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열매’, 떠난 이들이 남긴 온기 [D:쇼트 시네마(143)]

류지윤 2025. 12. 24.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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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여기에 빨간 열매는 영화에서 중요한 변화의 신호로 작용한다.

이 영화는 원작인 '빨간 열매'의 시적인 세계관을 유지하면서도, 영상 매체가 지닌 물성과 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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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 감독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유진(손수현 분)은 아버지(박성일 분)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유골함에 나무를 심는다.그리고 그 나무는 유진에게 계속 말을 건넨다. 마치 아버지의 영혼이 담긴 듯 하다.

'나무가 된 아버지'와의 삶이 시작된 유진은, 상실의 슬픔에 깊이 빠질 필요가 없게 됐다.

어느 날 유진은 밖으로 나무를 데리고 나가 산책을 하던 중, 나무로 환생한 어머니(김지영 분)를 산책시키는 래하(정수현 분)를 우연히 만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사연을 알게 되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그 과정에서 나무로 존재하는 두 부모 역시 관계를 맺는다.

유진과 래하는 인간의 결혼식이 아닌, 식물의 결혼식을 치러주며 이 관계를 축복한다. 시간이 흐른 뒤, 두 부모의 나무 사이에는 빨간 열매가 맺힌다. 동시에 유진과 래하는 나무로부터 더 이상 부모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다. 두 사람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무에 맺힌 따뜻한 빨간 열매를 함께 나눠 먹는다.

'빨간 열매' 죽음을 상실이나 단절이 아닌 관계의 형태 변화로 바라본다. 부모는 사라지지 않고 나무라는 다른 몸을 얻어 곁에 남는다.

비현실적인 설정임에도 영화는 이를 차분한 일상으로 처리한다. 유진과 래하는 각자 부모를 잃은 슬픔을 울거나 감정을 표출하기보다 나무를 돌보고 산책하며 하루를 보낸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식물의 결혼식’이다. 이는 인간 사회의 제도를 식물에게 이식한 장면이지만, 동시에 남겨진 이들이 상실을 정리하는 의식이기도 하다.

여기에 빨간 열매는 영화에서 중요한 변화의 신호로 작용한다. 부모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된 시점에 열매가 맺힌다는 점에서, 이는 어떤 끝과 맞물린다. 두 사람이 그 열매를 먹는 장면은, 부모의 존재를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으로 읽힌다

이 영화는 원작인 '빨간 열매'의 시적인 세계관을 유지하면서도, 영상 매체가 지닌 물성과 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빨간 열매'가 남기는 감정은 슬픔보다 온기에 가깝다. 떠난 이를 잊지 않으면서도, 더 이상 붙잡지 않는 상태로, 애도에 또 다른 이름표를 붙였다. 러닝타임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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