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이 정치에서 멀어졌을 때 벌어진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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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멀리할수록 중립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멀리하는 순간 누군가의 정치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교사들이 정치에서 배제되어 온 시간은 바로 그 사실을 증명하는 역사였다.
교사의 정치기본권 제한은 중립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교육 정책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자를 배제하는 구조적 장치로 작동해 왔다.
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은 교육의 중립을 해치는 일이 아니라, 교육의 전문성과 민주성을 회복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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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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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clee on Unsplash |
학교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의 목적과 내용, 방법은 갈수록 현장과 괴리된 기준으로 규정되고 있다. 다양한 특성과 수준, 지역의 문화와 요구는 사라지고, 국가와 정부가 정한 일방적 기준이 학교를 덮는다. 교실의 복잡한 현실을 경험하지 않은 판단은 언제나 단순하고, 단순한 판단은 문제를 고착화시킨다. 창의적 개선이 이루어지더라도 더디거나, 시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단발성에 그친다.
학교폭력예방법, 돌봄 정책, 급식, 대입 제도, 교과서, 교사 수급과 임용·배치 전반에서 현장의 목소리는 "청취"되지만, 실제 반영은 극히 제한적이다. 수많은 교사의 집단적 경험과 전문성은 데이터가 아닌 '개별 의견'으로 축소되고, 정책은 형식적 검토로 귀결된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구조 역시 예산과 인력, 제도의 대부분을 행정가 중심으로 결정한다. 전문직이 존재하더라도 지속적 근무가 아닌 순환 보직과 시책사업 단위로 소모된다.
이러한 구조는 낯설지 않다. 역사적으로 정치에서 배제된 집단은 늘 비슷한 과정을 겪어왔다. 산업화 초기 노동자들은 "현장은 모르니 정치에 개입하지 말라"는 논리 속에서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을 감내해야 했다. 여성 역시 오랜 기간 '가정의 역할'이라는 명분 아래 정치적 권리를 제한받았고, 그 결과 노동·복지·교육 정책은 남성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정치에서 배제된 집단은 언제나 '보호의 대상'으로 불리며, 실제로는 희생의 주체가 되었다.
교사 정치기본권 제한, 이해당사자 배제 장치로 작동
오늘날 교사들이 처한 위치도 다르지 않다. 교사의 정치기본권 제한은 중립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교육 정책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자를 배제하는 구조적 장치로 작동해 왔다. 그 공백은 누구의 목소리로 채워졌는가.
갈수록 학부모의 의견과 요구는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 '학부모의 목소리'가 항상 공평하게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진 사교육 업체나 재단, 특정 이익집단이 학부모란 이름의 껍질을 쓰고 정책 과정에 개입한다. 접근성이 높은 자, 조직화된 자, 표로 연결되는 자들의 의견이 교육정치를 좌우한다. 반면 저소득층, 근로자, 정치적으로 조직되지 못한 계층의 학부모 목소리는 정책 테이블에 오르지 못한다.
그 결과 학교와 교사에게는 일방적인 근로와 희생이 요구된다. 정규 교육과정 외 영역인 평생교육은 별도의 기관과 인력 충원 없이 학교로 내려오고, 급식 정책 역시 교장·교감·행정직 인원 충원 없이 계속 확대된다. 정책은 늘어나지만 이를 실행할 사람과 시간, 전문성은 고려되지 않는다. 정치적 발언권이 없는 집단에게 정책은 언제나 '추가 업무'의 형태로 도착한다.
교사의 정치기본권은 특정 정당을 위한 권리가 아니다. 이는 조직적·전문적·장기적·현실적인 정책 수립과 집행, 그리고 조정에 참여할 권리다. 고여 있는 물이 아니라, 현장에서 매일 변화하고 성장하는 학생들을 마주하며 고민하는 교사들의 판단이 정책에 반영될 때, 교육은 민주적이고 유연해질 수 있다.
정치는 교실 밖의 일이 아니다. 교실의 조건을 결정하는 힘이다. 교사들이 정치에서 멀어질수록, 교육은 정치의 가장 쉬운 희생양이 된다. 정치소외계층이 겪어온 역사적 결과를 우리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이제 교육만큼은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은 교육의 중립을 해치는 일이 아니라, 교육의 전문성과 민주성을 회복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현재 서울 남부교육지원청 교육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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