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노숙인 한끼에서 시작… 가정을 살리는 ‘십시일반의 힘’

“누군가 그때 내게 손을 내밀어 줬다면….”
굿워커스 대표 오석관 목사는 사업 실패로 삶이 무너졌던 과거를 떠올리며 잠시 말을 멈췄다. 도움을 요청할 곳도, 기댈 손길도 없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그가 지금까지 ‘작은 도움’에 매달리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굿워커스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속에서 노숙인을 위한 한 끼 식사를 전하는 일로 시작됐다. 경제 위기로 거리로 내몰린 이웃을 외면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복음 안에서 모인 이들이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한 것이 단체의 출발점이다. 이후 무료급식과 연탄 나눔, 의료 봉사 등 국내 취약계층을 향한 섬김을 이어오며 사역을 확장해 왔다. 이 같은 사역들은 최근 ‘2025 국민일보 기독교브랜드 대상’ 사회공헌 부문 수상으로도 이어졌다.
오 목사는 “이번 수상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라고 생각한다”며 “언제나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걸어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을 소외된 이웃에게 전했을 뿐인데, 이렇게 귀한 상으로 응답해주셨다”고 덧붙였다.
오 목사의 기억 속 가장 어두운 시기는 IMF 외환위기 전후였다. 사업에 실패하며 한순간에 삶의 기반이 무너졌고 주변의 시선은 차갑게 식었다. 오 목사는 “어렵다는 소문이 나자 연락하던 사람들마저 하나둘 사라졌다”며 “그때는 어디에 손을 내밀어야 할지조차 몰랐다”고 회상했다.
그 시기 오 목사는 신앙을 붙들었다. 불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군 복무 시절과 사회생활을 거치며 접했던 교회 공동체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오 목사는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사업과 직원 간의 문제가 잘 해결된다면 목회자의 길을 가겠다고 서원했다”고 말했다. 삶의 방향은 그 무렵부터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하나님이 물질로 상황을 바꿔 주신 것은 아니었다”면서도 “대신 나를 멈춰 세우고 다시 살게 하셨다”고 말했다.
이 변화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이 급증하던 시기, 오 목사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그때의 나와 같은 사람’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노숙인을 위한 한 끼 식사를 전하는 봉사가 시작됐고 굿워커스로 이어졌다.
작은 나눔은 공동체의 사역으로도 확장됐다. 복음 안에서 뜻을 같이한 이들이 하나둘 모였다. 무료급식과 연탄 나눔, 의료 봉사 등 섬김의 영역도 넓어졌다. 오 목사는 “굿워커스라는 이름에는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공동체’라는 뜻이 담겨 있다”며 “믿음을 말로 고백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살아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전환점은 아프리카였다. 그는 “국내에도 여전히 어려운 이웃이 있지만, 복지 체계가 점차 갖춰지면서 같은 금액이 만들어내는 변화의 크기가 달라졌다”고 했다. 국내에서 20만원을 지원해도 삶 자체가 바뀌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아프리카에서는 매달 3만원으로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가정의 방향까지 바꿀 수 있다는 게 오 목사의 설명이다.
굿워커스는 현재 아프리카 한 지역에 집중해 사역을 펼치고 있다. 남수단 내전을 피해 넘어온 난민촌, 사탕수수 가공 공장 인근 빈민가, 에이즈로 가족을 잃은 가정이 주요 사역 대상이다. 특히 에이즈 가정 지원은 현지 NGO와 사회복지사를 통해 현지 정부 및 보건소와 연계해 발굴한다.
오 목사는 “감염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생계가 끊기기 때문에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래서 더 많은 시간과 신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3만원이란 돈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한다”며 “대신 교육비와 치료비로 정확히 쓰이도록 끝까지 관리한다”고 전했다.
기억에 남는 일도 적지 않다. 에이즈로 부모를 잃은 한 형제는 할머니 손에 자랐다. 이들은 부족의 도움도 받으며 살았지만 도움의 손길은 점차 줄었다고 한다. 이런 소식을 알게 된 후원자들은 아이들의 교복과 가방을 마련했고, 직접 편지를 쓰고 이를 보냈다. 오 목사는 “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모습을 보며 후원자들과 함께 울었던 적도 있다”고 전했다.
오 목사는 교회나 성도들이 구호 사역에 협력할 때 항상 견지해야 할 원칙으로 ‘마음과 방향’을 꼽았다. 그는 “협력이란 결국 ‘얼마나 큰 프로젝트를 함께했는가’보다 ‘어떤 마음으로 누구를 향해 함께 걸었는가’가 남는다고 믿는다”며 “협력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이름 없는 동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성과가 당장 보이지 않아도 그 길을 함께 걸어주는 사랑이야말로 한국교회가 전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라고 덧붙였다.
인터뷰 말미에 오 목사는 그리스도인을 향해 믿음의 확장을 주문했다. 그는 “성경은 반복해서 하나님의 마음이 약하고 밀려난 사람들에게 향해 있다고 말한다”며 “연대는 특별한 사람들의 선택 과목이 아니라, 복음을 믿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흘러나와야 하는 삶의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부천=글·사진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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