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토론하며…소원책담, 함께 모여 새기는 발자국 [공간을 기억하다]

장수정 2025. 12. 2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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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지기의 이야기㉜] 서울 혜화동 소원책담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소원책담

◆ 책을 사는 공간을 넘어, 같이 읽는 모임 전문 책방

서울 혜화동의 주택가에 자리 잡은 소원책담은 동네 사람들,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책방이다. 책을 사는 서점이기도 하지만, 함께 모여 읽고 토론하는 ‘모임 전문 책방’으로 확고한 정체성을 구축했다. 이재호 책방지기는 “소원책담은 흴 소(素), 동산 원(園)으로 ‘흰 정원’을 뜻한다. 눈이 소복히 내린 정원 위에 회원들의 발자국이 하나둘 남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었다”고 책방을 연 이유를 설명했다.

소원책담이 처음부터 이야기가 꽃피는 ‘동네 사랑방’이 된 것은 아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거리두기’를 하던 2021년 문을 연 소원책담은 1년 정도 서점 운영을 하며 기반을 다진 뒤,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모임을 열기 시작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독서모임을 열기도 하지만, 소원책담에는 독서강사가 참여해 전문성을 배가했다. 이를 계기로 지금은 독서강사와 일반 회원들이 함께 모여 출범한 ‘소원책담 협동조합’을 바탕으로, 책방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소원책담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만큼, 자연스럽게 책을 판매하는 공간을 넘어, 함께 읽고 또 이야기하는 공간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다. 소원책담에는 서가만큼이나 테이블, 의자가 공간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원책담이 책을 사고, 또 읽는 공간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한다.

이 책방지기의 설명에 따르면 책방에서는 시사·사회 분야의 모임 담쟁이독서회를 비롯해 인문 분야의 고인물독서회, 시·에세이/필사가 중심인 손끝독서회, 예술 분야를 읽고 토론하는 음미의 세계, 고전·세계문학을 다루는 문학산책 등 다양한 모임이 열리고 있다. 라디오 소설처럼 성우가 책을 읽어주는 낭독 모임 ‘북크박스’, 한강 작가 작품을 연속으로 읽는 ‘오늘의 한강’, 카카오톡으로 문장을 필사하는 ‘오늘의 문장’ 등 색다른 방식으로 책을 즐기기도 한다.

대부분의 독서모임은 한 달에 한 번 진행하며 부담감은 낮추되, 모임의 다양성을 확대해 ‘모여서 읽는’ 재미를 넓히고자 했다. 이에 대해 “바쁜 일상 속에서도 조금만 마음을 내면 한 달에 한 권쯤은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여러 모임에 참가할 수 있도록 다양한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실제로 한 달에 여러 모임에 꾸준히 참여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신 독서강사로 구성된 진행자들을 통해 모임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구체적인 모임 내용에 대해 이 책방지기는 “소원책담의 독서 모임은 진행자가 미리 이야기할 거리를 프린트물로 준비해 이끌어간다. 모임 중 대화가 책 중심과 다르게 흐를 때가 있는데 이를 적절히 조율해 책 이야기 중심으로 토론이 이뤄지게 한다. 또 의견의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는 비경쟁토론을 지향하며, 서로 다른 시각을 존중하며 듣는 것을 중요한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정원사들은 모두 도서관이나 지자체에서 독서모임을 진행하는 전문강사들로, 공격적 발언이거나 특정인 발언이 독점되는 상황을 세심하게 관리하며 모임을 진행한다.

ⓒ소원책담

이를 통해 모임원 모두 ‘능동적’으로 책을 읽고, 말하고 있다. “한 번 참여하신 분들 대부분이 꾸준히 함께 하신다. 바빠서 잠시 함께하지 못했던 분이 시간이 지나 다시 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만큼 그 효과를 참여자들이 스스로 체감하는 게 아닐까”라고 말한 이 책방지기는 그들의 긍정적인 반응에 힘을 얻고 있었다. “오래 모임을 이어오다 보니 꾸준히 오시는 분들이 많다”고 말한 그는 “그럼에도 매번 읽는 책이 달라 나누는 이야기는 늘 새롭다. 게다가 새로운 분들이 합류하면 그에 맞춰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많은 회원들이 모임 하는 날을 기다리게 된다고 말씀해 주시고, 여행이나 개인 일정으로 빠질 경우 아쉬움을 표현해 주신다. 어떤 분은 독서모임이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 됐다고 이야기해 주셔서 감동을 받은 적도 있다”는 경험을 전했다.

독서모임에서 읽은 책이 자연스럽게 책방의 서가를 채우면서, ‘완성도 높은 책을 만날 수 있다’는 소원책담만의 장점도 생겨났다. 독서모임의 책들에 대해 “정원사들이 신중하고, 까다롭게 고르는 책에는 이야기가 듬뿍 담겨 있다”고 말한 이 책방지기는 지금까지 약 300회 정도 모임을 했고, 함께 읽은 책도 200권이 넘는다. 이렇게 축적된 책들이 모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소원책담을 넘어, 책을 중심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날도 꿈꾸고 있다. 우선은 소원책담에서 다양한 형태의 모임을 만들고 싶다는 이 책방지기는 이후 목표에 대해 소원책담의 회원들이 들려주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 책으로 펴내고 싶다고 말했다. 더불어 “소원책담이 단순한 책방이나 모임 공간을 넘어, 로컬기반으로 한 단단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데 작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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