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의 해법은 어디에 있을까
[한무영 기자]
기후 위기를 말할 때 우리는 흔히 두 가지 문제를 따로 꺼낸다. 하나는 물 문제다. 가뭄이 오면 물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해법으로는 더 큰 댐, 더 깊은 지하수, 더 먼 곳에서 끌어오는 물을 떠올린다. 다른 하나는 불 문제다. 산불이 나면 불씨와 바람, 진화 장비와 인력을 이야기한다. 불이 나면 어떻게 끌 것인가가 중심이 된다. 폭염과 산불을 겪는 현장은 묘하게 닮아 있다. 땅이 먼저 마르고, 숲이 먼저 뜨거워진 곳에서 문제가 시작된다. 그래서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물과 불을 따로 관리해 온 방식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을까.
같은 태양 아래, 왜 어떤 곳은 더 덥고 더 잘 타는가
폭염은 햇볕이 강해서만 생기지 않는다. 같은 태양 아래서도 물기가 남아 있는 곳은 비교적 시원하고, 바짝 마른 곳은 훨씬 더 덥다. 물이 있는 토양과 숲에서는 태양에너지가 기온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고, 증발과 증산에 쓰이기 때문이다.
산불도 마찬가지다. 불씨가 같아도 토양과 낙엽층에 수분이 남아 있는 숲에서는 불이 쉽게 번지지 않는다. 반대로 토양수와 식생수가 사라진 숲은 작은 불씨에도 순식간에 불길이 커진다. 불의 문제가 아니라, 물의 상태가 다른 것이다. 폭염과 산불은 전혀 다른 재난처럼 보이지만, 출발점은 같다. 보이지 않는 물이 사라진 자리다.
우리가 배운 물의 대순환, 우리가 놓친 물의 소순환
학교에서 배운 물순환은 바다–구름–강–바다로 이어지는 '물의 대순환'이다. 이 순환은 지금도 멈추지 않았다. 바다는 여전히 증발하고, 비는 여전히 내린다. 문제는 비가 내린 뒤다. 그 물이 얼마나 오래 땅과 숲에 머무르느냐, 즉 '물의 소순환'이 끊어졌다. 불투수면이 늘어나고, 빗물은 빠르게 배수되고, 토양과 식생이 물을 품을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대순환은 자연의 영역이지만, 소순환은 인간의 선택이 깊게 개입하는 영역이다. 그리고 기후위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커졌다.
우리가 매일 만들어 내는 소순환의 갈림길
물의 소순환은 거대한 국가 사업에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비가 내릴 때마다 선택지는 늘 두 가지다. 머무르게 할 것인가, 곧장 흘려보낼 것인가. 도시에서는 빗물이 대부분 배수구로 향한다. 아스팔트로 덮인 주차장, 물을 빨리 흘려보내도록 설계된 도로와 보도는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물을 붙잡지 않고, 가능한 한 빨리 버리는 방향이다. 이 선택이 쌓이면 도시는 비가 와도 식지 않고, 비가 그치면 곧바로 달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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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이 머무는 자리에서 기후는 달라진다 물이 머물 수 있도록 설계된 작은 물모이와 주변 녹지. 토양과 식생에 스며든 물은 증발과 증산을 통해 열을 완화하고, 폭염과 산불 위험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물의 소순환은 이렇게 일상 공간에서 시작된다. |
| ⓒ 한무영 |
물의 소순환을 회복하는 선택은 거창하지 않다.
첫째, 빗물을 '처리할 대상'이 아니라 '머물 자산'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둘째, 덮을 것인지 남길 것인지를 다시 묻는 선택이다. 작은 흙의 노출과 투수성 포장은 물을 다시 땅으로 돌려보낸다.
셋째, 낙엽을 쓰레기가 아니라 토양의 수분을 지키는 저장층으로 보는 관점이다.
넷째, 물을 얼마나 쓰느냐보다 쓴 물이 어디로 가느냐를 묻는 질문이다.
다섯째, 숲을 배수의 대상이 아니라 저장의 공간으로 관리하는 선택이다.
이 선택들은 모두 작아 보이지만, 물의 체류 시간을 바꾼다. 그리고 그 체류 시간이 폭염의 강도와 산불의 확산 속도를 바꾼다.
기후위기의 해법은 멀리 있지 않다
기후위기를 줄이기 위해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더 큰 댐을 만들자. 더 깊이 지하수를 퍼 올리자. 더 멀리서 물을 끌어오자. 그러나 이것은 모두 흐르는 물을 더 많이 확보하려는 방식이다. 폭염과 산불을 줄이는 데 더 중요한 것은, 이미 내려온 물이 얼마나 오래 머무르느냐다. 기후위기의 해법은 멀리 있지 않다. 비가 내린 뒤, 그 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있다. 물의 소순환을 회복하는 일상의 선택이 곧 기후 대응이다.
덧붙이는 글 | 이 연재는 "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우리가 보지 못했던 물의 역할을 다시 바라보려는 시도였다. 물을 공급의 대상으로만 보던 시선에서 벗어나, 기후를 조절하는 자산이자 순환의 일부로 이해하려 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결론은 단순하다. 기후위기는 비가 부족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비 이후의 선택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라는 점이다. 이 글로 이야기를 끝내기보다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다음 글들에서는 이 물의 소순환을 도시, 학교, 숲, 정책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더 구체적인 이야기로 이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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