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사태, 19세기 돌아간 느낌... 보호 못 받는 노동자 너무 많다"

김종철 2025. 12. 24.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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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권리밖노동 ③] 노동법 전문 박귀천 교수, 쿠팡사태와 정의로운 노동을 말하다

도로 위 배달노동자, 화면 앞의 창작자, 강의실을 오가는 프리랜서까지. 이들은 모두 일하지만 보호받지 못합니다. 플랫폼과 프리랜서 노동이 일상이 된 시대, 현행 근로기준법·노동관계법이 이들을 포괄하지 못하면서 제도의 공백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가 ‘일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왜 새로운 기본법이 필요한지 살펴봤습니다. <편집자말>

[김종철, 남소연 기자]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18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법학관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 남소연
"지금 언론을 통해 나오고 있는 쿠팡 노동자들의 현실을 보면, 마치 노동법이 없던 19세기 초 자본주의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는 옅은 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토로했다. 노동법 전문가로서 현실과 제도의 괴리에서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 온 그였다. 그의 문제 의식은 분명했다. 현행 노동법이 더 이상 '일하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몇 년 새 사회 전반에 걸친 플랫폼 노동의 확산과 불안전한 일자리에 대한 논쟁이 거세다. '쿠팡'으로 상징되는 플랫폼 노동으로 계약서엔 개인사업자지만, 실제로는 강도 높은 통제와 경쟁에 내몰리는 노동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이들은 여전히 노동법 보호의 바깥에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지난 1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법이 멈춰 있는 사이 현실의 노동은 계속 바뀌어 왔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 쿠팡 사태를 포함해 최근 플랫폼 노동 현장을 어떻게 보시는지.

"요즘 쿠팡을 비롯한 플랫폼 노동 현장을 보면, 노동법이 없던 19세기 초 자본주의 초기에 가까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계약은 마음대로 쪼개고, 책임은 분산시키고, 위험은 전부 개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이죠. (기자가 쿠팡 배달노동의 시스템을 설명하자) 그와 같은 '미션 시스템'을 보면, 짧은 시간 안에 일정 건수를 수행하도록 유도하고 있는데요. 사실상 교통법규 위반이나 과로를 강제합니다. 이는 단순한 '자율 계약'이 아니라 노동 통제의 방식으로 봐야죠."

"노동법 없던 19세기 자본주의 초기에 가까운 모습"
 지난 17일 서울 시내의 한 쿠팡 물류센터 모습.
ⓒ 연합뉴스
- 하지만 이들 다수는 법적으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 개념이에요. 20세기 초 공장과 사무실에 모여 일하던 임금노동자를 전제로 만들어졌는데, 근무 시간과 장소의 구속, 지시와 감독 여부 같은 '인적 종속성'이 판단 기준이었어요. 하지만 오늘날 플랫폼 노동자는 그런 방식으로 통제되지 않습니다. 대신 알고리즘, 평가, 배차, 미션과 같은 방식으로 통제됩니다. 그런데도 법은 여전히 예전 잣대를 들이대고 있죠."

쿠팡 배달노동자뿐이 아니다. 학원 강사부터 웹툰 작가 등 이른바 '프리랜서'는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다.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하지만 실제 노동 과정은 전형적인 '관리 노동'에 가깝다. 배차나 작업 내용은 플랫폼이 정하고, 단가는 알고리즘이 결정하며, 노동 강도는 상시적으로 조정된다. 박 교수는 이를 "형식은 자영업인데, 실질은 종속 노동"이라고 설명했다.

이들 플랫폼 노동자가 노동자로 인정받으려면 개인이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수년이 걸린다. 그 사이 사고가 나도, 계약이 끊겨도 보호는 없다.

박 교수는 이를 구조적 문제로 본다.

