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관객 2500만명…한국영화, 서사를 잃다[영상2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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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는 극장 매출 점유율 50% 안팎을 너끈히 유지해왔다.
내리막은 관객 수로 보면 더 명확해진다.
관객 500만명 이상을 동원한 영화가 '좀비딸' 한 편에 머물렀다.
예컨대 올해 개봉한 공포와 오컬트 영화들은 매혹적인 외피를 둘렀으나 중반 이후 서사의 동력이 급격히 감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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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부재…신파·설명으로 도피한 한 해
전문 각본가 경시 제작 구조가 만든 참사

한국영화는 극장 매출 점유율 50% 안팎을 너끈히 유지해왔다. 올해는 그 균형이 깨졌다. 22일까지 41.5%에 불과하다. 지난해 같은 기간 57.3%보다 15.8%포인트 낮다. 관객 점유율도 15.1%포인트 떨어진 42.4%다. 내리막은 관객 수로 보면 더 명확해진다. 지난해 6780만명에서 올해 4279만명으로 줄었다.
일시적 침체가 아니다. 한국영화 전반의 동력이 상실된 위기 신호다. 관객 500만명 이상을 동원한 영화가 '좀비딸' 한 편에 머물렀다. 300만명 이상으로 범위를 넓혀도 '야당'까지 두 편뿐이다. 할리우드 대작과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의 승승장구를 맥없이 지켜봐야 했다.
업계는 한국영화가 고사 직전이라며 발길을 호소한다. 그러나 관객의 반응은 싸늘하다. 단순히 볼거리가 없어서가 아니다. 기꺼이 시간을 투자할 만한 완성된 이야기가 실종됐다고 여긴다. 장르의 탈을 쓴 채 반복되는 신파와 서사의 붕괴가 불신을 만들었다.
예컨대 올해 개봉한 공포와 오컬트 영화들은 매혹적인 외피를 둘렀으나 중반 이후 서사의 동력이 급격히 감퇴했다. 공포나 불안을 축적하기보다 인물의 대사로 세계관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데 급급했다. 장르적 긴장을 끝까지 밀어붙여야 할 대목에선 어김없이 한국형 가족 드라마의 관습으로 회귀했다.

코미디와 액션을 표방한 영화들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장르의 본질적 쾌감보다 단발성 유머와 상황을 나열하는 데 치중했다. 인물의 선택이 갈등의 축적이 아닌 '웃겨야 한다'는 요구에 따라 기계적으로 결정됐다.
거대 자본이 투입된 판타지 대작들 또한 방대한 세계관을 영화적 사건으로 녹여내기보다 중요한 정보를 브리핑하듯 대사로 쏟아냈다. 인물의 내적 동기보다 주어진 운명이 앞서자 관객이 비집고 들어갈 정서적 틈은 사라졌다.
시나리오 단계에서의 구조적 미완성이 촬영과 편집 단계에서 해결되지 못한 채 시장에 나온 결과다. 기술력은 세계적 수준이지만 정작 설계도인 서사가 부실했다. 원인은 제작 구조에 있다. 감독이 각본과 각색에 관성처럼 이름을 올리면서 이야기가 검증의 대상이 아니라 연출 콘셉트의 부속물로 전락했다. 각본 단계에서 해결했어야 할 구조적 결함이 '연출의 의도'라는 말로 덮인 채 제작이 강행됐다.
창작 전반을 통제할 역량을 갖춘 감독은 극소수. 하지만 한국 상업영화는 전문 각본가를 존중하지 않는다. 감독의 각본을 견제하지 않는 관행이 누적되면서, 소재는 흥미로우나 인물의 선택과 감정선이 설득되지 않는 작품들이 반복 생산된다. 신파가 서사의 논리적 결말이 아닌 막다른 길에서의 도피처로 사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환경의 확장 속에서 '굳이 극장에서 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주지 못하는 작품은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관객은 단순히 스펙터클을 소비하기보다 시간을 들여 투자할 가치가 있는 제대로 된 서사를 원한다. 사회적 공감을 끌어내는 이야기와 장르의 약속을 지키는 일관성이 있을 때 비로소 지갑을 연다. 영화계가 살려달라고 애걸하기 전에 논리 없는 감정과 구조 없는 소재로 기만하지 않았는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할 때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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