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에도 필요한 '가짜 일 30% 줄이기'
[박영호 기자]
정부 부처의 업무보고가 끝났다. 업무보고 과정을 누구나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정권 교체를 실감하게 된다. 주로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를 지켜봤는데, 대통령이 지나치게 사소한 부분까지 건드린다고 느껴지는 장면도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와 흥미를 끄는 대목,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장면이 꽤 많았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의 발언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는 17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가짜 일 30% 줄이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가짜 일"이라는 표현부터가 도발적이다. 김 장관은 불필요한 보고서가 지나치게 많다며, 국민이 준 노트북과 종이를 들여다보며 작성되는 수많은 문서 가운데 상당수는 텔레그램 메시지나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교사 역시 공무원인 이상, 장관이 지적한 '가짜 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보고서를 쓰기 위해 또 다른 보고서를 만들고, 형식을 맞추느라 시간을 소모하는 관행은 교육의 본질을 흐려왔다. 일은 줄지 않는데 피로만 쌓이고, 책임은 흐릿해진다.
교육 현장에서 대표적인 '가짜 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학교생활기록부 작성이다. 무엇보다 기록해야 할 내용이 지나치게 많다. 2025학년도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은 무려 274쪽에 이른다. 고등학교만 놓고 보더라도, 대학입시에 활용되기를 바라며 과도하게 부풀려지거나 사실과 거리가 먼 기록이 양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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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활기록부 기재를 위한 연수 교재 |
| ⓒ 박영호 |
올해 내가 맡은 업무는 '학적'이다. 진급과 졸업을 처리하기 전, 그동안 작성된 학생부 기록을 하나하나 확인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해마다 출력되는 학생부의 인쇄량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한때는 입학부터 졸업까지 단 한 장으로 처리하던 일이 이제는 정확한 통계조차 잡을 수 없는 양의 종이를 소비한다.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면 예산과 노력이 들더라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만큼은 그렇지 않다. 전형적인 '가짜 일'이다.
'가짜 일'은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운영하는 국가 차원의 과정에서도 반복된다. 올해 1학년부터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기 시작했는데, 어떤 교육과정이든 초기 혼란은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올해는 유난히 어지러웠다. 수학 교과만 보더라도, 1년 동안 배우던 내용을 의미 없이 학기별로 공통수학 1과 2로 나누면서 교과 세부 능력 특기 사항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혼란이 발생했다.
사람 이름처럼 들리는 '최성보', 즉 최소성취수준보장제도도 마찬가지다.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을 돕기 위한 취지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학업 의지가 없거나 능력이 현저히 부족한 학생에게 낙인을 남길 위험만 커지고, 교사는 가르칠 방법이 없는 학생을 지도해야 한다는 부담에 놓인다.
수학은 특히 포기하는 학생이 많은 과목이다. 최성보 대상자를 줄이기 위해 수업 시간에 간단한 필기만 해도 점수를 주는 수행평가를 시행했지만, 단 한 번도 필기하지 않은 학생은 결국 최성보 대상자가 되었다. 이런 학생을 12시간 지도해 '최소성취수준'에 도달하게 하겠다는 계획은 지나치게 순진하다. 그 기준 자체가 과연 의미 있는지부터 다시 묻게 된다. 차라리 수학을 포기한 학생에게는 수학 과목을 수강하지 않을 권리를 주는 편이 더 합리적일지도 모른다.
교육부 역시 '가짜 일 30% 줄이기'를 선언하고, 선언에 그치지 않는 변화로 오래된 관행을 바로잡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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