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무용하는 어른들이 너무 싫다

한 해가 끝나가고 있지만, 한국 무용계는 어수선하다. 지난 10~11월 열린 국정감사의 후폭풍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당시 국감에서 무용계 관련 문제만 22건이 다뤄진 것은 유례가 없는 사건이었다. 결과적으로 지난 국감은 현재 한국 무용 생태계의 건강하지 못한 상황을 수면 위로 드러내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사실 무용계에서는 그동안 많은 문제가 발생했지만 사회적인 주목을 받지 않은 채 잊혔다. 아무래도 무용이 영화, 연극, 음악 등 다른 예술 장르와 비교해 대중성이 떨어지는 비주류이기도 하지만 무용계 특유의 폐쇄성이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장르 특성상 도제식 교육 방식이 이뤄지는 데다 한국무용·현대무용·발레의 삼분법으로 나뉜 대학 교육 시스템이 입시 카르텔이라는 폐단을 낳고 말았다. 게다가 대학 졸업 이후 프로 무대에서조차 수직적 사제 관계는 지속된다.
올 초부터 무용계에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무용부문 지원 심의와 관련해 심의위원 선정의 공정성 논란이 일었다. 이어 6월 부산 브니엘예고 무용과 학생 3명이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비극이 발생했다. 특히 이들의 유서와 일기에는 입시와 학업 스트레스 외에 ‘무용하는 어른들이 제일 싫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무용계의 구조적인 문제에 큰 상처를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무용인들이 정부에 예술고등학교 운용 실태 점검 및 대학 무용과 입시 제도 개편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무용계 현장에서는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원로 무용가 상당수가 브니엘예고 학생들이 그토록 싫다던 ‘무용하는 어른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냉소가 터져나왔다.
브니엘예고 사태로 무용계가 황망한 가운데 지난해 3월 발생한 충남대 무용과 강사의 돌연사와 관련, 뒤늦게 지도교수의 갑질 의혹이 제기돼 파장을 일으켰다. 유족은 지도교수를 대신해 딸이 논문 대필과 사적 심부름을 했다며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어 8월 세종예술의전당에서는 창무국제예술제 리허설 도중 무용수 추락 사고까지 발생했다. 특히나 심각한 부상을 당한 무용수가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무용계의 관행 속에 치료비를 고스란히 감당하는 현실은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국정감사에서는 이들 문제 외에도 국내에서 열리는 콩쿠르의 병역 혜택 문제,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 교수들을 둘러싼 인사 및 윤리 문제 등이 잇따라 제기되며 무용계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제 무용계 내부의 문제로만 치부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국정감사가 무용계의 닫힌 생태계와 구조적인 문제점을 새삼 환기한 가운데 또다시 공분을 일으키는 사례가 발생했다. 국립무용단이 과거 성범죄와 채용 비리로 실형을 받았던 원로 무용가들을 내세운 기획공연을 선보인 것이다. 사실 무용계에선 그동안 도덕성에 대한 잣대가 느슨해 형사 처벌을 받은 무용가들이 대부분 현장에 복귀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춤비평가협회는 지난 17일과 23일 두 차례에 걸쳐 현장 예술가, 기획자 등과 함께 ‘2025 국내외 춤 현장 진단 포럼’을 개최했다. 심각한 무용계 현안들에 대한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논의를 거쳐 24일 ‘건강한 춤 생태계 조성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는 국회, 정부, 전국 대학 및 예술고, 대한무용협회 등 각종 무용 단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공공 문화재단, 전국 공공 무용단 등에 변화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은 무용계의 변화를 위해 시스템을 깨는 것은 외부의 충격 못지않게 무용가 개인의 자각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특히 젊은 무용가들이 용기를 내야 변할 수 있다.
장지영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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