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경영인 약진에 조선·전력 급부상…을사년 눈에 띄는 CEO
2025년 ‘올해의 CEO’는 한국 산업 지형의 변화를 또렷하게 보여준다. 실적으로 증명한 오너 경영인의 재평가, 방산·원전·전력 등 인프라 산업의 부상, 그리고 여성 CEO와 유망 산업 신규 리더의 약진이 겹쳐졌다. 단순한 명성이나 혈통이 아닌 실행력, 성과가 순위를 가르는 기준으로 자리 잡았고, 성장 산업에 올라탄 기업 CEO들이 존재감을 키웠다.

구자은·이재현·정용진 등 주목
단순히 ‘오너가 출신’이라는 타이틀만으로 기업 경영을 이끌기 어려운 시대다. 올해 순위에선 실적과 실행력으로 스스로를 입증한 오너 경영인들이 주목받았다. 기업 성과와 전략 실행력이 순위를 가르는 결정적 기준이 됐다.
구자은 LS그룹 회장은 올해 눈에 띄는 성과를 보였다. 2022년 회장 취임 후 진두지휘한 전력 인프라·전선·소재 중심의 체질 전환에 속도가 붙으며 지난해 33위였던 순위가 올해 17위로 급상승했다. 증권가는 LS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영업이익 1조원을 무난히 넘길 것으로 전망한다.
구 회장은 ‘비전 2030’ 밑그림도 그린다. 2030년까지 20조원 이상을 투자해 ‘탄소 배출 없는 전력(CFE·Carbon Free Electricity)’과 ‘배전반(배터리, 전기차, 반도체)’ 등 미래 성장 사업을 육성한다는 내용이다.
12위에 오른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콘텐츠·식품·물류 전 분야에 걸친 글로벌 확장 전략으로 존재감을 지켰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와의 협업, CJ제일제당의 해외 실적 호조, CJ대한통운의 첨단 물류 시스템 확장 등 계열사 전반에서 ‘글로벌 CJ’ 위상을 키웠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수익성 중심 경영 기조를 강화하며 눈에 띄는 변화를 이끌었다. 치열한 유통 업계 경쟁 속에서도 이마트는 공간 혁신을 통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CJ와의 물류 협업, 중국 알리익스프레스와의 전략적 제휴 등 실리 중심 행보가 돋보였다. 또 미국 정·재계 네트워크를 적극 확장하며 글로벌 비즈니스 기반 마련에도 힘썼다.
홍정국 BGF리테일 부회장은 아버지 홍석조 회장의 그늘을 벗고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글로벌 사업을 직접 진두지휘한 그는, CU 브랜드로 편의점의 본고장인 미국 시장에 진출하며 성과를 입증했다. CU는 미국 1호점을 포함해 몽골·말레이시아·카자흐스탄 등 총 750곳의 해외 매장을 운영 중이다. 홍 부회장은 올해 처음으로 50위권에 진입했다.
범현대 CEO 약진
50명 중 10명이 한 집안
올해의 CEO 순위표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현대차그룹, HD현대 등 범(汎)현대 기업의 약진이다. 전체 CEO 50인 가운데 무려 10명이 ‘현대’라는 이름을 달고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삼성그룹(5명), SK그룹(3명)과 비교해 압도적인 존재감이다. 범현대 기업은 모빌리티·조선·에너지·물류 등 성장 산업 랠리에 안착했다는 평가다.
우선 올해의 CEO 5명을 배출한 현대차그룹에서는 정의선 현대차 회장(3위), 송호성 기아 사장(9위) 외에 이규석 현대모비스 사장이 14위에 이름을 올렸다.
현대자동차 구매본부장 출신인 이규석 사장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현대차그룹이 차량용 반도체 수급에 어려움을 겪을 때 전략 자재 확보에 주력하며 그룹 실적 개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규석 사장이 CEO로 취임한 이후 현대모비스는 지난해 매출 57조2370억원, 영업이익 3조735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영업이익이 33.9% 늘었다. 올 1~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2조4270억원으로 1년 새 16.27% 증가했다.
