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조끼를 입은 60대의 한 끼 식비 7150원... 이분들의 정체
[이동철 기자]
기옥씨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청소일을 합니다. 2개의 화장실을 비롯해 여행객들의 동선을 따라 터미널 내부를 청소하는 것이 기옥씨의 주 업무입니다.
수십만 명이 긴 연휴를 맞아 해외로 떠나기 위해 붐비는 추석 명절에 기옥씨는 가급적 집에서 명절 음식을 만들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며 남들처럼 보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부업으로 하던 전단 아르바이트도 명절에 쉬기로 했습니다.
비정규직으로 저임금에 시달리는 기옥씨로서는 명절 연휴에 일을 해야 추가 수당을 기대할 수 있었을 겁니다. 기옥씨에게는 이처럼 세상의 풍습에 속하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남들이 설에는 떡국을, 보름에는 나물을, 추석에는 송편을 먹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때마침 감옥에 간 아들 영웅이에게서 온 편지가 마음에 걸립니다. 기옥씨가 서른이 넘어 얻은 외동아들 영웅은 어학연수 비용을 마련하려 남의 택배를 훔치다가 옥살이하고 있습니다. 사식을 좀 넣어달라는 아들의 편지에, 기옥씨는 평범하게 음식 냄새를 풍기고 싶었던 추석 명절 연휴를 포기하고 파트장에게 자신이 휴일근로를 하겠다고 자원합니다.
50대 후반의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기옥을 주인공으로 다룬, 김애란 작가의 <하루의 축> 소설 내용입니다.
소설 속 주인공 기옥씨가 사용하는 청소 세제의 종류나 양을 비롯해 쓰임은 공사의 시설 환경팀에서 정해줍니다. 그러나 기옥씨는 인천국제공항공사 소속은 아닙니다. 공사와 청소 업무를 위탁계약한 용역회사 소속으로, 용역회사가 기옥씨에게 월급을 줍니다. 그래서 기옥씨는 용역회사 쪽 사정과 공항 공사의 상황을 둘 다 잘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건 회사가 바라는 바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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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소노동자의 모습 (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
| ⓒ 연합뉴스 |
이들은 청소 업무 특성상 남들이 쉬는 토요일까지 주 6일을 일합니다. 사업주를 제외하고 35명이 일하는 소속 용역업체는 OO시로부터 민간 위탁에 따른 인건비 등 용역비를 받아 이들에게 월급을 줍니다.
지난해에 8000원이던 식비가 올해에는 갑자기 7150원으로 깎였습니다. 물가가 다 오르는데 식비가 도리어 깎이면 어쩌느냐고 항의했지만, 사측은 OO시가 인건비를 그렇게 책정했으니, 자기들로서는 도리가 없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통상임금 때문에 고민이 큽니다. 근무 일수에 비례하여 지급하는 식비를 통상임금에 포함해 초과근로에 대한 수당을 지급해야 하는데, 사측이 식대를 뺀 통상임금으로 초과수당을 지급해 온 것입니다. 하루 7150원씩 한 달에 평균 17만 원가량의 식대를 통상임금에 포함해 초과근로 수당을 계산하면, 2025년에만 약 50만 원 이상을 초과수당으로 더 받아야 했습니다.
초과수당 덜 줘 놓고 지자체에 책임 떠넘기다니
이를 확인하여 최씨가 사업주에게 지급을 요구했더니 사업주는 (차액을) OO시에서 해결해 줘야 지급할 수 있다며 계속해서 미루고 있다고 합니다. 최씨와 정씨가 근로 계약한 사업주는 용역업체인데, 왜 OO시의 승인을 기다리는지 최씨와 정씨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계속해서 OO시 핑계를 대는 사업주에 맞서, 최씨와 정씨는 식비를 포함하여 재산정한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초과수당을 지급 청구하는 진정을 그 지역의 고용노동지청에 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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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소노동자의 모습 (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
| ⓒ 유성호 |
이들은 주말과 공휴일에도 남들처럼 맘 편히 쉬지 못합니다. 민간 위탁 업체들이 인건비를 보수적으로 운영해서, 주말과 공휴일 교대 근무를 할 수 있는 추가 인력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말과 공휴일 근무가 일상화되면서 지인 경조사에 참여하는 것처럼 사람으로 도리를 다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청소 노동자들의 고충을 들으면서, 앞서 김애란의 소설 속 기옥씨가 바라던 '세상의 풍습을 따르는 평범한 삶'이 이들에게도 요원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처럼 공공부문의 민간 위탁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정부의 정책에서 비롯됐습니다. 정상적이라면 정부와 지자체가 수행해야 할 공적 업무를, 비용을 줄인다는 이유로 민간에 외주화하여 일자리의 질을 떨어뜨려 놓은 것입니다.
이들은 지자체의 로고가 새겨진 조끼를 입고 지자체의 과업 지시서에 따라 정해진 구역별로 업무를 수행하며, 환경부(현 기후환경에너지부)가 연구용역을 통해 단가를 산정한 인건비로 월급을 받습니다. 사업주인 민간 용역업체는 중간에서 관리를 담당하고 이윤을 보장받습니다.
본래 정부의 민간 위탁은 공공에 필요한 서비스 중 정부보다 민간이 더 전문성 있게 잘하는 부분에 한해 민간에 맡겨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기획된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인건비와 사용자 책임을 줄이고 민간 용역업체의 배만 불려주는 꼴입니다.
2026년 3월부터는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제2조 개정안이 시행됩니다. 근로계약과 무관하게 실질적으로 노동자에 대해 지배력을 가진 사업주를 상대로 노동조합이 임금과 근로조건에 관한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됩니다.
이제 민간 위탁 청소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정부와 지자체를 상대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해 볼 여지가 생겼습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형식적 고용관계를 내세우며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보다는, 노정 교섭을 통해 공공서비스 노동자들의 불공정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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