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줄어드는 기부, 무너지는 울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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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찾은 서울 종로구 원각사 무료급식소.
달동네 주민들의 겨울을 책임지던 연탄 기부도 예전 같지 않다.
올해 11월 연탄은행이 받은 기부량은 40만7146장으로 전년 동월 대비 45% 급감했다.
이 지수는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릴리 패밀리 스쿨 오브 필란트로피가 전 세계 기부 환경을 측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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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제 혜택 등 국가 역할 중요

지난 24일 찾은 서울 종로구 원각사 무료급식소. 배식 10분 전인 오전 11시20분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100여명의 어르신들이 조용히 줄을 섰다. 쇠그릇에는 소고기국밥이 절반도 채 담기지 못했다. 넉넉지 않은 양이었지만 320여명은 그 한 끼로 허기를 달랬다. 자원봉사자들이 십시일반 모은 재료 덕분이었다.
급식소 관계자는 "기업 후원이 지난해 12월엔 4건이었는데 올해는 1건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개인 후원자 중엔 3만원을 1만원으로 줄여달라거나, 아예 끊겠다는 이들도 늘고 있다. 그는 "30년 넘게 이어온 무료급식을 멈출 순 없어 고기 양을 줄이고 야채를 더 넣는 방식으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달동네 주민들의 겨울을 책임지던 연탄 기부도 예전 같지 않다. 올해 11월 연탄은행이 받은 기부량은 40만7146장으로 전년 동월 대비 45% 급감했다. 연간 누적 기부량도 2022년 426만장, 지난해 299만장으로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 올해는 11월까지 89만장에 불과했다. 허기복 연탄은행 대표는 "고물가·경기 침체로 개인·기업 모두 '여력이 없다'며 후원을 줄이고 있다"며 "겨울이 깊어질수록 연탄이 필요한 가구는 늘어나는데 물량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연말이면 훈훈해야 할 온정의 온도가 올해는 유독 차갑다. 기부 문화 자체가 위축된 것 아니냐는 걱정도 커진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기부 의사가 없다'는 응답은 2017년 58.8%에서 올해 60.4%로 늘어났다. 세계기부환경지수(GPEI)에 따르면 한국의 기부 환경 점수는 2018년 4.37점, 2022년 3.94점에서 올해 3.85점으로 하락세다. 이 지수는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릴리 패밀리 스쿨 오브 필란트로피가 전 세계 기부 환경을 측정한 것이다. 기부 환경이 갈수록 악화하는 데는 경기 침체, 기부 포비아, 정부 지원 감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기부가 움츠러들수록 그 빈틈은 사회적 안전망의 가장 바깥쪽에 있는 이들의 고통으로 직결된다. 민간의 선의가 마를 때 그 갈증을 채워야 할 곳은 결국 국가다. 복지 사각지대를 메워온 민간 구호 활동이 동력을 잃는다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더 촘촘한 공적 지원 체계를 가동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기부 문화를 다시 세워야 한다. 기부를 '여유 있는 자의 선택'이 아닌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투자'로 인식할 수 있도록 세액공제 확대 등 유인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기부금이 투명하게 쓰이는지 감시하는 시스템도 고도화해야 한다. '내 돈이 헛되이 쓰이지 않는다'는 확신에서 자발적 기부가 시작할 테니 말이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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