"지금 제도는 '네가 근로자라는 걸 네가 입증하라'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플랫폼 노동자는 계약 구조가 복잡해 사용자조차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에게 이 모든 입증 부담을 지우는 건 사실상 보호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형식은 자영업인데 실질은 종속노동"

그는 특히 쿠팡이츠 '플러스'처럼 지사·중간회사가 끼어 있는 구조를 예로 들었다. 박 교수는 "형식적 고용주는 작은 회사인데, 실제 업무 매뉴얼과 기준은 대기업 플랫폼이 정하고 있다"라면서 "플랫폼 기업의 책임이 분산돼 버리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가 참여해 온 기본법 논의의 출발점은 단순하다. '근로계약'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 자체를 보호 대상으로 삼자는 것이다.

"이 법은 근로기준법을 대체하는 게 아닙니다. 근로자로 인정되는 사람은 그대로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으면 됩니다. 문제는 그 중간 혹은 바깥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권리는 보장받아야 한다는 원칙에서 출발하는 거죠."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18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법학관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 남소연
그가 말하는 기본법의 핵심은 '최소한의 하한선'이다. 노동자성 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계약의 투명성 ▲건강과 안전 보호 ▲분쟁 조정 창구 ▲권리 행사에 대한 불이익 금지 등 기본적인 보호 장치를 먼저 두자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 기존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과는 어떤 면에서 다른지.

"근로기준법은 굉장히 협소하지만, 대신 매우 두터운 보호를 제공하는 법이죠. 노동시간부터 휴식과 임금, 해고 등 강력한 규율이 있어요. 반면 현재 논의 중에 있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가칭)은 보호의 강도는 얇지만 범위는 넓습니다. 노동자로 인정받기 어려운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예술노동자 등도 최소한의 안전과 건강, 인격 보호, 계약서 작성, 분쟁 해결 절차의 대상이 되게 하자는 겁니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 필요한 진짜 이유

- 노동계 일각에서는 기본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사각지대 노동자를 근로기준법으로 넣어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그 비판 이유를 충분히 이해해요. 특히 노동자성에 가까운 분들은 '애매한 법을 만들지 말고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노동을 당장 근로기준법 체계로 넣기는 어려워요. 그러는 사이 법 밖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은 계속 방치됩니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은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과도기적 장치이자 연결 통로라고 생각해요."

- 기업들도 '고용 부담과 위축' 등의 이유를 드는 것 같은데.

"일하는 사람 기본법은 사업주에게 근로기준법 수준의 의무를 즉각 부과하는 법이 아닙니다. 오히려 국가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법에 가까워요. 처벌 중심이 아니라, 행정 지도와 정책 지원의 근거를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기업들이 부담을 과장해 반대할 성격의 법은 아닙니다."

그의 시선과 생각은 '최소한의 상식'에 있다. 일하는 사람은 계약서를 반드시 쓰고, 휴식과 건강권을 보장받고, 분쟁이 발생하면 노동위원회의 접근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권리 행사에 대한 불이익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는 재차 '노동하지만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을 위한 기본법'을 강조했다.
 이커머스 1위 업체 쿠팡에서 약 3400만 건에 이르는 대규모 개인정보가 유출된 가운데 4일 서울 시내 한 쿠팡 물류센터에 배송차량이 주차돼 있다.
ⓒ 연합뉴스
다시 그의 말이다.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괴롭힘, 건강 침해, 계약 해지에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현실은 바뀌어야죠. 일하는 사람을 위한 기본법은 권리 위에 잠들어 있던 사람들을 깨우는 법입니다.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사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출발점이기도 하죠."

쿠팡 배달노동자의 도로 위 위험이나 웹툰 작가의 과노동은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법이 닿지 않는 곳에서 노동이 먼저 달려간 결과다. 쿠팡 사태가 드러낸 것은 단지 한 기업이 문제가 아니라,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이 구조적으로 확산된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이다. 박 교수의 말처럼, 이제 질문은 좀 더 분명해지고 있다.

노동자인가 아닌가를 따지기 전에 우리는 누구를 보호해야 하는가.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18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법학관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 남소연

덧붙이는 글 | '권리밖노동' 기획은 <오마이뉴스>와 고용노동부, 문화체육관광부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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