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책갈피 달러 뒤지다 공항 마비" 관계부처 전수조사 난색

이재명 대통령 업무보고 과정에서 논란이 된 이른바 ‘책갈피 달러 반출’ 문제를 두고 관계 부처가 합동회의를 거친 결과 ‘전수 조사는 사실상 어렵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인 것으로 전해졌다.
‘책갈피 달러’ 합동회의, 결론은
24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대통령실은 지난 18일 관계 기관이 참석한 긴급 합동회의를 열고 외화 밀반출 전수 조사에 대한 현실성을 검토했다. 회의에는 인천국제공항공사와 관세청, 국토교통부 등 주무 부처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회의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1만 달러가 넘는 외국 돈이 빠져나가는 것을 전수 조사하려면 위탁수하물 전부를 열어 조사하는 수밖에 없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현재도 노트북이나 보조배터리를 기내에 반입할 경우 승객 입회 하에 짐을 열어 확인하는 절차가 이뤄진다. 그런데 전수 조사를 하게 되면 이 같은 방식으로 외화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외화가 발견될 경우 금액까지 일일이 세야 한다는 것이다. 또 여러 국가 화폐를 함께 소지한 경우 이를 하나의 통화 기준으로 환산하고, 다시 더하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 1만 달러 초과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점에서다.
이렇게 전수 조사를 할 경우 출국 검색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소요돼 공항 운영 자체가 마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한 참석자는 “이런 방식이라면 출국 절차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공항 운영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또 다른 참석자는 “항공기 출발 지연이나 검색 시간이 지체돼 제 시간에 탑승하지 못하는 승객이 생길 것도 우려된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회의 참석자 역시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실에 전수 조사 시 공항이 얼마나 혼잡해질 수 있는지, 운영에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를 충분히 설명했다”고 말했다.
전수 조사 대신 외화 밀반출을 단속하기 위한 다른 대책들도 논의됐다.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엑스레이(X-ray) 판독 화면을 세관과 실시간으로 공유해 무작위로 들여다보거나 신고가 있을 때만 출동하던 세관 검사관을 출국장에 상주시켜 두자는 방안 등이다. 외화 밀반출자 처벌을 더 강력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인천공항 보안 노조 관계자는 “인천공항공사와 세관이 함께 움직이면서 무작위로 판독하는 방식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사안인 만큼, 부처 관계자들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외화 밀반출 단속 관련한 회의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여전히 전수 조사 등 검색 방법과 소관 부처 등을 두고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상황이다.

대통령·기관장, 초유의 공개 충돌
이는 이 대통령이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을 공개적으로 강하게 질타하고, 이 사장은 공개 반박하는 이례적 장면이 연출되면서 불거졌다. 지난 12일 이 대통령은 국토교통부 및 산하 기관 업무보고에서 “수만 달러를 100달러짜리로 책갈피처럼 책에 끼워서 나가면 안 걸린다는 데 실제 그러냐”고 질의했다. 이 사장이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자 “참 말이 기시다” “지금 다른 데 가서 노시냐”고 문제를 삼아서 논란이 됐다. 이 사장은 국민의힘 3선 의원 출신으로 윤석열 정부 때(2023년 6월) 임명됐다.
이 사장은 이후 공개 반박에 나섰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세상에 ‘책갈피에 달러를 숨기면 검색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진 게 걱정”이라며 “대통령이 해법으로 제시한 100% 수하물 개장 검색을 시행하면 공항 운영이 마비될 것”이라고 했다. 이후에도 “‘책갈피 외화 반출’ 논란으로 보안검색 요원들이 본연의 임무보다 외화 단속에 과도하게 신경 쓰게 되지는 않을지 우려”라며 “칼, 총기류, 폭발물 등 유해 물품을 정확히 검색·적발함으로써 여행객의 안전을 지켜내는 것이 보안 검색의 본질”이라고 맞섰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그러면 ‘사랑과 전쟁은 바람 피우는 법을 가르치는 거냐’고 (방송) 패널이 그런 얘기도 하더라”며 “국민이 보고 내가 봤는데, 옛날부터 있던 건데 뭘 새로 가르치나?”라고 했다. 김남준 대통령실 대변인 역시 “수법을 공개하고 이를 막겠다는 담당 기관장의 발언까지 들었기 때문에 오히려 범죄 예방 효과가 더 크다”고 했다.
박영우·김수민 기자 novemb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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