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잘못 탄 기차가 때론 목적지로 데려다준다"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의 유작
아흔에 써내려간 성찰의 기록
"네 눈에 흥미로워 보이는 기차가 있다면 그저 올라타서 어디로 데려가는지 지켜봐라 잘못 탄 기차가 때론 목적지로 데려다준다."

'아흔에 바라본 삶'은 세계적인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1932~2024)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남긴 유작이다. 아흔의 나이에 이르러 깨달은 인생의 본질을 담은 성찰을 기록했다. 그는 병상에서도 삶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을 잃지 않은 채, 인생의 의미와 나이 듦의 가치, 인간관계와 일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법을 차분하고 담담히 풀어냈다.
저자는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한 뒤 다국적 석유회사 셸(Shell)에 입사해 임원을 지냈고, MIT 슬론 경영대학원 펠로우를 거쳐 런던경영대학원에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설립했다. 이후 영국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세인트조지하우스 소장과 왕립예술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로부터 "천재적인 통찰력으로 학문적인 개념을 현실에 대입해 구현한 사람"이란 찬사를 받을 정도의 업적을 남겼다. 책은 2024년 12월 뇌졸중으로 투병 중 병상에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써 내려간 여러 단상을 담고 있다.
"잘못 탄 기차가 때론 목적지로 데려다준다"는 말은 핸디의 사연 많은 인생을 잘 드러낸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가족을 부양해야 했기에 안정적으로 근무할 탄탄한 직장이 절실했다. 다국적 석유회사인 셸에 입사해 싱가포르로 발령받았다. 아들이 글을 쓰고 싶어 한다는 걸 잘 아는 어머니는 떠나는 아들에게 "걱정 마라 얘야. 이 모든 경험이 네 책의 훌륭한 소제가 될 거야."
싱가포르에서 다시 보르네오섬 오지로 발령받은 핸디는 경영서에 파묻혀 마케팅 공부에 매진하다가 해당 서적들의 조악함에 놀라 직접 책을 쓰기로 결심한다. 서적에 소개된 일부 이론을 발췌해 읽기 좋은 영어 문장으로 옮기고, 보르네오섬에서 직접 겪은 이색 경험을 예시로 첨부했다. "사람은 실수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실수보다 남의 실수에서 배우는 편이 훨씬 낫지요. 그러니 여기에 제 실수를 소개합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출간 한 달 만에 1만부가 팔렸고, 그달 말까지 세계적으로 100만부가 판매됐다.
각지에서 새 책을 써달라고 주문이 쇄도했고, 강연 요청도 몰려들었다. 결국 그는 그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이야기하는 일로 큰 돈을 벌었다. "내가 탄 기차가 나를 석유회사 셸에 데려다줬으면 했는데, 그 기차가 나를 펭귄 출판사, BBC 방송국, 수브니르 출판사에 데려갔어.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좋아하는 일을 꽤 잘 해내는 삶을 살게 됐지. (중략) 가정을 꾸리고 집을 사기 전인 20대에는 여러 가지를 시도해봐라. 그때까지는 실패해도 괜찮다. 그 실수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게 될 테니. 그리고 네 눈에 흥미로워 보이는 기차가 있다면, 그저 올라타서 어디로 데려가는지 지켜봐라."
저자는 세상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하고, 말로 설명하려는 태도를 버리라고 충고한다. 예술가, 시인, 어린아이, 기업가 등의 직감적인 능력은 설명의 영역이 아니며, 그런 능력을 통해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특히 기업가의 태도에 대해선 "새롭게 고안된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믿을 줄 안다. 비록 그것이 왜 성공할 것인지 정확히 설명하지는 못하더라도 말이다"라고 강조한다. 실례로 포스트잇을 개발한 미국 다국적 기업 3M의 스펜서 실버 박사를 든다. 우연히 점성이 약한 접착제를 발명했고, 당시에는 용도를 잘 알지 못했지만, 머잖아 포스트잇이란 세계적인 발명품이 탄생하게 된 사례. "얼마나 유용한지는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웠다. 사람들은 직접 써보고 나서야 그 용도를 실감할 수 있었다. (중략) 만일 조직 안에서 새로운 것을 상상하고 꿈꾸는 사람들을 본다면,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라. 너무 캐묻지 말고 그들이 내놓는 것을 즐기며 받아들여라."
이런 태도는 자신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저자는 "남들에게 설명할 필요도, 스스로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그리고 믿자. 나는 해낼 수 있다는 것을"이라고 역설한다.
사생활을 대하는 현대인의 과잉 대응에 대한 해석도 흥미롭다. 과거 이탈리아 토스카나주의 어느 독채에 거주할 당시, 하루는 한 신혼부부가 허락도 없이 집 앞 잔디밭에 들어와 사진을 찍었다. 기분이 상한 핸디는 남자에게 항의했으나 돌아본 말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폐가 됐다면 죄송합니다. 이탈리아에서 땅은 모두의 소유입니다. 선생님이 소유하고 있더라도, 다른 사람이 그 땅을 밟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선생님이 좋든 싫든 우리에게는 여기에 있을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선생님 땅을 침입했다고 느꼈다면 죄송하지만, 그게 이탈리아의 방식입니다."
이후 서로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갈 정도로 친분을 쌓게 된 두 부부는 그 일을 계기로 허물없는 좋은 친구가 된다. 그는 "지금 사회는 사생활을 과대평가하고 있다. 사생활을 지나치게 지키려 하면 자신과 주변 세상 사이에 벽을 쌓게 된다"며 "그 벽은 적대감을 불러오고 때로는 의심이나 질투를 불러올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이득보다는 치려야 하는 대가가 크다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죽음을 앞두고 인생을 돌아보며 써 내려간 단상이란 점에서 숙연함의 정도와 내용의 깊이가 남다르게 느껴진다. 챕터별로 짧게 나눠 읽기에 부담이 없으나, 넌지시 던지는 익숙한 말 속에 묵직한 깨달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아흔에 바라본 삶 | 찰스 핸디 | 인플루엔셜 | 284쪽 | 1만98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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