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도 '노동 학대'라는데... 김충현 협의체, '시간 끌기'만 할 건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차 하청노동자 김충현이 사망했다. 동료들은 그를 기억하며 거리에서 싸웠고, 발전소의 변화를 요구했다. 그 사이 불법파견 소송에서 승리했고, '고 김충현 사망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발전산업 고용·안전 협의체'가 출범했다. 트라우마 치료를 받은 노동자들은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예전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지금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가 변하지 않은 현장의 기록을 전한다. <기자말>
[정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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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공운수노조 비정규직 투쟁사업장 순회투쟁 문화제 |
| ⓒ 공공운수노조 |
지난 6월, 태안에서 김충현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났다. 정부는 '김충현 협의체'를 만들고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을 것처럼 발표했으나, 운영 종료일(12월 31일)을 불과 일주일 앞둔 지금 우리 손에 쥐어진 결과물은 아무것도 없다.
대통령의 '사이다' 지적... 그러나
지난 12월 17일, 이재명 대통령이 기후에너지환경부 보고에서 한 말을 듣고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대통령은 '발전소를 쪼개서 인건비를 깎고 있다'는 김성환 기후에너지부 장관의 설명을 듣고 국가가 '선도적 악질 사업자'가 되고 있다고 호되게 꾸짖었다.
이 대통령은 "돈 많이 아끼고 그런 게 유능한 정부가 아니다. 도덕적인 정부가 되는 게 필요하다", "국가 공공영역에서 너무 가혹하게 노동자를 학대해서 근로조건을 악화시켜서 산재 사고로 사람이 많이 죽는다든지, 너무 잔인하게 임금착취가 발생한다든지 하는 건 안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말에 16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대통령의 그 서슬 퍼런 호통도 발전소 현장 문턱과 협의체 회의실 문턱을 넘지 못한 듯하다. 지난 6개월간 9차례의 전체회의와 7차례의 분과회의가 열렸지만, 정부 측 답변은 늘 똑같았다.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다", "검토가 필요하다". 180일이라는 시간 동안 정부는 '검토'만 하다가 시간을 다 보냈다. 대통령은 '악질 사업자'가 되지 말라는데, 실무자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는 게 아닐까.
법원은 '정규직', 정부는 '별정직' 꼼수
이미 법적 판단은 끝났다. 지난 8월 서울중앙지법은 우리가 한전KPS 일반직과 똑같은 일을 한다며 '불법파견' 판결을 내렸고, 고용노동부도 10월 직접 고용하라고 명령했다. 정규직과 협력업체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일들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걸 법도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정부 협의체는 여전히 '별정직' 전환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건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차별을 아예 제도적으로 유지하겠다는 꼼수처럼 보인다. 16년 경력을 무시하고, 고용 조정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쳐낼 수 있는 '무늬만 정규직'을 만들겠다는 소리에 어느 누가 고개를 끄덕이겠나. 지난 6개월간 우리가 협의체에서 목소리를 높인 결과가 고작 이 '가짜 정규직'이라니, 허탈함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왜 우리는 여전히 길 위에 있어야 합니까"
우리는 이미 법적으로 이겼다. 하지만 승소의 기쁨은 잠시뿐, 우리는 지난 11월 19일부터 용산 대통령실 앞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무기한 노숙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한 달이 넘도록 집이 아닌 길 위에서 잠을 청하며 우리가 묻는 것은 단 하나다. "법대로 하라"는 것이다.
6년 전 고 김용균 노동자가 죽었을 때 약속했던 '연료·환경설비 정규직 전환'조차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이번에도 '검토 중'이라는 말로 6개월을 허비한 정부를 우리는 더 이상 신뢰하기 어렵다. 12월 31일이면 하청업체 계약은 끝나고, 16년을 바쳐 일한 일터에서 우리는 또다시 '해고'라는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정부 실무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에게 지난 6개월은 회의 몇 번 하고 서류를 만드는 시간이었겠지만, 11월 중순부터 길 위에서 밤을 지새운 우리에게는 매 순간이 생존의 벼랑이었다.
대통령의 말이 진심이라면, 이제는 말잔치가 아니라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 더 이상 '조사 중', '협의 중'이라는 핑계 뒤에 숨지 마라. 6개월 동안 아무런 성과 없이 시간만 끈 협의체 정부의 태만은 그 자체로 또 다른 '노동 학대'다. 우리는 그저 법대로, 약속대로, 사람답게 살고 싶을 뿐이다. 12월 31일, 협의체의 마지막이 '결론 없음'이 아니라 '차별 없는 직접고용'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철희씨는 한전KPS비정규직지회 태안분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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