이규복 현대글로비스 사장은 지난해 32위에서 올해 16위로 순위가 크게 뛰었다. 이규복 사장은 재무, 해외 판매, 프로세스 혁신 등 다양한 경험과 글로벌 역량을 두루 갖춘 전문가로 통한다. 2023년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현대글로비스의 물류·유통·해운 등 주력 사업 수익성을 골고루 개선했다. 물류 사업에선 해외 완성차의 내륙 운송 물동량이 증가했고, 컨테이너 시황이 강세를 보이며 매출이 증가하고 수익성이 개선됐다. 해상 운송 운임 개선 효과로 해운 사업 매출도 늘었다. 올 1~3분기 전체 매출은 약 22조원이며, 연간 기준으로는 29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이었던 28조4000억원을 다시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HD현대에서는 정기선 HD현대 회장(5위) 외에 중간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을 이끄는 김형관 사장이 15위에 이름을 올렸다. 김형관 사장은 1993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HD현대삼호 대표, HD현대미포 대표 등 HD현대 조선 계열사를 두루 챙기며 조선업 호황기를 이끌어왔다. 지난해 HD한국조선해양 매출은 전년 대비 19.9% 늘어난 25조5386억원, 영업이익은 5배가량 늘어난 1조4341억원을 기록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HD한국조선해양 매출이 29조66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20위에 오른 이상균 HD현대중공업 부회장은 40여년 동안 HD현대중공업을 비롯해 조선 현장 한길을 걸어온 ‘순혈 HD현대맨’이다. 울산조선소 생산관리, 외업 부문을 두루 거치며 선박 건조의 모든 공정을 몸소 익혔고 현장 기술인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정통 HD현대맨으로서 입지를 다졌다. 정기선 회장 중심의 오너 경영 체제가 본격화된 가운데 그룹 조선·방산 부문 전체를 총괄하는 중책을 맡았다. HD현대중공업의 별도 기준 영업이익은 2023년 1778억원에서 2024년 7025억원으로 증가했고,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1조4648억원으로 올라섰다.

구본상·구자균·박지원 눈길
CEO 순위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방산·원전·전력 인프라다. 지정학적 리스크, 인공지능(AI) 인프라 확대, 에너지 전환이 맞물리며 관련 산업 CEO가 두각을 나타냈다. 전통적으로 ‘중후장대’로 불리던 산업이 이제는 디지털·친환경 흐름과 결합하며 재평가받고 있다.
방산 분야에서는 이용배 현대로템 사장이 26위에 새롭게 진입했다. 현대로템은 K2전차와 차세대 장갑차 등 육상 무기 수출이 증가하며 방산·철도 부문에서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매출은 4조2134억원, 영업이익 7382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43.5%, 영업이익은 무려 150.3% 증가한 수치다.
또 다른 방산 업체 LIG넥스원을 이끄는 구본상 회장도 눈에 띈다. 구 회장은 올해 미국 정계와의 네트워크 구축, 해외 전시회 참석을 비롯한 대외 활동 전면에 나서며 K-방산 수출 확대에 앞장섰다. LIG넥스원은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천궁-II’ 대규모 수출을 계기로 성장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올 3분기 말 수주 잔고는 23조43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5조원 늘었다.
글로벌 AI 시장이 급성장하자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사업도 주목받는 중이다.
전력 인프라 분야에서는 구자균 LS일렉트릭 회장이 눈길을 끌었다. 올해 34위로 지난해보다 15계단 끌어올린 그는 송전과 변전, 배전에 이르는 전력의 모든 이동 과정에 걸쳐 체계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며 실적을 대폭 끌어올렸다. LS일렉트릭은 3분기 매출 1조2163억원, 영업이익 1008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19.1%, 영업이익은 51.7% 증가했다.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은 원전·가스터빈·소형모듈원전(SMR) 등 핵심 사업에서 실적 성장을 이끌며 올해 19위를 기록, 지난해보다 11계단 올랐다. 3분기 기준 두산에너빌리티의 누적 매출은 12조197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8% 증가했다. 전력 인프라 업체 효성중공업 성장세를 이끌어온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은 41위에 올랐다. 미국 멤피스 공장 인수, 초고압변압기 기술 경쟁력 강화, 글로벌 연구개발(R&D) 체계 구축 등이 주요 성과다.

