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은 기후위기 벗어나 좋은 삶을 찾는 해가 될까?

김병권 2025. 12. 2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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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불타는 지구에서 다르게 살 용기>, 사회와 지구를 넘나들며 기후해법 모색한 사회학자의 통찰

[김병권 기자]

다중위기, 복합위기라는 말이 특별히 긴장되지 않을 정도로 익숙해진 세상이다. 하지만 일상화된 위기 국면에서도 경제적 불평등과 격차는 더 벌어지고, 민주주의 후퇴는 분명하며 세계는 분열과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 그럴수록 위기를 정면 돌파하지 않은 채 회피하기만 하거나 적응할 수는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체감한다.

그 가운데 기후위기는 점점 더 전면적이고 압도적인 무게로 우리에게 현실이 되고 있다. 2025년 봄 영남의 초대형 산불, 여름 강릉이 겪었던 지독한 가뭄, 과거 평균보다 2도 이상 높았던 더위 등 극한 날씨로 표현되는 기후 재난 양상은 이제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찾아오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앞으로 기후위기는 '위협 증폭기(threat multiplier)'로 작용하며 그 이상의 사회적 충격을 주게 될 것이다. 즉 "전쟁, 생물다양성 상실, 인공지능 통제 불능, 민주주의 약화와 같은 사태와 맞물려" 위협을 기후위기가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정치적 급변, 물가 폭등, 주요 기업 파산, 생계태 핵심종 상실 등 '하나의 위험이 여러 위험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현상'이 지구적 위기로 확산하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바로 이같은 기후위기와 다중위기에 대응할 지혜를 종합한 단행본이 새로 나왔다. 한국의 저명한 인권 사회학자 조효제 성공회대학 명예교수가 사회와 경제를 넘어 지구의 생태적 위기를 끌어안으면서 써낸 역작 <불타는 지구에서 다르게 살 용기>가 그것이다. 이번 단행본은 전작 <탄소사회의 종말>과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에 이은 것으로 실로 종합판이라고 할 만한 풍부한 내용을 포괄한다.
▲ <불타는 지구에서 다르게 살 용기> 조효제 교수의 신간 <불타는 지구에서 다르게 살 용기>
ⓒ 창작과 비평사
15가지 질문을 뽑아 차례로 질문하고 답하는 방식으로 엮어낸 이번 단행본은, 세계관에서 실천 방안에 이르기까지 기후생태위기의 거의 전 분야 쟁점을 포괄하면서 저자의 독특한 관점을 녹여내고 있기에 짧은 서평을 쓰는 것 자체가 무리다. 여기서는 독자들이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한 두 가지 이유만 덧붙여보겠다.

사회와 지구 시스템을 통합하여 재조직한 기후 쟁점들

가장 눈에 띄는 이 책의 특징은 사회와 지구시스템이라는 두 패러다임을 통합하여 기후생태위기를 재해석하려 한 대목이다. 때문에 인문사회와 생태환경 분야의 독자 모두에게 상당히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까지 "사회시스템 패러다임은 주로 '근대의 적응'에 집중해왔고, 지구시스템 패러다임은 주로 '근대의 극복'을 염원"해왔다.

하지만 "기후생태위기는 두 패러다임의 공집합에 속하는 문제"이며, 당연하게도 '사회-지구시스템'이라는 통합된 실체를 가지고 파악해야만 한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요지다. 그러므로 경제적 불평등은 물론이고 사회적 위계관계나 젠더 문제 등이 자연스럽게 기후위기와 연결되는 것은 저자에게 너무 당연하다.

유명한 '인류세' 논쟁에 대해서도 저자는, 현재의 기후생태위기가 "인간사회의 위계적 권력구조 조직방식과 사회적으로 선택된 물질대사 방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사회-자본세'라고 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분석한다. "탈사회화, 탈정치화, 탈역사화된 '인류' 개념만 남으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해도 사회생태위기의 책임과 결과가 인간 집단들 사이에서 전혀 다르게 발현된다는 점"을 놓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지구시스템 차원에서 기후위기에 대처하려면 넓은 시야에서 사회와 지구 생태계가 얽혀가는 비선형적이고 복잡한 변화를 포착하자고 그는 주문한다.

"스프레드시트를 분석하는 전문가의 치밀한 시선보다, 변화의 판 전체를 읽어내는 경세가의 거시적 시선이 필요합니다. 또한 선형적 인과관계로 측정할 수 없는 관계성을 이해야 하고요."

기후 대응도 결국 권력의 문제다

어마어마하게 풍부한 쟁점을 저자가 그저 풀어놓기만 한다고 예단하면 안 된다. 그는 지구의 한계 내에서 모든 존재의 좋은 삶'이라는 아주 간명하면서도 강력한 비전을 녹색민주시민들에게 제안한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최고의 절제 원리로서 '충족(sufficiency)'을 제시한다.

그는 "충족의 원리가 널리 받아들여 지려면 불평등의 대폭적인 감소, 공공서비스 확충, 그리고 기본소득/기본서비스가 전제되어야" 한다면서, 몇 가지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예시하는 한편, 그 맥락이 '탈성장'과 이어져 있음도 확인한다.

특히 저자는 비판적 사회학자답게 녹색민주시민의 실천과 관련하여 권력의 문제를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제기한다. 그가 사회-지구시스템 관점에서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권력으로 지목한 것은 금융, 화석, 농축산, 디지털의 4대 권력복합체다.

그는 "화석연료 금융투자 금지, 화석연료 퇴출과 에너지 이행전환, 공공 재생에너지 생산, 자동차 생활양식 혁명, 식량주권 확보와 축산업 재구성, 디지털 민주주의 요구와 AI 환상 깨뜨리기에 문명 전환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역설한다. 기후위기 대응이 현실 권력과의 싸움임을 아주 분명하게 한 대목이다.

덧붙여 이 책은 몇 가지 특별한 미덕을 더하고 있다. 우선 엄청나게 다양한 참고 문헌을 동원하여 이야기를 풀어가면서도, 일반 독자에게 어려움을 안기지 않을 정도로 쉬운 서술을 하려고 노력한 점이 돋보인다.

또한 이 책은 의도적으로 해외 저자들과 함께 국내의 다양한 연구자들을 최대한 많이 독자들에게 소개하면서 지면을 통해 국내 공론장을 형성하려고 했다. 원로 학자의 세심한 배려가 묻어난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기후 운동가는 물론 생태 정책가와 녹색시민들이, 새로운 결심과 긴 호흡으로 기후 생태위기 대응의 미래를 차분히 정리하고자 한다면 새해 필독서로 이 책을 선택하라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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