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신도 집에 정치인 불러 "협조 좀"…통일교 '선거 매뉴얼' 있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이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교단의 현안을 입법화하기 위한 물밑 선거운동을 한 정황이 24일 확인됐다. 지역별로 각종 통일교 행사 등에 초청하며 쌓아 온 친분을 활용해 선거에 출마한 정치인들을 집으로 초청하고 현안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는 식이었다. 선거를 앞두고 표 확보가 시급한 후보 입장에선 다수의 신도를 등에 업은 통일교의 협조 요청을 거부하기 어렵다는 계산이 깔린 전략이었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정치인 초청 주민간담회 실행 매뉴얼’에 따르면 통일교는 간담회 목적으로 시·구의원 및 지자체장 후보를 가정집·교회·직장에서 접촉한 뒤, 이들을 통해 교단의 이권 사업을 진행하는 방안을 시도했다. 실제 경기 대교구가 매뉴얼에 적힌 대로 여야 도지사, 교육감, 기초단체장, 도의원 후보 60여명을 접촉한 문서도 입수했다.
매뉴얼은 지방선거를 1년 앞둔 2021년쯤 통일교의 주요 간부는 물론 전국의 신도들에게 배포된 것으로 전해진다. 통일교 관계자는 해당 매뉴얼에 대해 “사실상 통일교의 지방선거 선거운동 가이드라인”이라고 말했다.

통일교 내부 문건에 따르면 통일교 산하 천주평화연합(UPF) 부회장 정모씨는 대선 직후인 2022년 3월 12일 “처음에는 지역 현안을 가지고 시작하다가, 회를 거듭할수록 우리의 이념과 가치를 설명하고 (통일교 현안을) 어젠다로 만들라”고 2지구 간부들에게 강조했다. 주요 정당의 정치인들을 상대로 현안에 대한 협조와 함께 통일교의 이념 전파를 지시한 것이다.
영남권을 담당하는 5지구에선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신도들에게 통일교 현안을 입법화하라는 노골적인 가이드라인도 제시했다. 5지구의 한 간부가 2022년 3월 “(교단 현안의) 정책화·입법화를 위한 지방선거 선거 지원 활동”이라고 신도들에게 설명하면서다. 실제 5지구는 당시 간담회를 통해 통일교 현안인 한·일 해저터널 등을 입법화하는 계획을 세웠다.
통일교 내부 매뉴얼에도 지방선거 출마 후보를 포함한 정치인 접촉의 취지에 대해 “각 지역의 표밭을 다질 수 있어 지역복귀의 초석”이라고 강조하는 내용이 담겼다. 지역복귀란 통일교의 정교일치 사상인 천일국(天一國)의 전 단계를 의미한다.

매뉴얼에 따르면 신도들과 정치인 간 간담회 장소로 교회, 직장 등이 거론됐는데, 가장 권장되는 장소는 가정집이었다. 또 UPF 부회장 정씨가 “제가 (집에서 간담회를) 몇 번 해보니까, 후보자들이 정책 소견 발표하는 기회가 주어져 소원이 성취됐다고 감동했다. 선진 정치 문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생활 정치의 장”이라고 설명한 내용도 매뉴얼에 담겼다.
통일교 유관 기관을 활용한 선거운동도 매뉴얼에서 강조됐다. 또 월 1회 접촉 등 만남을 정례화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간담회에서 만난 정치인들이 원하는 현안을 청취하는 것은 물론 교단 차원에서 해당 현안을 해결하는 과정까지 공유·보고하라는 프로세스도 권고 사항으로 담겼다. 정치인을 접촉하는 방식으로는 “통일교 행사로 (인연을) 맺은 VIP를 초청”하고, “구의원을 통해 시의원, 시의원을 통해 국회의원을 접촉”하는 구체적 방식도 제시됐다.
도지사·교육감 등 마구잡이 실행…“선물 주고 현안 협조” 보고


일반 신도들도 지역 간부들에게 성과를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남 지역의 한 신도는 “군수 후보 통해 지역 국회의원 접촉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다른 신도는 “현직 교육감에게 인삼차 등을 선물하고 통일교 행사 참석과 정책 협조를 요청했다”며 기념사진을 공개했다. 경기 지역의 한 신도는 “도의원이 ‘현안 사업에 긍정적으로 검토해 공약화를 검토하겠다’고 했다”는 취지로 보고하기도 했다.

이같은 간담회는 통일교의 정교유착 시도라는 해석과 동시에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정치관계법 사례 예시집에 따르면 선거공약 개발을 위한 주민간담회를 개최하면서 실질적으로 선거운동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종교시설에서 배부 또는 말(言)로 하는 선거운동은 금지돼 있다.
경기 지역 관리 명단에 적시된 한 도의원은 “통일교 교회에서 간담회를 한 것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다른 정치인은 “지역 주민 간담회로 알고 참석한 것 같다. 문제 되는 발언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찬규·손성배·정진호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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