김정수·최수연·정유경·정신아
올해 순위표에서는 여성 CEO의 약진이 뚜렷했다. 총 5명이 이름을 올리며 과거와 대비되는 변화가 나타났다. 2010년대 들어 줄곧 1~2명 선정에 그쳤던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이들은 단순히 ‘여성 경영자’라는 수식어를 넘어서 실적으로 시장의 평가를 받는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11위에 오른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은 불닭볶음면으로 대표되는 ‘K식품’의 글로벌 흥행을 견인한 주역이다. 삼양식품의 3분기 누적 해외 매출은 5105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47.1% 성장했다. 전체 매출에서 해외 비중은 80.8%에 달한다. 단순 유행을 넘은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이 시장의 신뢰를 얻었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도 눈에 띈다. AI 기반 검색·쇼핑 플랫폼 고도화를 중심으로 빅테크와의 글로벌 경쟁 구도를 선명하게 구축했다. 지난해 22위에서 올해 13위로 9계단 상승했다. 네이버의 3분기 플랫폼 전체 광고 매출은 전년 대비 10.5% 올랐고, 커머스 매출은 9855억원을 기록하며 35.9% 급성장했다.
정유경 신세계 회장은 유통 업계의 내수 소비 둔화 속에서도 백화점 부문에서 뚜렷한 차별화 전략을 보였다. 올해 5계단 상승한 21위에 올랐다. 신세계백화점은 고급·차별화 공간을 앞세워 올해도 연매출 7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카카오톡 중심 AI 혁신에 집중하며 계열사 축소 등 쇄신 작업에 집중한 정신아 카카오 대표는 올해 처음으로 27위에 이름을 올렸다. 취임 당시 계열사 수가 142개에 달했지만 지분 매각, 청산, 흡수합병 등의 방식으로 정리를 진행한 결과 11월까지 98개로 줄었다.
신규 진입 CEO도 눈길
조선·소비재·뷰티 두각
새 얼굴들도 대거 등장했다. 올해 처음 이름을 올린 CEO는 무려 20명에 달한다. 올해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은 조선·소비재·뷰티 분야 CEO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조선업에서는 18위에 오른 김희철 한화오션 대표가 눈길을 끈다. 대우조선해양에서 사명을 바꾼 한화오션은 한화그룹 품에 안긴 후 재정비에 성공하며 글로벌 조선 강자로 입지를 다졌다. LNG선·특수선 등 고부가 선종 수주에 집중하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증권가는 내년 한화오션 영업이익이 올해 대비 약 5.5배 증가한 1조3248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본다.
소비재와 리테일 분야에서도 ‘뉴페이스’들이 돋보였다. 우선 허서홍 GS리테일 대표(32위)가 순위권에 올랐다. 비효율 사업을 정리하고 편의점·마트 등 핵심 부문에 역량을 모은 결과, 외형과 수익성을 모두 개선했다는 평가다. GS리테일의 3분기 누적 매출은 8조9315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3.2% 늘었다. 영업이익도 2388억원으로 같은 기간 6.4% 증가했다.
김병훈 에이피알 대표(35위)는 세계적인 K뷰티 인기 혜택을 제대로 받으며 첫 순위 진입에 성공했다. 그는 화장품 브랜드 ‘메디큐브’와 ‘에이프릴스킨’의 글로벌 판매 확대를 이끌며 연매출 1조원 달성을 눈앞에 뒀다. 국내 대표 화장품 제조 기업으로서 K뷰티 중소 브랜드의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한 윤상현 한국콜마 부회장(46위)도 올해 50위권 진입에 성공했다.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40호 (2025.12.24~12.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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