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에도 매일 출근하며 행복해 하는 할머니

이정미 2025. 12. 26.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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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할머니 약국>을 읽고

[이정미 기자]

그러니 앞날이 불안하게만 느껴질 때는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은 일단 제쳐 두고 그저 지금 나에게 주어진 오늘에 최선을 다해 보세요. 오늘 아침에 눈을 떴다는 건 반드시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뜻입니다. -152쪽

옮긴이 이름이 나의 이름과 똑같아 냉큼 집어든 책이다. '히루마 에이코'( 1923년 도쿄에서 태어났고, 기네스북에 '세계 최고령 현역 약사'로 등재되기도 했다)님은 TV 건강 프로그램에서 본 적 있다. 100세임에도 약국에 매일 출근하여 현역으로 일하시는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웠던 기억이다. 외모도 100세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꼿꼿하시고 움직임도 민첩하셨다. 온화한 표정을 보며 '나도 저 분처럼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일었었다.

10년 후 우리 나라의 모습이 궁금하면 이웃 나라 일본을 보면 된다고들 한다. 일본은 일찍이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고, 현재 우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노인 고독사, 일하는 노년, 노인 빈곤 등 사회 현상들이 이미 일상적 문제가 되었다. 그런 만큼 일본에는 100세 시대, 은퇴 후 40년이라는 긴 노년의 시간을 지혜롭게 보내는 방법에 대한 정보들이 많다.

나는 지난해 왕복 2시간 넘는 장거리 출퇴근을 하며 가끔 유튜브로 일본 노인들의 삶을 다룬 영상을 듣곤 했다(오십 고개 중턱에 좀 웃기기도 하지만). 그 영상들을 접하며 '그렇구나, 70대는 80대는 90대는 이런 마음으로 살아야겠구나'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처음으로, 그 나이대의 내 모습이 궁금해졌고, '그 나이대들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2003년~2004년에 걸쳐 일본에서 살았던 적이 있는데(벌써 20년 전이다). 그때도 일본에선 일하는 노인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깔끔한 복장, 친절하고 성실한 태도로 문화 유적지 입장 관리, 공원 정화 활동, 음식점 서빙, 슈퍼마켓 물품 정리 등 일하시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75년 간 '어김없이'

'히루마 에이코'님은 "75년간 매일 약국에 나와서 손님들의 마음에 다가서려고 꾸준히 노력한 일만큼은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말씀하신다. 약국을 가업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하신 약국을 '히루마'님이, 아들과 손자가 자연스럽게 이어준 데는 작가님의 삶의 태도가 영향을 미쳤다.

히루마님은 "즐겁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명심했다고 한다.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며 자란다'고 한다. 말로 다그치면 반발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저 묵묵히 삶으로 보여줄 때 닿을 수 있는 법이다. 그걸 알면서도 말이 먼저 나가서 후회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앞으로 더욱 유념해야겠다.

히루마님을 보면서 주변 사람들은 가족이 어떻게 그렇게 잘 지낼 수 있냐고 신기해 한단다. 히루마님은 "참견은 만병의 근원"이라 대답하신다. "서로 서로 마음의 간격을 적당히 유지하면서 가만히 지켜봐 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남편이나 자식이라도 서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자신만의 세상이 있다"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자식이나 손자의 인생에 함부로 끼어들어서는 안된다"고 하신다.

이 지당한 말씀이 '세상 제일로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가족이 화목한 비결'이기도 하다. '거리두기'의 적정함이란 참으로 측정하기 어려운데, 일상을 살면서 유념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 테다.

하버드대학교가 80년 이상 진행한 장기 연구에서 인간의 행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따뜻하고 인간적인 관계'라 했다. 히루마님의 건강과 행복 비결에도 가족들의 지지와 도움, 존중, 오랜 세월 변함없이 약국을 찾는 사람들과의 다정한 연결이 있었다. 75년간 어김없이 약국 일을 하며 사람들과 연결되고, '따뜻한 말과 손'을 건네며 사셨기에 '스스로도 잘 살았다' 여기는 '삶이라는 넉넉한 숲'이 아름답게 조성될 수 있었다.
▲ 책표지 <100세 할머니 약국>, 히루마 에이코 지음 / 이정미 옮김
ⓒ 윌마
할머니가 되어도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히루마'님은 '피곤해'라는 말을 되도록 사용하지 않으신단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참 좋아서 수첩에 별도로 써 두었다. 고단하고 피곤하면 '피곤하다'고 말하는 대신 침대에 누워 잠에 빠져버린다고. 맞다. 피곤해 피곤해 하면서 자신과 주변에 부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보다 피곤을 푸는 행동을 하는 것이 훨씬 지혜롭다. 말이란 그건 것이다. 형체도 없는 것이 무엇보다 강력하게 자신과 주변에 영향을 미친다.

나이가 든 약사가 할 수 있는 일 중에는 늙어서도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젊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것도 있을지 모릅니다. - 63쪽
나이가 든 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이나 손자가 노화를 괴로운 일로 여기지 않도록 되도록 생기 넘치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자식이나 손자를 난처하게 하기보다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좀 멋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도록 말이지요. - 149쪽

오래 사용한 몸이 어찌 아프지 않을까. 벌써 가끔 무릎이 불편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눈이 침침해서 안경을 썼다 벗었다 반복하는데 말이다. 노화로 인한 절망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들지 감히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말은 꼭꼭 기억하게 마음 안에 크게 동그라미를 그려 저장해 둔다. 젊은 사람들에게 "늙어서도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나이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이 문장. 그러기 위해서 부단히 애써야 한다.

히루마님의 말씀처럼 "일하는 습관, 건강을 위한 습관, 몸을 단정히 하는 습관" 등 좋은 습관이 몸에 베도록 차곡차곡 저축한다면, 습관이 나를 '잘 나이든 할머니'로 이끌어 줄 것이다. 부디 할머니가 되어도 "되도록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자식들이 우리 엄마처럼 나이들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할머니로 살아갈 수 있기를 새해를 맞이하며 소망 하나 더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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