달 노동자에게 빨리 배달하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건당 배달료를 낮게 주면 생활비를 벌기 위해 무서운 속도로 달리면 됩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억지로 등 떠밀어 일을 시킬 필요가 업습니다. 평소보다 높은 금액을 주면 노동자가 알아서 위험을 감수하고 일을 합니다.

그래서 쿠팡은 물류센터에 묶어두고 일을 시켜야 하는 물류센터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계약해 최저임금으로 일을 시키고, 물류센터 밖에서 최대한 빠르게 배달을 해야 하는 택배, 음식배달노동자에게는 특고 플랫폼 노동자로 계약하고 건당임금을 지급합니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으로 쿠팡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배우고 익힌 '노동윤리'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일터는 매일 얼굴을 마주치고 인사하는 동료가 존재합니다. 특히 같은 장소에서 집단적으로 일하는 사업장에서 설렁설렁 일했다가는 회사생활이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일용직,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가 늘어나면서 이런 노동윤리도 붕괴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떠날 일자리라면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도, (노골적으로 한 번 쓰고 버리겠다는 의도를 가진)고용주와의 신의를 지킬 필요도 없습니다. 알바 노동자들이 일이 힘들어 연락 없이 갑자기 일을 그만두는 일명 '추노'현상도 이런 배경에서 탄생합니다. 김범석이 숨이 막히도록 촘촘한 노동자 통제 시스템을 만들어놓고도 시급제노동자를 믿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고 싶은 일자리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도 쿠팡이 잘 알고 있는 겁니다.

아동노동, 장시간 노동, 야간노동 등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극심해 노동자가 일찍 죽어 사회의 지속가능성이 붕괴되기 시작할 때,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게 노동법입니다.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의 골간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사업주가 일을 하는 개별노동자에게 보장해야 할 임금·노동시간·휴게시간을 규율한 근로기준법,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보장해 집단적 힘으로 사업주와 협상할 수 있게 한 노조법, 사업주와 국가가 연대해 만든 연금·건강보험· 산재보험·고용보험 등의 사회보험입니다. 그런데 쿠팡은 이 모든 법의 근간을 흔들고 있습니다. 쿠팡 노동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우리사회에 던져진 어렵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마침 정부여당이 답을 내놓았습니다.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24일 정부여당 주도로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 국회에서 발의됐습니다.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는 특고 플랫폼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표준계약서 작성, 괴롭힘 금지, 보수 지급 보장 등의 내용을 담았습니다.

모두 기존 노동법에 있는 내용으로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벌칙 조항입니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엔 처벌조항이 없습니다. 좋은 말을 써놓은 겁니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 쿠팡에서 일하는 택배 배달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을까요? 노동법을 무너트리는 쿠팡을 규제할 수 있을까요? 변화하는 새로운 노동통제에 대응할 수 있을까요? 산재은폐, 퇴직금 미지급 등 기존 노동법조차 무시하는 쿠팡에게 지키지 않아도 아무런 제재를 할 수 없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을 지키라고 강제할 수 있을까요? 쿠팡은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쿠팡은 2021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상장 신청 서류를 제출하면서 "쿠팡 플렉스·이츠 배달원을 독립계약자로 분류하는 것이 법령과 법적 해석에서 어려워진다면 이를 방어·해결하는데 드는 비용은 당사의 사업에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라며 플랫폼 노동자에게 노동법을 적용시키는 것을 가장 큰 사업적 리스크라고 명시했습니다. 쿠팡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쿠팡을 규제하겠다는 어떤 정치인도 시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훈님, 지금까지 보낸 편지 내용의 대부분은 노동문제였고 마지막 편지도 노동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노동 문제를 모두 모아보면 쿠팡이 나옵니다. 대한민국 노동의 모든 문제를 쌓아놓은 물류창고가 쿠팡입니다. 이 편지만큼은 이재명 정부와 여당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 아니라 노동법의 확대 적용만이 쿠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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